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마음 갖기와 철저한 사물의 이치 탐구
이 둘이 없으면 개인·조직은 패망으로 흐른다
이 책의 해제는 “조선 주자학은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의 식민사관에 따라 철학적 측면만 강조되었고, 한편으로는 조선 망국의 주범으로 꼽혔다”라고 적었다. 진정 주자학이 조선을 망쳤는가? 이 책은 “개혁과 변화를 희구한 고려 말 신진사대부들의 공통적인 이념적 기반이었던 성리학(한국철학사연구회, 『한국철학사상사』, 2003)”을 집대성한 주희(1130~1200)가 송대 지식인들에게 쓴 47편의 편지글을 실었다.
편지는 금나라 오랑캐를 막는 국경수비가 견고해야 하며, 유학은 선불교와 다르며, 선대의 원수인 금나라에게 복수하고 잊지 말아야 하며, 백성의 형편에 맞게 소금을 균등 분배해야 하며, 나라가 어려울 때는 세금을 면제하여 백성을 구제해야 하며, 군주가 오만해서는 안 되며, 관직을 맡은 자는 직무에 성실해야 하며, 큰 곳을 도모하는 자는 작은 데서 삼가고, 군주의 마음가짐을 바로잡고자 하는 자는 엄숙과 공손과 경외를 급선무로 할 것이며, 자기 몸에 올바름이 갖춰진 뒤에 다른 사람에게 올바르기를 구하고, 자신을 독려하고 평소에 수양할 것이며, 근본을 바로잡고 말단을 바로 잡으라는 등의 권면을 담고 있다.
조선은 왜 망했을까? 오히려 위와 같은 권면을 왜곡하는 개인이나 조직일수록 위기에 빠지지 않을까. 조남호 옮긴이는 부록에서 ‘주자학의 거경궁리(居敬窮理)’는 내·외적수양법이다. 즉, 참선이나 화두 공부대신 마음을 경건하게 유지하며 깨어있는 경(敬) 공부와 현실의 복잡성을 처리하기 위해 사물의 이(理)를 철저하게 탐구하는 것을 뜻한다.
믿음의 제왕이었던 다윗이 전쟁 중인 상황에서 늦잠을 자고 왕궁을 어슬렁거린 행위는 경(敬)을 망각한 것이었다. 그는 경을 거역하는 궁리를 추진하여 부하장수의 아내를 빼앗았다(사무엘하 11장). 결국 다윗의 인생은 험난한 혼돈의 늪에 빠진다. 고려 말 신진사대부들이 도불(道佛)을 배척했던 이유는 궁리가 결핍된 기복(祈福)과 현실도피의 경향 때문이었다. 주희에 의하면 내면적인 거경과 현실적인 궁리가 모두 필요하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o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