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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서울의 스모그까지 사랑하는 작가”
김영하, “서울의 스모그까지 사랑하는 작가”
  • 정광진 독일통신원
  • 승인 2005.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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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향: 한국문학을 분석하기 시작한 독일

독일 서점에서 한국문학작품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독일어로 번역 출간된 책이 100여권에 달한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소규모 출판사에서 나왔고 언론의 본격적인 주목을 받지도 못한 터라 찾는 독자들이 거의 없는 탓이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한달 후로 다가오면서 눈에 띄는 변화들을 관찰할 수 있다.

우선 영향력 있는 대형출판사들이 도서전에 맞추어 한국문학작품들을 펴내고 있다. ‘데테파우’(dtv)에서 황석영의 소설 '오래된 정원'이 최근 나왔고, 그의 다른 소설 '한씨 연대기'와 다른 작가들의 단편소설 모음집 및 시집은 10월 중에 출간될 예정이다.

 또한 ‘주어캄프’(Suhrkamp)가 도서전 개회행사의 연설자이기도한 고은 시인의 시집 '조국의 별'의 새번역판과 현대작가들의 소설모음집을 내놓았다. 언론보도의 빈도도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 이는 주빈국 행사 조직위에서 지난 3월부터 독일 주요 도시에서 개최했던 한국문학순회 프로그램이 언론의 큰 반향을 얻지 못했던 것과 비교할만하다. 심지어는 한국 소식을 찾아보기 힘든 빌레펠트 지역 신문에서 황석영과의 인터뷰를 실을 정도다.

한국문학과 한국작가들은 소개하는 기사들 중엔 - 특히 인터뷰 기사가 그러한데 - 그 내용의 중심에 작가들의 문학세계 탐구가 아닌 한국 사회 진단이 놓여있는 경우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황석영과의 인터뷰에서는 기사 제목을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고 뽑으면서 작가에게 북한의 현실,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 묻고 있다. 9월 10일자 ‘쥐드도이체 차이퉁’(S?ddeutsche Zeitung)에 실린 고은과의 인터뷰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고은을 한국문학의 위대한 시인일 뿐 아니라 20세기 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시인으로 소개하면서도 정작 그의 시의 세계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가 승려로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다 투옥된 경험을 묻고, 심지어 언제 통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를 묻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한국문학 순회행사 자문역을 맡고 있는 드레프스 빌레펠트대 교수(J?rg Drews)의 표현을 빌면 한국문학에 대한 '그림'을 갖지 못한 데서 생긴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를 판단할 문학적 기준이나 비교 대상을 모르는 것이다. 이번 도서전에 북한이 참가하지 못한다는 소식이 전시회 관련해서 중요한 뉴스거리가 되고, 7월에 있었던 남북작가회의를 대부분의 신문이 보도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기사가 그 정도에서 머무르진 않는다. 독일어로 출간된 작품에 대한 서평의 경우 문학 속에 드러난 한국을 찾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특히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Frankfurt Allgemeiner)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지난 7월 이후 벌써 은희경(‘새의 선물’), 이승우(‘생의 이면’), 이호철(‘소시민’), 김성동(‘만다라’) 등 네 명의 작품이 서평란을 통해서 소개되었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에서는 12살난 소녀의 성장이 한국의 근대화경험과 은유적으로 얽히는데, 저자가 자본주의의 발전속도, 세대간의 갈등, 유교적 전통의 붕괴 등을 보여주는 방식은 그가 사회분석적인 재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한다.

이승우에 대해서는 ‘특정한 정치적 혹은 문학적 입장에 속하는 것이 중요한 한국 문단에서 어느 쪽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문단과 거리를 두고 있지만 중요한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면서, 이번 도서전에 참여하여서 급속한 근대화가 한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유럽의 독자들에게 전달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호철의 ‘소시민’에 대해서는 한국전쟁이 등장인물들의 생활세계에 어떻게 파편이 되어 침투해 들어가는 지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고, 정치적 진공상태가 영혼의 공허함과 어떻게 함께 진행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한다.

