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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학술경국’ 시대로…인문사회 통찰로 갈등 해결
이제는 ‘학술경국’ 시대로…인문사회 통찰로 갈등 해결
  • 이강재
  • 승인 2021.12.14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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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오늘을 말하다 ⑨ 인문사회 학술정책 현안

시대가 학문 분야 간 소통과 협업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고, 소통과 협업의 선결요건은 학문의 균형발전임에도 불구하고,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는 여전히 심각한 소외와 격차 속에 방치되고 있다. 학술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기관이나 심의 자문기구는 물론이요, 대학의 ‘학술연구’를 뒷받침할 전문법령조차 전무한 것이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의 실상이다.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가 스스로의 본령을 지키고 학술연구의 공공성과 사회적 기여도를 높일 기반 확립이 시급하다.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는 앞으로 11회에 걸친 기고를 통해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 연구와 교육의 현황과 전망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정부와 국회의 가시적 조치를 촉구하고자 한다.

학술정책 연구기관 ‘한국학술진흥원’ 설립해 정확한 실태 조사
학술지원 결과가 학문의 질적 심화로 이어지는 평가체계 필요

지난 2년 인문사회 학술정책과 관련하여 몇 가지 새로운 일이 기록된다. 지난해에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지원사업이 시작됐다. 매년 비전임 박사 연구인력 300명을 선정하여 연 4천만 원의 연구비를 5년간 지원해주는 파격적인 사업이다. 유사한 사업이 이전에도 있었다. 인원과 연구비의 확대, 소속대학을 지정하도록 강제하지 않는다는 것이 과거와의 차이이다. 인문사회 연구자의 진로에 어려움이 크고 대학과 관계없이 독립연구자로서의 길을 가려는 연구자가 많아지는 변화를 반영한 정책이다.

지난 6월 24일 ‘선도국가 구현을 위한 학술정책 수립’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기초학술분야 기본법으로 컨트롤타워 마련과 예산 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사진=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

인문사회 연구자들이 학술기반 확대를 요구하는 국회청원을 했다. 지난해 인문사회를 대표하는 단체들이 힘을 모아 ‘인문사회 분야의 안정적인 연구교육 기반 조성을 위한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단기간에 4천458명의 연구자가 동참했다. 인문사회연구자들이 국가주의와 시장주의에 대한 경계를 통해 연구의 자율성과 불간섭주의가 강했다는 특성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기초학술기본법(이하 ‘기본법’)」의 발의도 이루어졌다. 인문사회 학계에서는 오랫동안 학술지원의 근거가 되는 기본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올해 3월 24일 “인문사회 분야를 포함한 기초학술 진흥의 근간이 될 기본법이 있어야 한다”라며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 등이 「기초학술기본법」을 발의했다.

현재의 학술지원에 대한 근거 법령인 「학술진흥법」이 기초학술 관련 사항에 대한 컨트롤 타워로서의 기능이 약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과학기술계는 「과학기술기본법」을 필두로 20여 개의 법률이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인을 위한 국가적 지원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방법을 촘촘하게 정하고 있는 것에 비해 인문사회는 법률적, 제도적 근거가 약했다는 점도 기본법 발의의 중요한 이유가 된다.

올해 3월 인문사회총연합회(이하 ‘인사총’)의 설립도 주목해야 한다. 인문사회의 연구자들은 서로 간의 견해 차이가 다양하고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영역이 적지 않다. 이는 연구자들이 한 목소리를 내거나 특정한 사안에 대해 단합된 행동을 하지 못하는 요인이 된다. 과학기술계는 중요한 사안이 있으면 여러 단체들이 힘을 모아 정부와 국민을 대상으로 한 목소리를 낸다. 특히 요즘처럼 대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두드러진다. 우리도 인사총의 앞날에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국가연구개발혁신법 개정을 위한 노력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이하 ‘혁신법’)」의 개정 노력도 있었다. 혁신법은 정부의 여러 부처가 과학기술에 대한 연구지원을 하면서 생긴 복잡한 규정의 혼란을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출발했다. 이것을 성격이 다른 인문사회까지 획일적으로 적용하려고 하면서 인문사회 연구현장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인사총이 앞장서 혁신법을 강하게 비판하며 개정을 요구했고, 결국 11월에서야 주무부처인 과기부가 법을 개정하기로 방침을 정하였다. 지난 11월 25일 국회 과방위의 조승래 의원이 인문사회분야의 요구를 수용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지난 2년의 이런 활동은 미완의 진행형이다. 학술기반 확보를 위한 국회청원은 국회 교육위원회로 접수된 이후 제대로 된 논의가 없었고 혁신법 개정안은 과방위 법안소위를 통과했을 뿐이며 「기초학술기본법」은 발의 이후 후속 논의나 주무부처의 노력이 수반되지 않았다. 인사총이 혁신법 개정 과정에서 존재감을 분명히 나타냈지만 아직 일부 연구단체가 참여하지 않고 있고 재정적 기반도 취약하다.

우리나라는 이제 추격형 국가에서 벗어나 선도형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선도국가에서 인문사회학술연구는 사회적 갈등 비용을 줄여주어 성숙한 국가를 만들어주는 힘이 된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은 사유를 통해 국격을 높여주고 더 넓은 세계로의 진출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동안 과학과 수출에 의한 성장 중심주의가 국가 발전의 동력이었다면, 이제 과학기술과 인문사회가 함께 하는 학술이 국가를 이끌어가는 ‘학술경국(學術經國)’의 시대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문사회의 핵심적 역할을 고려한 학술정책이 세워져야 한다.

학술정책 연구기관인 ‘한국학술진흥원(가칭)’이 설립되어야 한다. 이 조직은 학술실태에 대한 정확한 조사, 학술지원의 결과가 학문의 질적 심화로 이어지는 평가 체계의 구축, 다양한 매체와 플랫폼 등 4차 산업혁명 시대 지식기반 사회 변화에 대응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조직 신설과 운영을 위한 예산이 크지도 않을뿐더러 학술지원 예산의 단순한 증액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학문후속세대의 문제는 인문사회 연구자 모두의 큰 숙제이다.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제도가 지속되고 확대되어야 한다. 국가 미래의 발전 동력이 될 것이 분명한 이들의 갈 길에 대한 모색은 계속되어야 한다. 미래 인재는 언제나 국가와 사회의 힘으로 양성되는 것이며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따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융합연구와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의 융합연구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인문사회적 과제의 해결을 위한 과학기술”, “과학기술이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에 해법을 제시하는 인문사회”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필요하다. 중요하다고 오랫동안 강조되었지만 아직도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판단이다.

미래의 학술정책은 새로운 문명의 조건 속에서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을 포괄하면서 법과 제도, 교육을 아우르는 통찰력이 요구된다. 현재의 거버넌스는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 인문사회 학술지원을 담당하는 정부 부서는 교육부의 학술진흥과이다. 이곳은 인문사회 외의 매우 많은 일을 동시에 담당해야 한다. 곧 시작될 새로운 정부에서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교육부의 큰 변화가 예고된다. 교육부에서 여전히 학술정책을 담당할 것이라면 학술진흥과는 기초과학 분야를 포괄하여 ‘기초학술진흥국’으로의 승격이 필수적이다. 미래의 국가발전을 위한 중요성을 인정한다면 청와대에 ‘학술연구수석’을 두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이강재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
서울대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인문대학 인문학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8년 12월부터 국가교육회의 고등-직업교육개혁전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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