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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신조류 신문화사…사회사의 보완인가 새로운 대안인가
역사학 신조류 신문화사…사회사의 보완인가 새로운 대안인가
  • 이세영 기자
  • 승인 2000.11.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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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대담] 조한욱-이영석 교수
사회 : 오늘의 주제는 ‘역사학의 위기와 새로운 역사학’입니다. 우선 ‘역사학은 과연 위기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고 봅니다. 어떻습니까. 과연 위기입니까? 만약 위기라면 그것은 어디서 시작되었고 위기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영석(이하 ‘이’) : 위기를 정의하는 방법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학의 전문 역사학은 확실히 위기입니다. 우선 대학에서 전문역사학을 지망하는 후속세대가 감소했습니다. 연구비를 포함해서 지원도 예전과 같지 않아요. 인문학적 가치를 도외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문젭니다. 저는 위기가 찾아든 데는 역사학자들의 책임도 있다고 봅니다. 저만해도 논문을 꽤 많이 쓴 편이지만, 과연 그 논문들이 누구를 대상으로 한, 무엇을 위한 논문들이었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무엇보다 역사학의 연구성과가 대중들에게 아무런 지적 긴장도 가져다 줄 수 없는 현실은 우려할 만합니다.

역사학, 과연 위기인가

 

조한욱(이하 ‘조’): 역사학의 위기는 단지 해체론자들의 수사가 아닙니다. 그들은 오히려 역사학의 위기를 극복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이죠. 위기를 만들어낸 것은 오히려 기존의 역사학자들 자신입니다. 아무튼 위기의 핵심은 기존의 역사학 패러다임이 무너져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학자가 어느 위치에 서있는지에 따라, 위기는 동시에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만일 19세기 역사학의 학문적 기준을 고집한다면 위기는 치유될 수 없어요.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역사학 발전의 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 : 조 선생님 말씀에 수긍합니다. 하지만 역사학계가 새로운 학문적 시도들에 대해 보여온 태도의 보수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베버의 사회경제사, 미국의 지성사, 아날학파, 맑스주의 역사학에 대해 당시의 학계가 보였던 반응을 생각해 보십시오. 한결같이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존의 학계는 충격을 흡수하면서 변화해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사실 해체론자들의 극단적 상대주의에 동의하는 역사가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학이 상대주의를 좀더 인정해가는 추세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조 : 사실 위기에 대한 담론이 오간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진전입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역사학에 상업적·실용주의적 잣대만을 적용하려는 오늘날의 ‘제도들’이죠.

사회 : 그럼, 미시사·신문화사로 대표되는 새로운 역사학은 역사학의 위기에 대한 대안일 수 있을까요?

 

조 :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사실 20세기 역사학의 목표는 역사의 거시적인 틀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사가 대표적이죠. 반면 새로운 역사학은 그러한 틀이 민중들 개개인의 삶에 대한 탐구를 오히려 방해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점에서 새로운 역사학이 기존의 역사학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도 당연하지요. 그런데 대상이 달라지면 방법도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사료를 새롭게 찾아야 하니까요. 저 역시 새로운 역사학이 기존 역사학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신문화사’라는 것도 사회사적 성과가 축적되어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것 아니겠어요? 그렇다고 신문화사가 사회사를 보완하는 ‘잔여적’ 방법론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인생은 두꺼운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사회사로만 볼 수 있습니까? 저로선 ‘대체냐 보완이냐’를 굳이 따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 : 조선생님 말씀처럼 역사학의 위기는 수사가 아닙니다. 하지만, 패러다임이 변했다는 조 선생님의 주장에는 과장이 섞여있다고 봅니다. 문화를 통해 사회를 본다는 신문화사의 문제의식에는 저 역시 공감하는 편입니다. 사회사가 강조하는, 신분이나 계급, 토대/상부구조 같은 거대개념들로는 일상적이고 미시적인 삶의 결들을 포착하긴 힘들거든요. 통계적 방법 등을 도입한 수량모델 역시 마찬가집니다. 사실 사회사를 전공하는 제가 보더라도 사회사는 정말 건조해요. 기껏해야 뼈대밖에 볼 수 없으니까요. 신문화사란 이를테면 사회사의 뼈대에 살을 붙이는 작업이죠. 문제는 신문화사 연구들 가운데는 센세이션만 있지 학문적으로는 부실한 작업들도 적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사실 영국사를 전공하는 제가 신문화사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습니다. 프랑스사와 달리 영국사에는 미시사적 연구가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사회사 연구자들이 불리한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고 봐요. 그런데 신문화사 연구자들은 사회사 연구의 축적물을 토대로 작업을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사회사가 신문화사에서 도움을 얻는 것보다는, 신문화사가 사회사에서 얻는 것이 많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불만인 것은 신문화사를 소개하는 글은 많지만, 그것을 실제연구에 적용한 사례도 없고, 그것을 어떻게 역사연구에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국내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 : 제 입장은 다릅니다. 사실 지금은 신문화사를 소개하는 작업만으로도 버거워요. 제대로된 신문화사를 하려면, 일단 사회사적 선행연구들을 섭렵해야 하고, 소재를 알아야하고, 소재에 대한 해석을 알아야하고, 그리고 당대의 관례를 알아야 합니다. 민속학적·인류학적 지식, 심리학적 해석 등을 총동원해 사료를 이해한 다음, 상상력을 발동시켜야 하는 것이죠. 저도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요. 그런데 국내에서 서양사를 연구하는 사람에게 그 정도의 완벽함을 요구하는 것은 무립니다. 결국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신문화사의 시각과 방법론을 소개하고, 그것을 우리역사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수준까지입니다.