김성동의 ‘만다라’에서는 급속한 산업화 속 개인의 분열을 주인공의 고행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면서, 소설의 주제인 욕망의 억제는 미래를 추구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는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어쩌면 소설이 처음 나왔을 때보다 더 현실적일 문제일 것이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최근 기사 중 한국문학을 가장 심도 깊게 다룬 기사는 7월 9일자 ‘쥐드도이체 차이퉁’에 실린 아이조마 만골트(Ijoma Mangold) 기자의 한국 취재기다. 우선 몇몇 한국 작가들의 성향을 분석해 비슷한 독일작가들과 연결시키는 시도를 하는데, 보수적인 정치적 입장 때문에 공격당하는 이문열은 마틴 발저(Martin Walser)와 참여적 문필가의 대표격이면서 ‘노벨상을 수상할만한’ 황석영은 귄터 그라스(G?nther Grass)와 비교할만하다고 한다.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즐겨 내세우는 은희경은 기자가 보기엔 한국의 유디트 헤르만(Judith Hermann)이다. 분단과 전쟁의 상흔이 아직도 남아있고, 오랜 전통과 30년 남짓하지만 엄청난 속도로 근대화된 결과가 뒤섞인 한국의 복잡성은 문학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황석영, 고은은 분단과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면 동시에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미래를 암울하게 전망하는 작가로 분류된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걸리는 시골에서” 사는 이문열은 한국의 전통을 근대문학의 성과와 연결시키려 하는 전통의 수호자다.

“급격한 근대화에 매료된” 작가의 대표자로는 김영하를 꼽고 있다. “그는 1천2백만명이 사는 도시의 밀도를 사랑하고, 어쩌면 서울의 스모그까지 사랑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작가가 그런 건 아니고 오히려 젊은 소설가들에겐 한국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압박에 놀라는 정서가 지배적이라고 본다. 대표적으로 한강의 소설에서 근대화가 뿌리 뽑힘으로 묘사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자는 “과거와 전통을 너무 강조하는 건 옴짝달싹 못하게 얽어매는 일이고 단지 듣기 좋은 말일 때가 많다”면서 미래로 열린 한국문학을 주문하고 있다.

10월에 들어서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 문학에 대한 기사와 보도가 폭증할 것임은 분명하다. 드레프스 (J?rg Drews) 교수는 “이번 도서전이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을 일깨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한다. 언론의 보도도 도서전 기간에 집중될 것이기 때문에 한국문학이 독일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도서전 이후에도 어떻게 그것을 지속시킬 수 있을 지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1998년부터 한국작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펴내고 있는 펜드라곤 (Pendragon) 출판사의 부트쿠스(G?nther Butkus) 씨는 “많은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기 보다는 소수의 작가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 작가들이 정기적으로 독일을 방문해서 현지에서 독자들, 대중매체와 지속적으로 접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독일에는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낭독하고 독자들과 토론하는 '낭독회'(Lesungen) 문화가 중세부터 이어져 내려와 자리잡고 있는데 한국작가들도 이런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번역할 작품을 선정할 때 독일 독자들의 관심과 취향을 더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함을 강조한다. 지금까지는 교훈적이거나 남북분단과 같은 한국의 역사적 경험을 다룬 작품이 많이 출간되었는데, 문학의 주소비층의 관심에 비추어 보면 젊은 세대와 여성작가들의 작품이 더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 언론들은 그 동안 진행했던 행사들이 얼마나 현지에서 관심을 끌었는지, 그리고 도서전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을 지에 주목하는 반면, 내가 만나 본 한국문학과 인연을 맺고 있는 두 독일인은 오히려 도서전 이후를 걱정한다. 물론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이라는 기회가 다시 오기 힘든 만큼 한국 문학의 진면목을 최대한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부트쿠스 씨가 의미 있는 사례를 하나 전해주었다. 그가 펴낸 한국문학 중에는 시집도 있는데 오래지 않아 재판을 찍었고 지금도 찾는 독자들이 많은 쪽에 속한다는 것이다. 시는 번역했을 때 소설보다도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힘들 것이라 통념이 깨질 수 있었던 건 시인이 애를 쓴 덕분이다. 그 시인은 거의 매년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독일어권에 찾아가 독자들과 작가들을 만나고 교류한다는 것이다.

도서전이 계기가 되어서 한국 문학이 독일과 유럽에 조금씩 천천히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외국인들을 위해서는 표제를 ‘Enter. Korea’라고 만들었는데 그렇게 해선 도무지 우리말 '대화와 스밈'이 주는 깊은 의미가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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