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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 정아은 신작 장편 소설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 출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 정아은 신작 장편 소설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 출간
  • 김재호
  • 승인 2021.11.18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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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세태의 관찰자’라 불린 작가 정아은이 쓴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된 독특한 소설 실험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 | 정아은 지음 | 문예출판사 | 각 400쪽, 41쪽

문예출판사에서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 정아은의 소설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을 출간한다. 이 소설은 ‘모던하트’,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을 출간한 정아은 작가의 네 번째, 다섯 번째 소설이다. 전작들에서 헤드헌터, 교육을 좇는 학부모, 드라마 작가 지망생, 성형외과 의사 등 우리네 현실에 밀접한 인물들을 꼼꼼하게 그려내 ‘도시 세태의 관찰자’라 불린 작가가, 이번에는 ‘젠더’를 주제로 특유의 관찰자적이면서도 몰입도 높은 서사를 풀어놓는다.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은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된 독특한 형식의 소설로, 전자는 문학평론가이자 정치평론가인 김지성의 입장에서, 후자는 남편과 딸 둘을 둔 주부 이화이의 입장에서 전개된다. 지성과 화이는 하나의 사건을 다르게 보고 각자 자기만의 서사를 펼쳐나가는데, 두 남녀는 상대가 주인공인 소설에 다시 ‘조연’으로 등장해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데 역할을 한다. 

두 소설은 그 형식이 남성과 여성, 즉 ‘젠더’를 주제로 한 내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한국 문학에서 흔치 않은 흥미로운 시도를 완성해낸다. 젠더라는 주제를 미투, 여성의 몸, 성적 주체성, 모성, 인터섹스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해 서사에 녹여내면서, 소설적 재미 또한 놓치지 않는다. 독자는 두 소설 중 한 권만 읽어도 좋고, 두 권을 함께 읽어도 좋다. 다만 두 권을 모두 읽을 경우, 작가와 편집자는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를 먼저,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을 나중에 읽기를 권한다.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에서 지성의 오랜 동료이자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시인 민주는 지성과 하룻밤을 보낸 후 에둘러 지성에게 사랑을 표현하나, 지성은 거절한다. 민주는 제삼자의 입을 통해 지성을 미투의 가해자로 밝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날 민주와 하룻밤을 보낸 것이 사실인가. 지성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진보 일간지 칼럼니스트이자 정치방송 패널, 라디오 프로그램 호스트, 북토크 사회자 등으로 숱한 러브콜을 받던 그는 일순간 몰락을 경험한다. 진실은 무엇일까. 지성은 성폭행범인가. 살인자인가. 수많은 셀럽과 장난처럼 염문을 뿌렸던 민주가 그를 사랑했던 것은 사실인가. 술로 잘려나간 기억과 민주의 죽음으로 인해 지성 자신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진실을 두고, 세상은 뜨겁게 양분한다. 페미니스트와 안티페미니스트, 진보와 보수, 남성과 여성, 적과 동지가 저마다 자신이 진실임을 주장한다. 소설은 점차 진실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도, 매번 독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이것이 과연 진짜 ‘진실’인가?

선인과 악인, 옳음과 그름, 성별의 구분 마저 모호해지다

비평이 업이었으나 이제는 세상 사람들에게 “품평의 대상”이 되어버린 김지성, 타고난 아름다움과 재능으로 때론 “부담스럽고 불길”한 존재가 되고 마는 이민주, 어느 날 나타나 몰락한 지성의 집을 장악해가는 “맹한 피조물” 나채리 등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결코 하나의 캐릭터로 정형화되지 않는다. 선인과 악인, 옳음과 그름, 하물며 성별의 구분마저 점차 모호해진다. 다층적인 인간의 내면이 한 겹 한 겹 드러날수록, 진실은 거듭 반전되고 또 반전된다. 그날 민주와 하룻밤을 보내지 않았다면 지성은 결백하다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는 쾌락에 몸을 맡긴 “짐승”이 아니고 “지성인”이라 말할 수 있는가. 과연 그는 무죄인가 유죄인가. 작가는 보이는 현실의 이면과 보이지 않는 인간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독자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은 남편과 아이 둘을 두고 집을 나갔던 화이가 43일 만에 돌아오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모르는 남자의 집에서 다른 정체성으로 살았던 43일 동안, 그녀는 ‘인간고양이’가 되어 체험했던 일들을 소설로 쓴다. 나는 무얼 원할 수 있는가? 무얼 원해도 되는가? 이제 이렇게 질문할 수 있게 된 화이는, 같은 목적을 가진 주석희와 함께 모종의 탈출을 계획한다. 이화이와 최승현, 주석희와 권형욱, 서로 닮은 듯 다른 두 쌍의 부부. 화이와 주석희는 ‘아내’ 역할이 아닌 다른 모습의 서로를 알아가지만, 그럴수록 화이는 주저하게 된다. 분노와 책략 외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이 사람, 주석희 같은 사람과 함께 일을 도모해도 될까? 과연 나는 지금, 여기, 그리고 나 자신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까…?

‘여성’ ‘아내’ ‘엄마’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 자기 삶을 찾아 떠나는 서사는 많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그것을 추동하는 제1 동력은 ‘몸’에 대한 자각이다. 남성에 의해 성적으로 대상화된 채 살아온 화이는, 단지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남편 최승현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것은 필연적인 일일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생겨난 콤플렉스와 트라우마 때문에 내린 선택이었으니까. 결혼을 했고, 아이가 있고, 부양할 노모가 있는 마흔의 여성 화이가, 자신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길은 무엇일까? 소설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은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중성과 양면성을 다이내믹하면서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남성들의 시선에 시달리면서도 “피부가 탄탄하고” “군살 없는 몸”을 보면 질투심에 빠져드는 화이, 사랑에 빠질 때는 한없이 순박하고 유치한 최승현의 폭력성, 권력욕과 함께 그만큼의 전략을 갖추고 최승현의 사업을 조종하는 권형욱, 우아하고 세련된 외모 뒤로 돈과 복수에 대한 욕망으로 살아가는 여자 주석희. 작가는 이 “어리석고 비열하고 위선적인 주인공들을 각각 한 명의 인간으로 연민하며 보아”주길 바란다. 

어쩌면 독자는 이 두 권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을지도 모르나, 어느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느 하나로 정의될 수 없는, 경계선이 불분명한 인간이라는 것이 현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도시 세태의 관찰자’라 불린 정아은 작가는 새로운 방식으로 지성과 화이의 이야기를 서술하여 이 같은 인간의 복합성을 풀어놓는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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