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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소시오패스
정치와 소시오패스
  • 정영인
  • 승인 2021.12.07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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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정영인 논설위원 / 부산대 의학과 교수·국립부곡병원장

 

정영인 논설위원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대선을 몇 개월 앞두고 후보들 간의 대권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미래의 비전이나 정책보다는 상대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 등의 부정적 선거운동이 기승을 부린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에서 수단의 도덕성보다는 효율성과 유용성을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권모술수와 표리부동은 정치의 유효한 수단이고 수단은 정치 목적의 달성을 통해 정당화된다는 마키아벨리즘적 믿음은 현실 정치에서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최근 한 정신과의사가 방송에서 여당의 대통령 후보를 소시오패스(sociopath)라 언급하면서 사회적 논란을 야기했다. 소시오패스는 사회병질자라는 뜻으로 한국사회에서는 이상 성격을 가진 사회적 범죄자를 지칭하는 부정적 용어로 주로 사용되고 있다. 정신병질자라는 뜻의 사이코패스(psychopath)와 혼용되는데 둘 다 정신병리학적으로 엄밀하게 정의된 의학적 용어는 아니어서 일반인들도 흔히 사용한다. 정신의학적으로 반사회적 인격자 범주에 해당한다. 

소시오패스는 특징적으로 성공 욕구가 강하고 타인을 잘 이용하며 계산적이고 거짓말에 능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못 느낀다. 자신을 잘 위장하고 감정조절이 뛰어나 매력적이고 사교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발현되고, 발현 정도도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다. 때문에 범죄적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일반인과 구분하기 힘들다. 이들의 문제적 행동은 사회적 상황에서 드러난다. 사회규범을 무시하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해서 고통을 주지만 자신은 아무런 고통이나 죄책감을 못 느낀다. 타인의 비난이나 비판에 별로 개의치 않고 공감 능력도 떨어진다. 인격 발달 과정에서 도덕을 내재화하는 양심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즘적 성향이 강한 정치인에서 표리부동, 교묘함과 조작, 도덕적 둔감, 사실 왜곡, 양심 불량, 이기적 행태, 자기애적 성향 등의 소시오패스적 특성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일반인의 상식 기준으로 감내하기 힘든 소시오패스적 특성들이 인류사에 족적을 남긴 정치인이나 사회적 성공을 이룬 사람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언젠가 조국 교수가 정치 참여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자신은 정치근육이 없어 현실 정치에 적합지 않다고 말한 적 있다. 그가 말한 정치근육이란 일반인의 상식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정치인 특유의 자질을 지칭하는 것으로 한마디로 말하면 후안무치다. 후안무치란 얼굴이 두꺼워 비판이나 비난을 견딜 수 있는 정신적 맷집이 좋고 표리부동과 거짓말에도 부끄러움이나 죄책감을 못 느끼는 것을 말한다. 후안무치는 권력쟁취의 정치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유효한 정치 수단이다. 정상과 이상이 서로 교합하면서 생산적으로 승화될 때 발현되는 특이성이나 창조성이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내재된 반사회적 폭압성이나 편집성이 발현되면서 인류에 지울 수 없는 역사적 고통을 안겨주기도 한다. 

정치인에게 소시오패스적 특성은 필요악이다. 그렇다면 특정 정치인의 인격적 특성에 대해 직접 진단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전문가로서 의견을 개진하는 게 윤리적으로 타당할까. 미국정신의학회의 골드워터 규칙은 의사가 직접 진단하지 않은 공인에 관해 전문가로서 의견을 밝히는 것을 비윤리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규칙의 핵심은 공공의 이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인에 대해 ‘직접’ 진단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물론 의사는 직무상 취득한 환자의 비밀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지만, 공공의 이익에 입각해서 공개 의무도 있다는 타라소프 규칙도 있다. 공인을 직접 진단하지 않고 간접적인 정보에 의존해서 판단한 전문가 개인의 의견은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공인의 사회적 활동을 현저히 저해하거나 제약해서 당사자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 공인이든 개인이든 이들에 대해 전문가로서의 의견을 공적으로 피력할 필요가 있을 때는 공공의 이익이라는 확실한 판단을 전제할 때 최소한의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사적 이해관계가 있는 배우자의 정적에 대해 소시오패스라고 전문가로서의 의견을 피력한 것은 윤리적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가 아니더라도 집단지성은 권력욕이 강한 정치인의 인격적 특성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

“정치와 범죄의 본질은 같아. 다만 정치는 방아쇠를 언제 당길지 아는 것이지.” 영화 「대부」에 나오는 대사의 한 장면이다.  

정영인 논설위원
부산대 의학과 교수·국립부곡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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