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04:00 (금)
로스쿨 파동 이후 달라진 학원가
로스쿨 파동 이후 달라진 학원가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5.08.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능력 있으면 '司試', 돈 있으면 '로스쿨'

로스쿨 도입이 오리무중이다. 지난 해 사법개혁위원회가 2008년부터 로스쿨 신입생을 선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로스쿨 총정원과 지역안배 등을 둘러싸고 설전이 오고가는 와중에 도입 자체에 의구심을 보내는 이가 많아졌다. 로스쿨 유치에 적극적인 대학과 교수들도 어느덧 노무현 정부가 집권 하반기에 들어섰다는 점까지 의식하면서 도입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낸다.

로스쿨 도입은 안개 속이지만 법조인을 꿈꾸는 학생들의 대응은 재빠르다. 특히 2008년 로스쿨 신입생 선발에 때를 맞출 수 있는 학부 저학년 학생들은 주판알을 퉁기는 손놀림이 빨라졌다.

▲1년 사이에 신림동 고시촌 학원가에는 서울의 메이저급 대학의 학부 1~2학년생이 급증했다. 고시학원도 2008년 이전에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고 유혹하는 중이다. 사진은 신림동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고시학원 모습. © 이민선 기자

△서울의 메이저급 대학 재학생들= 일단 사법시험에 ‘올인’하는 분위기다.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 온지 6년째인 김영희 씨(30세)는 “2008년부터 로스쿨 신입생을 선발한다는 이야기가 나돌면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의 학부 1~2학년 학생이 대거 보이기 시작했다”라고 말한다.

이들 대학의 학생들은 사법시험 준비에 들어가면 최소 3년 안에 끝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로스쿨의 비싼 등록금을 감당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분위기다. 지난 3월부터 신림동 고시촌에서 사법시험을 준비 중인 안성훈 씨(연세대 법학과 3학년)는 “학부 1~2학년들은 2008년 이전에 사법시험에 통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런 까닭에 학부 저학년 10명 중 8명이 로스쿨 보다는 사법시험에 매진하고 있다”라고 말하다.

사법시험이 성적에 따라 ‘안정적 지위’를 보장한다는 점도 로스쿨보다 매력적인 이유다. 전주리 씨(서울대 법학부 1학년)는 “사법시험을 통과할 경우 성적이 좋으면 안정적인 판사와 검사를 할 수 있지만, 로스쿨을 나오면 변호사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학생들이 로스쿨을 기피하는 분위기”라고 전한다.

그럼에도 학점 관리는 필수 사항이다. 이미예리 씨(연세대 사회계열 1학년)는 “로스쿨 도입이 확정되면 경영이나 경제전공을 해서 로스쿨에 입학할 생각인데, 그 때문에 학점관리를 철저히 해두고 있다”라고 말한다.

△가정형편이 좋은 학생들= ‘은밀히’ 로스쿨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특히 어학 능력이 조금 뒤떨어지지만 가정형편이 좋은 지방대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재형 조선대 교수(법학과)는 “지난해부터 뉴질랜드 등으로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를 떠나는 법대생이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라고 말한다. 전반적으로 법대생들이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를 떠나지 않았던 선례에 비춰봤을 때, 최근의 경향은 주목할 만 한 일. 교환학생 지원 목적을 물어보면 로스쿨 입학을 염두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서울 소재 ㅎ대 법대생의 경우에는 벌써부터 사회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3월 서울의 모 야학에서 야학 교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한 것. 그는 지난 10월 사법개혁위원회가 사회봉사활동을 로스쿨 입학자격에 포함한 것을 확인하고 야학교사에 지원했다고 밝혔다. 물론 로스쿨 입학만을 위해 야학활동에 뛰어든 것은 아니지만, 이를 염두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지방대 출신,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 이들 학생들은 사법시험에 목숨을 건 모습이다. 보통 법대생의 20~30%가 사법시험을 준비한다는 원광대 법학과의 경우 로스쿨은 아직 먼 나라 이야기다. 이광석 씨(원광대 법학과 3학년)는 “로스쿨 등록금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이야기 때문에 로스쿨 입학보다는 사법시험에 빨리 붙고 보자는 심리가 팽배하다”라고 말한다.

흡사 서울의 덩치 큰 대학의 분위기이지만, 이들 학생들 머리에는 로스쿨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강태정 조선대 법과대학 학생회장은 “많은 학생들이 사법시험에서 실패하면 로스쿨 입학보다는 취업으로 눈을 돌리겠다고 말한다”라고 전했다.

△학생지도 난감한 법대교수들= 로스쿨 유치에 사력을 다하는 대학과 교수들도 아직은 학생들에게 로스쿨 준비를 적극적으로 권유하지 못하고 있다. 송종준 충북대 교수(법학과)는 “아직 로스쿨 확정안이 나오지 않아서 학생들에게 사법시험과 로스쿨 중 어느 것을 선택하라고 말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세부안이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어떻게 조언할 수 있느냐는 것. 이로 인해 구체적인 지도를 하지 못한 채 학점관리와 영어능력을 강조할 뿐이다. 강대성 경상대 교수(법학과)는 “로스쿨 입학에 있어 학부성적이 중요하다는 점, 지방대 학생들이 어학능력이 떨어지니 이에 좀더 노력을 기울일 것 등을 강조하는 수준이다”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이미 ‘로스쿨식 교육’을 실시해 온 대학은 상대적으로 느긋한 편이다. 방승주 영산대 교수(법률학부)는 “영산대는 이미 2002년도부터 로스쿨식 교육을 해왔으니 학업에 충실한 것이 로스쿨 입학의 최선책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자신감에 찬 모습이다. 법률학부 65명의 교수 가운데 52명이 판검사 출신, 또는 국내 유명 로펌 소속 변호사로 채워져, 로스쿨이 요구하는 실무 중심의 법률 마인드를 학생들에게 확실히 심어주고 있고, 이는 로스쿨 입학과 무관치 않으리라는 계산이다.

방 교수는 “학과가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사법시험 합격자가 없지만, 향후 1년 사이에 최소한 사법시험 1차에서 합격자가 배출될 것”이라며 사법시험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