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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의 얼굴들
법정의 얼굴들
  • 이지원
  • 승인 2021.11.05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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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지음 | 모로 | 384쪽

『어떤 양형 이유』 박주영 판사 신작

소설가 장강명 추천

 

세상의 프레임 바깥에 존재하는 법정의 얼굴들

뭉개지고 흐려진 이들을 기억하려는 판사의 기록

구속, 무죄, 유죄, 선고, 징역, 재판, 형량… 형사법정에 올라온 사건들은 주로 한 단어나 문장으로 정리된다. 법정 밖 사람들에게 형사법정은 유무죄를 가리는 곳에 지나지 않지만, 기사 한 줄과 형량 너머 법정에는 뭉개지고 흐려진 ‘얼굴들’이 존재한다.

저자는 법정에서 이런 이들의 얼굴을 계속해서 봐왔다.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끌어안다 스스로를 해한 청년, 사랑받아야 할 보호자에게 맞아 생명을 잃은 아이, 장기간 성폭행을 당한 여고생, 돈이 없어 교도소에 들어가려는 노인··· 이들의 삶은 아예 설명되지 않거나 ‘편의점에서 빵 훔쳐··· 징역 1년’처럼 기사 헤드라인 한 줄로 언급될 뿐이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세상에게, 보호자에게, 대물림된 가난에게 받은 피해는 평생을 간다. 결국 회복 불가능한 상실을 견디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이들이 끊임없이 돌아나오는 회전문 같은 현실을 바꿀 수는 없는 걸까? 안타깝고 슬픈 감정으로 잠시 소비되고 마는 피해의 이면에는 구체적인 삶의 서사가 존재한다. 우리가 취할 최선의 태도는 보이지 않는 서사를 꼼꼼히 기록하고 함께 아파하는 것이다.

“뉴스가 없으면 문제도 없다. 서현이, 정인이, 김용균, 이스라엘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그들의 죽음을 기록하고 알리는 것이다. 사회적 공분도, 적절한 처벌도, 법률과 의료 시스템의 개선도 그 후 뒤따라온다.”

 

사람을 살리는 이념과 정의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주로 악마나 괴물에 비유되곤 한다. 저자도 법정은 “온갖 악이 흘러드는 바다 같은 곳”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그러나 영화 「조커」의 ‘아서’가 날 때부터 ‘조커’가 아니었듯 법정에 선 모든 악도 처음부터 거악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로지 아래로만 향하는 질기고 비열한 폭력, 아프고 병든 사람들을 모른 체하는 걸 넘어 조롱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들, 가난뿐만 아니라 범죄도 대물림되는 현실이 실재하는 세상에서 악은 조금씩, 서서히 발현된다.

서로 내가 옳다며 싸우고 모두가 불의해서 정의가 사라진 부조리한 사회를 건너기 위해 가져야 할 올바른 입장은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불의한 세상에서 홀로 싸우는 개인을 방치하지 않는 것, 단 한 명도 희생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갈등이 첨예하고 혐오와 증오가 충만한 시대의 이념은 사람이어야만 한다. 『법정의 얼굴들』을 읽은 독자들은 알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욕망해야 할 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뿐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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