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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발을 내딛는’ 선도성을 가진 ‘보편문명국가’로서의 한국
‘첫발을 내딛는’ 선도성을 가진 ‘보편문명국가’로서의 한국
  • 김월회
  • 승인 2021.12.07 09: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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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_ 선도 국가란 무엇인가 ①

“‘추격형-선도형’ 식의 구도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다른 나라와의 비교를 통해 우월한 위치에 서는 국가, 
곧 선두국가(leading nation)로서의 선도국가가 아니라 
‘첫발을 내딛는 국가(first mover nation)’로서의 선도국가를 지향한다. 
‘선도성’의 근거가 우리 바깥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그렇기에 좋은 나라의 실현 가능성이 상존해 있는 나라이다.”

40여 년 전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1977년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했던 해, 온 나라가 떠들썩하니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둔 듯이 환호했던 기억 말이다. 만약 당시에 유엔무역개발회의로부터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분류되었다면 전 국토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선진국 담론의 실종 

지난 7월 2일 스위스에서 열린 제68차 유엔무역개발회의에서의 결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회의에서 한국은 1964년 유엔무역개발회의 설립 이래 처음으로 개도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가 변경되었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일구어낸, 세계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성취를 이룩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세계 242개 국가 중 국민소득(GDP) 순위 10위권, 제조업 경쟁력이 5위권인데다가 세계에서 단 7개 국가만 있다는 ‘30-50 클럽’(GDP 3만 달러 이상, 인구 5천만 명 이상 국가)의 가입국이기도 하다. 국방력도 10위권 이내인 지 제법 되었고, 근자에는 K-팝, K-드라마 등 한류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한글 등 한국문화의 국제적 확산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선진국이 될 만한 조건이 충분했으니 적이 자축했을 만도 싶은데 정작 우리는 참으로 차분했다. 

그래서 문제였다는 얘기는 아니다. 유엔무역개발회의의 결정은 질적 차원보다는 정량적 지표를 근거로 한 것이고, 남들로부터 선진국 여부를 평가받은 것이기에 크게 의미 부여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의도적 외면이라 읽힐 정도로 언론이나 국민이 무덤덤하게 반응할 일도 아니었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선진국에 대한 논의를 다각도에서 진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는 “우리가 곧 선진국”이라는 점에 대해 얼마큼 사유하고 준비했는지를 짚어 볼 수 있었다. 우리 국민 중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고 여기는 이가 얼마나 될지, 내가 곧 선진국의 시민이란 정체성을 지닌 이가 얼마나 될지도 점검해 볼 수 있었다. 

무엇을 일러 ‘선진국다움’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유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구축되어 있고 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지도 마찬가지다. 자율적이든 제도적이든 간에 내가, 우리가 또 우리나라가 선진국다움을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구현하는지도 그러하다. 국가나 언론, 학계 등이 안 했다면 개인 차원에서라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미래는 준비된 자의 몫이므로 선진국 시민으로서 나는 얼마나 ‘준비된 시민’인지를 따져보는 일은 그 자체로 이롭다. 안재원 서울대 교수가 이번 연재를 시작하며 “‘선진국 담론’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교수신문> 2021년 11월 22일자)고 단언한 데 이견이 없는 이유다.

지난 7월 2일 제68차 유엔무역개발회의에서 한국은 개도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가 변경됐다.
선진국에 대한 논의를 다각도에서 진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선진국 담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사진=주제네바한국대표부,연합뉴스

선도국가로 이어지는 전환들

안재원 교수는 ‘나라다운 나라’로서의 선도국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리고 이의 실현을 위한 의제로 성숙사회·시민사회·문화사회·소통사회·지식사회·열린사회를 제시했다. 익숙한 표현으로 이루어진 의제이지만 그 하나하나는 ‘대전환’이라 칭해야 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근본적 전환을 도모하는 실천적 과제들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성숙사회라 함은 “성숙이 곧 성장”이 되는 사회이다. 이는 1970년대 이래 개발이 곧 성장이라는 우리 사회의 오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일이다. 이러한 전환은 매우 시급하다. 탄소 제로, ESG(친환경?사회적 책임?윤리적 지배구조)’와 같은 과업은 성숙 기반 성장사회로 거듭나야 비로소 성장과 더불어 실현할 수 있기에 그러하다. 

