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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관찰 이후의 연구
참여관찰 이후의 연구
  • 이소진
  • 승인 2021.12.02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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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이소진(연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나는 노동계층의 자녀다. 연구자이면서도 노동자의 자녀인 나의 주변적 위치성은 나의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근 단행본 『시간을 빼앗긴 여자들』로 출간된 나의 연구는 노동시간이 하루 8시간에서 7시간으로 단축 이후 변화된 대형마트 캐셔 노동자의 삶을 다룬다. 나는 해당 연구의 연구참여자였던 노동계층 중년여성의 삶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봐 왔던 관찰자였다. 

처음 연구를 위한 사전인터뷰를 했을 때, 나는 노동자들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음에도 질문하지 않았다. 질문을 하는 행위는 위계를 전제한다. 따라서 질문하는 이와 대답하는 이의 위계가 없는 상황에서, 혹은 위계를 전제하지 않은 상황에서 질문은 어떠한 답도 내놓을 수 없다. 대답을 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연구자이기 때문에 연구 참여자에게 ‘질문’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내 질문에 답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엄마들은 휴식이 필요했고, 가능하다면 아주 긴 시간 휴식을 취해야 했다. 만약 내가 일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물음’을 통해서 그들의 경험을 획득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시간을 빼앗은 결과일테지만, 나는 그 만큼 나의 연구가 그들의 삶에 가치가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연구를 위해서, 우선 나의 시간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일을 하기로 한 것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4개월 동안 나는 연구자가 되었다가 노동자가 되는 삶을 오가며 고된 노동을 경험했다. 나는 늘 일터에 갈 때마다 “나는 연구자다”라며 되뇌었지만, 노동현장에 투입되고 나면 연구자라는 나 자신을 잊어버리고 노동에 몰두했다. 그만큼 노동현장은 나의 몸을 규율했고, 나는 그러한 규율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완전히 익숙해질 무렵, 나는 이제 더 이상 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참여관찰을 끝낸 후 나는 사전인터뷰 당시보다 더 구체적인 질문을 구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인터뷰를 할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잘 알아?”라고 나에게 물었다. 내가 연구를 위해 4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일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노동자들은 더 편하게 나에게 말을 건내기 시작한다. 내가 자신들을 이해하고 있음을 믿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연구에서 참여관찰은 다층적 의미를 갖는다. 단순하게는 노동현장을 연구자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지만, 더 깊게는 참여관찰 이후에 이루어지는 인터뷰에서 참여자와 라포를 더 폭넓게 설정할 수 있게 한다. 내가 참여관찰을 하지 않았다면, 노동자들은 내가 자신들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지 못했을 것이고,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억울함에 대해서 그 감정에 대해서, 힘듦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일을 하고 난 후에는, 나 또한 그 어려움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다른 이야기들을 해주기 시작한다. 노동현장과 삶을 교차하는 다양한 이야기가 그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만약 내가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하루 한시간의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자들에게서 빼앗아 간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고됨을 단편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들의 말을 내 머릿속에서 다시 해석하면서, 완전하게 공감하지도 믿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전인터뷰 당시, 마트가 얼마나 넓은지 아냐며 하소연하던 노동자들의 말을 대충 들었던 것처럼, 나는 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연구의 8할은 연구참여자인 노동자들에게서 비롯됐다. 나는 단순히 그들의 생각을 학문적 언어로 구조화하여 풀어내었을 뿐이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내가 어떠한 방식으로 사회를 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고, 이는 나에게 아주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참여관찰과 질적연구를 통해 노동연구를 이어나갈 생각이다. 연구자가 아닌 노동자로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경계인으로서 내가 살아온 삶과 그들의 삶의 차이에 집중하면서 학문의 언어로 노동자들의 삶을 해석하고 다시 위치 짓는 것, 그것이 나의 목표다. 

 

이소진 연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2019년 「표준노동시간 단축이 중년여성의 일과 생활에 미치는 영향: B대형마트 캐셔를 중심으로」로 이화여대에서 여성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연세대 사회학과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블루컬러 여성 등 기존 노동연구에서 조명받지 못했던 여성들과 여성 사이 차이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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