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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무용계 석사논문 관행, 이대로 좋은가
쟁점: 무용계 석사논문 관행, 이대로 좋은가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5.09.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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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교수를 연구해?

서울 소재 ㅇ대의 ㄱ 교수,  ㅎ대의 ㄴ 교수 등 지도교수의 춤세계를 주제로 한 제자들의 논문이 쏟아지고 있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ㅇ대 이 아무개 씨 논문은 ㄱ 교수의 작품 ‘여기에’ 시리즈의 움직임과 시각·청각적 요소를 분석하면서 “그의 춤은 근원을 잊지 않는 동시에 새로움을 추구하는 창작적 의지를 지닌 춤으로…독특한 호흡법을 창작기법에 응용해 전통의 중압감에 견딜만한 내구력을 갖추려는 노력과 세계인이 감상할 수 있는 한국의 춤, 뿌리가 깊으면서 진보적인 춤을 만들고자 한다(21쪽)”라고 평한다. 같은 학교 강 아무개 씨의 논문 역시 창무회를 넘어 무트댄스에서 펼친 활동에 주목하면서 “가장 근원적이면서 파격적 발상에서 출발했으며, 이런 전통해체작업은 동양사상체계·동양미학적인 것을 제대로 알아야 가능하며, 이를 통해 보다 현대적·원시적이며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움직임의 체계가 형성되는 것이다(33쪽)”라는 평가를 내린다.

그럼 이런 결론을 도출케 한 과정은 뭘까. 세 사람 논문의 방법론은 동일한데, 첫째, 공연관람, 비디오테잎, 무용평론, 일간지 기사 등 이른바 “객관적”인 자료를 동원하는 것이며 둘째, 지도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문헌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의 예술과 춤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다(문헌자료 동원과 관람, 인터뷰는 무용연구의 일반적인 방법론이다).

가령, 이 아무개 씨의 논문은 “ㄱ 교수의 춤은 전통적이면서 표현적이고 아방가르드적”이라는 평론가 김태원의 평이나 이옥선의 “‘여기에’가 보여준 일련의 작업은 ‘전통 재해석’ 내지 ‘한국적 소재의 춤과 민속의 재구성’의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그 의의는 부언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등을 논거로 삼고 있다. 이 외에도 김영태, 성기숙 씨 등이 언급한 ㄱ 교수 춤의 장점들이 동원된다.

문제는 자료를 동원한 과정이다. 무용평론가 김남수 씨는 이들 논문이 ‘평론가 누가 ~라 평했’고 ‘그래서 결론은 ~다’라는 식으로, 별 문제제기가 없는 걸 문제삼는다. 또한 논문자의 작품감상의 주관성을 배제하기 위해 평론가들의 평이 동원되는데 “‘객관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편향된 자료에 근거하므로 ‘비학문적’이랄 수 있다”라고 덧붙인다. 즉 스승에 대한 비판적 자료는 대부분 ‘배제’시킨다는 것. 또한 지도교수를 인터뷰한다는 건 객관적인 방법이기 어렵다는 게 여러 연구자들의 지적이다. 김남수 씨는 이런 현실 때문에 지도교수를 다룬 논문들은 “결국 스승옹호형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라며 우려를 나타낸다. 한 무용관계자 역시 “ㄱ 교수 춤의 보편적인 방법론이 아직 확립된 건 아니기에 논문으로 평가하기에는 이르”며, “혹 스승을 대상으로 삼더라도 객관성을 위해 다른 한 대상과 비교·분석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라고 덧붙인다. 타전공 쪽에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조태준 배재대 교수(연극이론)는 “지도교수를 연구한다는 건 학계 상식으로 말이 안되며, 질적인 면이 의심갈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물론 논문이 찬사쪽으로 기우는 건 평론계의 탓도 크다. 비평간의 상호담론 과정이 없다시피 하며, 비판없는 비평이나 평론가와 안무가(무용가)의 밀착관계는 무용계 고질병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런 평론가들의 평이 연구논문의 주 자료가 되고 있는 것.  

나아가 석사학위 연구자들 대부분이 선행연구로 동일한 지도교수에게 학위를 받았던 논문들을 참조·인용한다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들이 있다. 예컨대, 신 아무개 씨의 논문은 1년 앞선 김 아무개 씨 논문이 ㄱ 교수의 춤세계를 ‘총체예술’로 규정한 것을 따라 그 춤세계를 정의하는 식이다. 조태준 교수는 “이런 식의 논문은 일종의 자기복제랄 수 있다”라며 일침을 가한다. 김남수 씨 또한 “완벽하게 동어반복적인 글들이 나오는 건 스승을 더 신비화 시킬 우려가 있다”라고 지적한다.

ㅎ대 ㄴ 교수에 대해 연구했던 최 아무개 씨의 논문도 마찬가지다. ㄴ 교수의 춤을 언급하면서 별다른 論함이나 문제제기 없이 “ㄴ 교수는 자신만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창작세계에 몰두해 한국적 현대무용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 외 前 ㅈ대 ㄷ 교수에 대한 연구논문을 비롯 평론가들이 지도교수 연구논문쓰기를 문제삼는 건 또 다른 이유는 아직 이들이 무용사에서 확고한 위치를 견지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이다. 무용계 논문이라면 작품에 대한 미학적인 분석과 무용사적인 측면 양쪽이 모두 고찰돼야 하는데, 아직 중견급이라 무용사적으로 논할 단계가 아니라는 것.

무용평론가인 이상일 前 성균관대 교수는 “생존해 있는 지도교수를 연구하는 건 말이 안된다. 독일 등에선 연구대상자의 사후 50년 정도는 돼야만 연구논문이 나오기 시작한다”라고 덧붙인다. 이는 “지도교수가 자신을 논문주제로 허락하는 건 교수로서의 양심문제”라고 지적한 김남수 씨 등의 말과 더불어 무용계가 귀담아 들어야 할 지적일 것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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