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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팬데믹보다 ‘포스트 냉전’이 근본적 재난
오키나와, 팬데믹보다 ‘포스트 냉전’이 근본적 재난
  • 조경희
  • 승인 2021.12.10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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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포스트냉전과 팬데믹: 오키나와의 코로나 경험과 정동』 조경희, 와카바야시 치요 지음 | 소명출판 | 202쪽

오키나와 공동체가 생존하기 위해 필수인 자기조직화
마지막에 개입하는 국가는 언제나 위기로 다가온다

2020년 공론장과 학문적 논의를 지배한 것은 온통 코로나 관련 의제였다. 팬데믹 상황 속 현존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제시되고 토론됐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에서는 코로나 이후 대안적 세계를 모색하는 차원에서 아시아 석학 초청 웨비나 시리즈를 기획하였다. 팬데믹에 대한 아시아적 경험을 공유하고, 트랜스로컬한 학문 교류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제1탄인 이 책에서는 오키나와라는 포스트 냉전 공간에서 팬데믹이 어떻게 작동하고 사람들 사이에 어떤 정동을 만들어내는가에 주목하였다. 팬데믹의 위기가 사회적으로 주변부나 아래로 집중된다고 할 때 중앙정부의 움직임에서 지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가장 멀리에 위치한 오키나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팬데믹 경험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한층 넓혀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팬데믹이라는 인류공통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은 예전보다 확실히 국경에 따라 다르게 관리된다. 이 사태가 근본적으로 풍요의 역습이라고 한다면 향후 보건위기와 생태위기는 상호 결합되면서 더 만성적인 재난의 일상을 가져올 것이며 이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의 증대는 더 많은 복지를 필요로 할 것이다. 국가의 개입이 불가피해진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는 인터아시아(interasia)적이고 트랜스로컬(translocal)한 논의를 지속해야 한다. 팬데믹을 둘러싼 대화는 처음부터 이 근본적인 딜레마 속에 있었다. 

 

미군 군사훈련으로 신음하는 오키나와

오키나와 사회는 경제적 취약성에 더해 미군의 군사훈련에 의한 소음, 추락사고, 성폭력, 범죄사건, 토양 및 공기오염에 노출되고 있다. 이 속에서 특히 여성과 청년, 아이와 노인들은 더욱 가혹한 현실로 내몰리고 있다. 보건, 환경, 평화, 경제, 돌봄에 이르는 오키나와의 총체적 위기는 과연 코로나의 영향 때문인가? 오키나와에서 근본적인 재난이란 포스트 냉전의 현실, 즉 주민들의 평온한 일상을 훼손해온 미군기지의 존재가 아닌가.

애초에 오키나와 현에 감염자 정보조차 제공하지 않았던 미군은 격리시설을 기지 바깥에 설치함으로써 오키나와 주민의 안전을 또다시 위협했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일본 방위성은 헤노코(辺野古) 지역의 신기지 공사를 멈추지 않았다. 기지와 본토라는 외부 유입에 노출된 오키나와는 과거에도 현재도 감염병에 취약한 유동적 공간이다.   

일본정부는 코로나 대책의 기본이념을 자조(自助)・공조(共助)・공조(公助)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먼저 해본다. 그리고 가족과 지역이 서로 돕는다. 그 다음 정부가 안전망을 통해 지킨다”라는 방향성은 코로나 시국에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라 1990년대 이후 2번의 대지진과 원전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어느 순간 상식이 되어버린 복지의 기본이념이다. 

팬데믹에서 핵심적인 의료와 보건 영역에서도 일본은 이 방침을 고수했다. 일본은 지역 주민들의 자조와 공조에 의존해 팬데믹의 난관을 헤쳐나갔다. 권력의 과잉 작동을 우려하기 이전에 일본은 팬데믹 하에서 국가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키나와에서 지역주민들의 자기조직화는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유지해온 안전망이자 유일한 생존의 길이다. 끝나지 않는 포스트 냉전의 현실을 살아가는 오키나와에서 국가는 늘 위기였던 것이다.

팬데믹은 만성적인 불안의 정동을 삶의 일부에 장착시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사람들의 아비투스(habitus)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이 전환을 디스토피아적 전망이 아닌 공통적인 것(the common)의 지평을 열고 삶의 조건을 재조직화할 계기로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실업과 구조적 불평등, 사회적 배제와 혐오, 인간 중심주의에서 생태계 중심주의로의 전환 등에 대해 로컬과 글로벌을 넘나는 인류 공통의 지혜가 절실하다. 

 

조경희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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