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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686명 ‘연구자 권리선언’... "연구자 기본활동 토대 무너져"
1천686명 ‘연구자 권리선언’... "연구자 기본활동 토대 무너져"
  • 강일구
  • 승인 2021.11.18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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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지난 16일 발표…연구자복지법 제정 추진
사진=강일구
지난 16일 국회 소통관에서 '연구자 권리선언'이 발표됐다. 사진=강일구

연구자들이 연구 현장 내 불평등에 목소리를 높였다. 13개 연구자단체로 구성된 ‘연구자 권리증진과 차별철폐를 위한 공동대책 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지난 16일 국회 소통관에서 ‘연구자 권리선언’을 발표했다.

공대위는 1천686명의 연구자가 서명한 ‘연구자 권리선언문’을 이날 발표했다. ‘연구자 권리선언’은 전문에서 연구 공공성에 대한 취약성과 함께 연구자들의 생존 위기를 설명하고 있다. 선언문은 총 9조로 구성돼 있다. △연구자의 정의 △연구자의 책무 △연구자의 평등 △연구 성과 △연구 환경 △정책 참여 △조직 결성 △사회경제적 권리 △국가의 책무 등을 정의하고 그 방향성을 담았다. ‘연구자 권리선언’은 지난 1월부터 사단법인 ‘연구자의 집’이 중심이 돼 추진해 왔다. ‘연구자 권리선언’ 서명운동은 지난달 6일부터 이번 달 10일까지 진행됐다.

연구자의 집 이사장인 최갑수 서울대 명예교수(서양사학)는 “학문·교육·예술·과학기술은 헌법에 있지만 ‘연구’라는 말은 없다”라며 “이는 연구자가 헌법적 가치를 보장받고 있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구자선언’ 발표자리에서 “연구자가 마땅히 갖고 있어야 할 사회적 존재성을 지적해 연구자가 갖는 잠재적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라고 말했다.

공대위는 이번 권리선언 이후의 활동으로 입법과 연대활동을 기획하고 있다. 가장 우선된 활동은 연구자 권리와 복지 증진, 사회안전망 확보의 제도적 기반이 될 ‘연구자 복지법(가칭)’ 제정이다. 또한, 국가지원 학술연구교수의 전면확대와 강사들의 고용보장과 처우 개선을 위한 ‘강사법 개정’에도 목소리를 낼 예정이다. 또한, 평생연구의 물적 기반 제공을 위한 ‘연구자 공제조합’과 ‘연구자 상생기금’, 대학내 성차별·학력 차별·연구부정을 신고할 ‘대학갑질 신고 119센터’를 설립할 것이라 했다.

기자회견을 공동 주최했던 유기홍 의원이 토론회에도 참여해 발언을 했다. 사진=강일구

기자회견 후에는 '연구자 권리선언의 의의와 향후 과제'란 주제로 토론회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이사장이 '연구자의 권리와 자유의 횃불'이란 주제로 발제를 맡았고, 박정원 교수노조 위원장, 박중렬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 아우창 대학원생 노조 조합원, 박치현 대구대 성산교양대학 교수(사회학), 김어진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서울경기인천지역분회 분회장이 패널로 참여했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아래는 ‘연구자 권리선언’ 전문이다.

전문

모든 인간은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자유 의지에 따라 자신의 목표를 실현할 권리를 갖는다. 이러한 권리는 진리를 추구하고 연구, 교육을 수행하여 공동체에 기여하는 연구자들에게 활동의 기본 토대가 된다. 우리는 현재 이 토대의 붕괴를 목도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연구의 공공성은 매우 취약하며, 환경 위기나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미증유의 사태를 극복하는 데 절실한 성찰적이고 창발적인 연구는 단기적 성과주의가 지배하는 경쟁 체제에 의해 안정성을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 삶의 모든 영역을 상품화하는 것이 마치 정언명령처럼 통용되면서 진리의 전당이어야 할 대학조차 사실상 기업으로 전락하였다. 무엇보다 대학 붕괴가 현실화하면서 많은 연구자들이 나락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연구자로서의 삶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공포 속에서 절망하고 있다. 연구의 공공성 위기와 연구자의 생존 위기는 단순히 연구자라는 특정 직종의 위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보편적이고 공공적 가치에 기반한 연구 활동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미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지금의 상황에 절망하여 침묵하고 있기에는 이 문제가 너무나 절실하다. 우리는 현재의 위기를 교육과 연구에서 공공성을 회복할 마지막 기회로 생각한다. 이것은 단지 그간 학문 활동의 터전이었던 대학의 공동체성을 보듬어내는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 더 나아가 인류의 생존 가능성을 확대하는 일이다. 이러한 과제를 정당하고 당당하게 수행하기 위해 연구자로서의 권리를 선언하고 사회적 책무를 밝힌다. 

