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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쟁점: 박종홍 철학 '또' 도마 올라
학술쟁점: 박종홍 철학 '또' 도마 올라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08.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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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의 주름, 그 깊은 곳을 탐사하다

열암 박종홍의 철학에 대해 ‘또’ 비판적 물음이 제기됐다. 지난 8월 20일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과 충남대 인문과학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화혼양재와 한국근대’ 학술대회에서 이하배 성균관대 연구교수(동양철학)는 박종홍 철학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면서 이것이 어떻게 박정희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는지를 살피고 있다.

그는 ‘박종홍 철학 비판’이라는 발제문에서 박종홍의 철학이 ‘동양’과 ‘서양’,‘철학’과 ‘현실’ 사이의 ‘두 분열’을 극복하고자 했으며, 그 극복 ‘과정’에 집중해서 박종홍 철학을 살피고 있다.

그는 이중의 분열을 어떻게 극복했나

이 교수는 박종홍이 “서양철학에 대해서는 주체적”이고 “근대화의 지상과제를 실현”하는 데 쓸모있는 현실적인 철학을 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주체성’에 대한 그의 추구는 퇴계를 가장 “深奧 精密한 사상가”로 추인하고 서경덕과 이이를 중국 못지않은 사상가로 규정하게 한다. 더 나아가 중국을 넘어서기 위해 동학의 ‘인내천’ 사상을 ‘우리’ 안에서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전통의 주체성을 확립한 박종홍은 과학기술을 통한 조국의 근대화를 유난히 강조했다고 이 교수는 말한다. 1973년에 발표된 그의‘한국사상, 오늘의 과제’는 장엄하게 시작한다.

“우리는 활주로를 달리던 비행기가 하늘로 막 날아올라 목적지를 향하여 힘껏 속력을 내기 시작하려는 가장 긴장된 때를 살고 있다. 이에 알맞은 모든 시책과 우리가 취하여야 할 자세를 통틀어 維新이라고 부른다. …경제발전이 어느 정도 이뤄지니까 비행기가 제 항로에 완전히 돌입하기도 전에, 잡담이나 하며 한가로이 담배를 피워 문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봐야 한다”라고 박종홍은 강조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급템포로 꾸준히 약진해가야” 하는 시기에 “온갖 의견이 난무”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老 철학자의 육성을 발제자는 다시 지금 이 시점으로 불러온다.

그렇다면 박종홍은 어떻게 이런 확신에 찬 전 국민의 “일심동체론”을 주창케 되었는가. 이 교수는 성리학에 대한 그의 해석을 문제 삼는다. 박종홍은 현실을 말하면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성리학의 사변성과 고립성을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다카하시 도루의 철학이 갖는 문제점, 즉 “리기성리 문제에 집중하면서 성리학의 ‘안’(사회에서 고립된 개인의 심성)과 ‘위’(사변적이고 추상적 문제들)에 성리학과 함께 머무르며” 과거의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반복하는 것에서 ‘대동소이’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유교를 ‘仁’, 즉 인간관계로 보고 사람들이 협동하는(人和) 것을 중요하시는 박종홍의 철학이 앞의 ‘비행기’ 비유에 어떤 식으로 들어가 있는 지를 드러낸다. “비행기”와 “승객”의 이항대립은 바로 ‘지도자’와 ‘국민’이라는 ‘수직적’ 인간관계의 단적인 표현이며, 더 나아가 성리학의 군자론을 영도자론으로 오도한다는  것이다. 박종홍은 ‘인간(민족)개조론’을 통해 국가의 大業에 대한 국민들의 자발적 복종의 논리를 “밝은 불로 모여드는 매미”라고 말하며 순자의 “밝은 덕”과 일치시키는 데, 이에 대해서도 박종홍은 매미의 ‘자발적 복종’이 ‘자발적 희생’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했다고 비판한다.

결국 비판자는 다카하시에 의해 현실적 맥락에서 이탈된 추상적 성리학을 내면화한 박종홍 철학이, 그것을 주체성의 이데올로기로 만들었고, 특히 성리학의 수직적 ‘인간관계론’을 ‘현실’에 대입시켜 경제발전논리를 만들어냄으로써 ‘부정적인’ 방식으로 철학의 현실화를 이뤄냈다고 말한다.

“현실과 자신의 만남을 내면화한 관념성”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김경수 고려대 연구교수(서양철학)는 한걸음 더 나아가 박종홍이 유교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외면함으로써 추상성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현실과 자신의 개별적 만남을 내면화한 관념성에 빠지게 되었다”라고 비판한다. 김 교수는 “박종홍 초기철학의 한 축을 맑시즘이라 하는데, 실제로 그의 철학에서는 유물론적인 틀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박종홍에겐 “구체적 현실을 구체적으로 비판해주는 논리가 없이, 그저 사변적 현실개념밖에 안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이다. 그래서 모든 추상적 변증법이 그렇듯 이현령비현령 식으로 개발독재의 옹호논리로 가게 된 것이라고 김 교수는 본다.

또한 그는 박종홍의 1933년 경성제대 철학과 졸업논문이 하이데거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을 들며 하이데거-히틀러, 박종홍-박정희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대비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는 박종홍이 1944년에 총독부 학무국 촉탁, 미군정 하 경성제대 국대안을 위해 비밀리에 활동한 사실, 5·16 후 국가재건 계획위원, 국민교육헌장 제정, 대통령 특별보좌관 등 권력의 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이 찾아진다고 주장했다.

이번 발제문과 토론문은 전통과 근대화를 강조한 박종홍 철학이 현실과 만나면서 어떤 굴절을 겪고, 담론의 구조를 만들었는가를 밝힘으로써 학계에 또 하나의 논쟁거리를 던지고 있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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