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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이 살려고, 태산이 무색할 독서 했소”
“그 나이 살려고, 태산이 무색할 독서 했소”
  • 신정민 기자
  • 승인 2005.10.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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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맑시스트, 정운영 경기대 교수(경제학) 타계

지난 9월 24일 언론은 ‘광대의 경제학자’, ‘탁월한 인문주의자’ 등 다양한 별칭을 머릿글로 삼아 한 인물의 부음을 일제히 보도했다.

그는 맑스주의 경제학자이며 언론인으로 한 시대와 거칠게 맞부딪쳤던  故 정운영 경기대 교수이다. 이런 저런 매체에서 고인과 친분이 있었던 이들이 기고한 글들은 정 교수가 우리 지성계와 학계에 미친 큰 영향을 강력하게 환기시키며 한 인문주의자의 때이른 죽음을 원망케 한다. 

중앙일보에는 고인과 평소 절친했던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의 특별기고가 실렸다. “정 형, 운영 형! 고작 이 세월을 살려고 그 많은 공부를 한 겁니까. 태산이 무색할 독서 아깝고 아깝습니다”라고 곡을 했다. “당신은 사람의 사람다운 세상을 사람답게 살려고 한번 택한 길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당신이 남긴 재산은 전세 아파트가 전부입니다”라고 정 교수의 몸짓처럼 홀가분한 삶의 흔적을 언급해 심금을 울렸다.

그가 10년간 논설위원으로 재직하며 필명을 떨쳤던  ‘한겨레신문’은 27일자에 문화평론가 김갑수의 추모글을 실었다. 지난 8월에 세상을 떠난 정치·미술평론가 전인권에 이어 운명한 정운영을 어떤 진영에도 함몰되지 않았던 자유인이었다며 안타까움을 애절하게 전한다. 김갑수는 고인을 “존재의 모순과 다층성이 용허되지 않는 우리 사회. 그이는 이 한국이 몸에 맞지 않은 지적 에트랑제(이방인)”라고 말해 정 교수의 삶이 결코 녹녹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오마이뉴스 역시 25일자로 ‘치열했던 시기, 그에게 빚지지 않은 자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긴 분량의 추모사를 올렸다. 세련되면서도 날카로운 고인의 독특한 글쓰기가 보여준 몽매한 사회의 죽비로서의 역할을 살피고, 백묵을 던지고 멱살을 잡으면서까지 학생들과 논전을 펼쳐 끝까지 자신의 논점을 관철시켰던 강의실의 한 풍경을 보여준다.

하지만 중앙일보로의 이직과 공정거래법 힘겨루기가 한창일 때 썼던 칼럼 등에 대해서는 “많이 당혹스러웠다”는 점을 추억하기도 했다.

프레시안은 25일에 윤소영 한신대 교수의 ‘마르크스 경제학 부활을 위하여’라는 글을 실었다. 윤 교수는 추석을 즈음하여 운명을 예견하듯 고인으로부터 2만여권의 도서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며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을 조화”시킨 정 교수의 이력을 회고한다.

윤 교수는 고인의 부친이 조흥은행 창업주의 동생이었지만, 일본 유학생 출신의 한량으로 가산을 탕진해 유년시절에 고생했던 이야기를 덤덤히 풀어낸다. 특히 한신대 부임 후 학내민주화 투쟁과 관련해 경상대학 교수들의 책임을 당시 동료교수였던 김수행 서울대 교수와 함께 도맡아 지며 해임당한 일 등의 사연을 전한다. 윤 교수는 2만권 장서를 정 교수 모교인 서울대에 기증키로 했다.
신정민 기자 jm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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