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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없이 사는 것보다 신과 함께 사는 게 낫다
신 없이 사는 것보다 신과 함께 사는 게 낫다
  • 유무수
  • 승인 2021.11.2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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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기_『나는 무엇을 믿는가』 한스 큉 지음 | 이종한 옮김 | 분도출판사 | 384쪽

언젠가 죽게 될 인간은 불안·허무를 느낄 숙명
모든 종교는 구원으로 향하는 나름의 길이 있다

안셀름 그륀은 『삶의 기술』에서 “인간이 제각각 다른 목적의 소망들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영원한 고향, 잃어버린 낙원, 따뜻한 보살핌에 대한 갈망은 어쩔 수가 없다”라고 썼다. 신비한 생명을 지니고 태어났으나 늙고, 병들고, 죽게 될 운명은 시시때때로 의식적·무의식적인 불안과 허무를 느끼게 한다. 그래서 “삶은 고통이다”는 불교의 심오한 깨달음은 그리스도인도 긍정할 수 있다고 가톨릭 신학자인 한스 큉(1928~2021)은 공감의 뜻을 표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철저한 인본주의를 신봉한다고 고백하는 한스 큉은 ‘진실, 확실성, 보편성’을 넓혀가고자 하는 비판적 이성으로 불교, 유다교, 이슬람교, 유교 등과 대화하며 배움과 화평을 시도했다. 그는 여러 종교에서 조명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동의했고, 종교학적으로 고찰할 때 “모두 구원으로 향하는 자기 나름의 확실한 길이 있다”는 다원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그리스도교를 참된 종교로 믿는다고 말했다. 교황의 무오류성과 로마 체제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을 인정할 수 없었던 저자는 1979년에 교회법상 교수 자격을 박탈당했다. 

포이어바흐,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그리고 리차드 도킨스 등은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을 부정했다. 그들이 제시한 논리는 신의 존재를 의심하거나 거부하는 자들에게 무신론의 입지를 보강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저자는 ‘진화론’을 ‘믿지 않으며’ 자료에 근거하여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무신론자와 반신학자들이 세상의 위대함과 비참함을 더 잘 해명했다고 납득할 수 없었다. 결국 신앙에는 주관적 선택과 결단이 포함된다. 다수의 사람들은 재물, 섹스, 권력, 과학, 국가, 축구 등을 숭배하듯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유형은 종교처럼 확고한 자아, 안전함, 희망, 궁극적 삶의 신뢰 등을 매개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저자는 계속 질문한다. 왜 도대체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있는가? 137억 년 전에 우주가 대폭발했다? 그렇다. 그런데 그게 어디서 왜 시작하여 어디를 향해 무엇 때문에 진행되는가? 유한성과 덧없음은 ‘어디로부터’와 ‘어디로’를 가리켜 주는 ‘의미’를 요구하고, 종교는 종교적 체험에 근거한 규범적 지침을 제공하고 늘 재해석되면서 거듭 새로운 영감과 동기를 부여하며, 성경은 수백 년에 걸친 신실한 하느님 체험에 관한 증언이라고 저자는 주장했다. 

그리고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으며, 그래서 궁극적으로 삶을 신뢰하고 있으며, 설령 결국 속았음이 판명된다 할지라도 “하느님 없이 사는 것보다는 하느님과 함께 살았기에 더 행복했다”고 말하겠다는 것이 저자의 신앙고백이다. 저자는 계몽된 신뢰 안에서 궁극적 기원의 창조주를 믿음으로써 다음과 같은 믿음도 가능하다고 했다. “아무 뜻 없이 세계와 인간은 무에서 무로 내던져져 있지 않으며 의미가 충만하고 소중하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나의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편 23편)”라는 시를 썼다. 신앙을 통해 공급받은 생기, 담대함, 감사, 평안을 담은 고백시였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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