시민사회라 함은 구체적으로는 ‘인문적 시민사회’를 가리킨다. 여기서 ‘인문’은 인문학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다움’을 뜻한다. 인문적 시민사회는 인간다움이 삶과 사회의 기본값이 되어 일상적이고 제도적으로 작동되는 시민사회를 가리킨다. 이를테면 인간다움에 기초한 보편 가치와 이념이 사회적 관계 형성의 지반이 되고 사회적 권위의 근거가 되며 사회적 활동의 터전이 되는 사회를 말한다. 이는 혈연, 지연, 학연 같은 봉건적 인간관계, 가부장제 같은 봉건적 권위 등이 여전히 사회적 힘을 지니는 우리 사회의 대대적 일신이기도 하다.

문화사회, 그러니까 인간다운 생존이 보장되고 지속 가능한 생활의 누림이 있는 사회의 구현도 중요한 전환이다. 디지털 기반 과학기술이 삶의 기반이 될수록 ‘디지털 격차’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지식기반사회와 평생학습시대의 심화에 따라 ‘지식 격차’가 빈부 격차로 직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예컨대 ‘인문복지’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설정하는 것과 같이, 문화사회로의 전환을 견인해내는 법적·제도적·재정적 조치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구조적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다. 

소통사회라 함은 구체적으로는 ‘숙의적(discursive) 소통사회’를 가리킨다. 이념 간, 지역 간, 세대 간, 남녀 간 갈등의 상존과 이의 정치적 악용, 편견과 혐오의 재생산 같은 현실은 숙의적 소통사회로의 전환이 무척 시급함을 일러준다. 동아시아 평화체제의 구축이 지상과제인 현실을 감안할 때 이는 대외적 차원에서도 절실하다. 합리적 이성에 기초하여 협력과 공존을 지향하는 정신과 태도가 삶과 사회의 기본으로 작동될 때 평화와 공영의 실현이 한층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지식사회로의 전환은 ‘선진국다움’을 창출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갱신해가는 데의 필요조건이다. 여기서 선진국다움이란 정신적, 물질적 차원 모두에서 수월성을 지속적으로 구현하고,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독자적인 문화를 창출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제고해갈 줄 앎을 가리킨다. 이는 지식과 기술이 원천과 창의의 두 차원에서 모두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랬을 때 지속 가능한 국부 창출이 실현되며, 이번 코로나 팬데믹처럼 예측 못했던 문제가 발생해도 이를 선도적으로 해결해감으로써 “더 좋은 세계를 만드는 나라”로 역할 할 수 있게 된다. 

‘좋은 나라’라는 지향

이러한 전환을 일구어내려면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가 명실상부한 열린사회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일민족의 신화’라든지 ‘강대국에 둘러싸인 약소국인 한국’ 같은 인식으로부터의 전면적 탈피가 필요하다. 이들은 쉬이 배타적이고 자조적이며 사대적으로 흐를 수 있기에 그러하다.

또한 ‘추격형-선도형’ 식의 구도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선도국가는 다른 나라와의 비교를 통해 우월한 위치에 서는 국가, 곧 선두국가(leading nation)로서의 선도국가가 아니라 ‘첫발을 내딛는 국가(first mover nation)’로서의 선도국가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우리들이 동의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갔을 뿐인데 이것이 다른 나라에는 참조가 되고 모델이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선도자의 위치에 서게 되는 국가이다. 곧 ‘선도성’의 근거가 우리 바깥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그렇기에 좋은 나라의 실현 가능성이 상존해 있는 나라이다. 

이러한 선도국가일 때 비로소 보편문명을 창출하고 이를 일상 차원에서 누리며, 문명조건의 변이에 따라 유연하게 갱신해가는 보편문명국가가 될 수 있다. 선진국 담론을 개진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n개의 선진국 중 하나가 됨도 대단한 일이지만, 그보다는 보편문명국가로서의 한국이란 지향이 우리를 더 좋은 나라로 거듭 견인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서울대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박사를 했다. 주로 고대와 근대 중국의 학술사상과 중국문학사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인문적 시민사회’ 구현을 위한 교양교육과 인문교육에 대한 연구도 함께 하고 있다. 저서로 『인문정신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좋은 삶인가』 『깊음에서 비롯되는 것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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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식 2021-12-07 11:53:59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동의할 뿐만 아니라 바로, 특히 인문학이 탈근대의 새로운 세계을 열어가는데 압장을 서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용감한 주장이 가끔 나올 뿐 실질적으로 미래의 지도자를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2021년 6월부터 유튜브에 이교수의 조건 없는 대학 이라는 채널을 만들어 현재까지 12개의 시리즈를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교수님들도 유사한 작업을 하실 수 있다면 자크 데리다의 조건 없는 대학의 논리를 한국에서 제일 먼저 실천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