제1조 연구자의 정의
연구자는 연구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체계적 지식을 연마하고 전수하며, 합리적 방법으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일체의 행위를 연구 노동이라 한다. 호기심을 품은 모든 개인은 자유롭게 연구자가 될 수 있어야 하고, 연구자는 인류 공공의 지적 체계를 갱신함으로써 공동체의 진보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야 한다.

제2조 연구자의 책무
제1항 연구자는 연구의 전 과정을 윤리적으로 수행하여야 한다. 
제2항 연구자는 서로를 학문 공동체의 동료로서 존중하여야 한다.
제3항 연구자는 인류 사회와 생태 환경을 위해 지식을 공유하고 활용하여야 한다.

제3조 연구자의 평등
제1항 모든 연구자는 각자가 속한 학문 공동체에서 동등한 의결권과 선거권·피선거권을 가진다.
제2항 모든 연구자는 젠더, 섹슈얼리티, 지위, 장애, 병력, 나이, 언어, 국가, 민족, 인종, 피부색, 지역, 학교, 신체조건, 혼인,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학력, 고용 형태,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제4조 연구 성과
연구의 모든 과정과 결과는 공적이고 윤리적이어야 한다. 연구자는 연구 성과에 대해 보상받을 권리가 있으며, 연구 성과가 왜곡·남용되지 않도록 감시할 의무가 있다.

제5조 연구 환경
연구 환경은 연구를 수행하는 물리적 공간과 학문 공동체의 문화와 제도를 포괄하는 공공영역이다. 연구자는 연구의 지속과 연구 역량의 증진을 위해 연구 환경의 안전성·안정성·개방성·독립성을 보장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1항 (안전성) 연구자는 연구 수행상의 각종 사고와 성적·정신적·물리적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연구 환경을 보장받고,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2항 (안정성) 연구자는 연구 수행을 위한 기본적인 생활과 고용 안정을 보장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3항 (개방성) 연구자는 연구 생산물, 자료, 기관 및 공동체에 대한 접근을 제한받지 않고,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환경 속에 고립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제4항 (독립성) 연구자는 연구 활동 및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위해 타인에게 침탈 받지 않는 시공간을 보장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6조 정책 참여
연구자는 연구 및 교육과 관련된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제7조 조직 결성
연구자는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연구, 교육, 노동 관련 조직을 결성할 권리를 가진다.

제8조 사회 경제적 권리
연구자는 모든 노동자, 시민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연구노동을 통하여 노동자로서의 생존, 시민으로서의 품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할 권리를 가진다. 

제9조 국가의 책무
국가는 전체 사회를 대표하여 연구 활동을 촉진하고, 학문의 독립성, 자생성, 지속성을 뒷받침하고 연구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제1항 국가는 연구자의 안정적 연구 환경을 보장하기 위하여, 연구자에게 연구 공간, 자료 접근성, 강의와 교육의 기회 등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제2항 국가는 연구자들이 생산한 지식을 대중들에게 전수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물질적, 정책적 지원을 지속하고 확대할 의무를 지닌다.
제3항 국가는 학문 공동체에 대한 연구자의 평등한 의결권 및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실효적인 정책과 제도를 마련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제4항 국가는 연구자가 학문 및 교육 분야 정책 수립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의무를 지닌다. 
제5항 국가는 연구자 관련 조직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과 제도를 마련할 의무를 지닌다. 
제6항 국가는 연구자의 사회 경제적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정책과 제도를 마련할 의무를 지닌다. 여기에는 여러 사회 보험과 연구자 생애 주기에 맞는 재정 지원 등의 제공, 재생산 권리 보장, 연구자를 위한 사회 주택의 제공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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