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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시민미디어론』(최영묵 지음, 아르케 간, 477쪽, 2005)
서평: 『시민미디어론』(최영묵 지음, 아르케 간, 477쪽, 2005)
  • 정용준 전북대
  • 승인 2005.08.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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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미디어의 개혁이 먼저

정용준 / 전북대·신문방송학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주류언론들이 그동안 정치권력과 유착하여 소위 ‘가진 자’들을 지지하고, 평범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에 미디어 권력의 대폭적인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킹메이커라 불릴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주류언론들이 공격받는가하면, 기자실 출입조차 못하던 인터넷언론이 새로운 대통령을 만들기도 하였다. 또한 KBS에 ‘열린채널’이라는 시청자 제작프로그램이 정기적으로 편성되었고, 위성방송에 시민채널이 시작되었다.

그동안은 상상하기 힘들었던 미디어 권력구조의 변화를 시민사회의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분석한 것이 ‘시민미디어론’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시민방송(RTV), 영상미디어센터 등 시민언론단체에 깊숙이 관여한 언론활동가이자 학자이다.

이 책에서 저자의 문제제기는 단순명쾌하다. 국가 및 시장의 언론과 함께 시민과 지역공동체의 시민미디어도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80년대 중반이후 한겨레신문으로부터 시작된 시민미디어의 발전맥락과 하버마스의 근대적 공공영역이론과 같은 서구의 시민 미디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시민미디어의 역사적,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시민미디어의 발전을 케이블TV의 퍼블릭 액세스채널, 커뮤니티 라디오, 시민위성방송, 시민 인터넷미디어, 영상미디어센터 등의 다양한 국내외 사례를 통하여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진보적 언론학자로서 다소간 이상향으로만 제시하였던 시민미디어를 현실 속에서 하나하나씩 실천해낸 것이다.  

저자는 시민미디어가 국내에서 뿌리를 내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케이블TV의 액세스채널은 재정적, 제도적 지원의 미흡으로 형식화되고 있으며, 최근에 시범적으로 실시되는 공동체라디오는 주무부처간의 주도권 싸움과 출력제한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진단한다. 또한 시민위성채널은 공공채널로 지정되어 국가채널과 동등하게 다루어져야 하며, ‘오마이뉴스’ 같은 인터넷시민언론은 눈부신 발전을 하였지만, 상업적인 광고재원에 복속될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영상도서관, 독립영화 전용관 등의 인프라 확충을 영상미디어센터의 향후 과제로 제시한다.

하지만 시민미디어의 활성화를 위하여 몇가지 의문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주류미디어 개혁과 시민미디어의 관계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평자가 보기에는 시민미디어의 활성화보다는 주류미디어 개혁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뉴미디어 시장과 기술 그리고 국가의 법적 개편작업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캐나다의 언론학자인 라보이(M. Raboy)가 시민미디어의 활성화를 위한 법적, 시장적 개입정책을 놓친 것을 두고 ‘잃어버린 기회(missed opportunity)'라고 하였다. 저자 역시 책에서 바론의 액세스론이 가진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독점자본이 지배하는 기존의 언론구도가 불변인 상태에서 시민의 제한적 권리’만 획득한다는 비판을 한 적이 있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시민미디어론’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주류 미디어 개혁과 시민미디어 활성화가 선차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 및 국가분석에 입각한 주류 미디어 개혁이 부족하면 시민미디어의 범주를 협소화 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또한 시민사회와 시민미디어의 한계에 대한 지적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와 시민미디어가 초고속성장을 하면서 문제점도 부각되었다. 이를테면, 디지털지상파 전송방식(DTV), 지역방송의 지상파 재송신 문제 등에서 시민사회는 언론노조의 기득권주의에 동조한 것이 사실이다. 시민언론단체들이 급속하게 성장하여 방송위원회 등 국가기관에 대한 영향력이 강화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없는 엘리트주의’에 빠진 면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시민사회의 활성화를 위한 국가민주화라는 키인의 이중적 민주화보다는, 역으로 국가의 시민사회 포섭전략에 빠진 면도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언론활동가로서의 시민미디어에 대한 애정과 국내외 시민미디어 사례에 대한 학자적 성실성이 돋보인다. 다음 증보판을 통하여 한국시민사회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로컬리즘에 대한 분석이 내재된다면 시민미디어론이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내친김에 일제 때부터 지금까지의 ‘시민언론운동사’를 필생의 지적 작업으로 정리해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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