사회 : 그런데 신문화사가 주창하는 ‘아래로부터의 역사’는 이미 사회사가들이 갖고 있던 문제의식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새로운 역사학은 무엇이 새로운지에 대한 문제제기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조 : 신문화사가 과거의 문화사와 다른 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무엇보다 문화사에서 말하는 문화는 어디까지나 엘리트들의 고급문화일 뿐입니다. 그러나 신문화사는 평범한 대중들의 사고와 삶의 방식에 주목합니다. 연구대상이 다른 셈이지요. 다음으로, 기존의 문화사는 문화를 서술해야할 대상으로 상정합니다. 그런데 신문화사는 ‘문화를’ 보려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통해서’ 보려고 합니다. 과거에 존재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를 규명하고, 이를 통해 그들의 전반적인 삶의 진실에 다가가려는 시도인 셈이죠.

새로운 역사학은 무엇이 새로운가

 

이 : 글쎄요. 평민이나 하층민의 삶에 대한 연구는 신문화사가 등장하기 전부터 시도된 것 아닙니까?구조를 특권화하는 오늘날의 사회사와는 거리가 있지만, 태동기의 사회사 연구에서는 이미 사회적 일탈자나 여성, 특수집단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여성사 분야를 제외하면, 신문화사의 스펙트럼 내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문화를 통해서 사회를 본다는 신문화사의 캐치프레이즈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문화를 통해서 본다는 것. 물론 발상은 좋습니다. 그런데, 문화를 통해서 사회를 본다는 것이 저로선 쉽게 피부에 와 닿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보는 것이 문화를 통해서 보는 것입니까? 실제로 코플란의 책은 논문 하나하나가 정련되어있고 통찰력도 뛰어납니다. 그런데 막상 책장을 덮고 보면, 논문이 던져주는 11세기의 이미지나 상은 여전히 애매합니다.

조 : 신문화사의 연구대상이 과거의 사회사와 비교해볼 때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는 이선생님 지적은 수긍할 수 없습니다. 특이한 삶을 사료로 삼는다는 것은 특이한 삶을 통해 전체적인 사회상을 파악하려는 것입니다. 어떤 종류의 역사가 됐건 개인의 삶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것은 역사가 아니라 신변잡기일 뿐입니다. 신문화사가 그것과 다른 점은 개인의 삶을 통해 당대의 권력구조와 그것이 일상인의 삶에 미친 영향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이선생님은 (신문화사가)그림이 안 그려진다고 하셨지만, 저는 구조와 계급을 말할 때 오히려 그림이 안 그려지는군요.

역사학에서 ‘객관성’과 ‘인과성’

 

이 : 저는 개인사의 재현을 통해 사회의 표준적 인간, 표준적 삶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견해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도 평균에 해당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연구대상의 선택에 아무리 엄밀한 숙고가 뒤따른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특정한 개인에 관한 연구에 머무를 뿐입니다.

조 : 물론 신문화사가 보여주는 개별자에 대한 흥미를 19세기 역사학의 유산이라 치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사료를 통해 당시에 통용되던 전반적인 삶의 문법을 얼마든지 독해할 수 있습니다. ‘마르땡 게르의 귀향’이 보여주듯 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마을사람들이 결혼은 어떻게 했고, 제사는 어떻게 지냈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죠.

이 : 저는 가끔 사회사 연구에 원용할 2차자료로 신문화사 연구를 참조합니다만, 그때마다 왠지 모를 부족감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조 : 글쎄요. 저는 오히려 신문화사 연구가 사회사 연구를 이용하는 것보다, 사회사 연구자들이 신문화사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용이하다고 봅니다. 전공자가 아닌 한, 그 방대한 사회사 자료를 섭렵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미 탄탄한 학문적 지반을 다진 사회사 전공자라면 신문화사의 새로운 틀과 사료를 소화하기가 훨씬 쉽지 않겠어요? 아울러 ‘표준’의 문제와 관련하여 한마디 덧붙이자면, 지배자의 시선에서는 예외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삶도 피지배자의 입장에선 정상일 수 있는 법입니다. 단턴의 말을 빌자면, 아무리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행위라 할지라도 전체적인 관용어의 어법 속에 이뤄지기 마련이니까요.

사회 : 역사이론의 쟁점 문제로 화제를 돌렸으면 합니다. ‘객관성’과 ‘인과관계’라는 전통적 역사기술의 이념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것처럼 보이는데요.

 

이 : 해체론적 입장에선 사료 자체가 하나의 텍스트에 지나지 않습니다. 역사서술도 하나의 텍스트이며, 따라서 객관성이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지요. 게다가 언어란 끊임없이 미끄러져 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언어로 쓰여진 역사가 객관성을 갖는다는 것은 그들이 볼 때 넌센스죠. 그런데, 역사가가 과거를 재현한다고 할 때, 자신이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그려낸다고 말하는 역사가는 없습니다. 가능하면 근사하게 과거를 그리려고 노력할 뿐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역사가가 객관성에 도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객관성에 도달하려 노력한다는 것은 다릅니다. 역사가에게 객관성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목표입니다. 만일 역사가 스스로 객관성을 부정한다면 이미 그는 역사가가 아닌 셈이지요.

조 : 동의합니다. 역사적인 사실이 없었다고 주장한다면 역사학 자체를 부정하는 셈이니까요. 그러나 저는 오히려 불가지론에 가깝습니다. 역사가가 특정시점의 총체적 사회상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새롭게 보는 방식이 나올 수 있습니다. 보는 방식이 달라지면 대상도 달라보이는 것이죠. 물론 사건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저는 실재론자입니다. 그러나 알아가면 갈수록 알지 못하는 것들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결코 역사적 실재의 궁극에 다다르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알려는 시도를 멈출 수는 없죠. 멈춘다면 그것은 허무주의입니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객관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는 방식에 따라 사물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상대주의적 인식이 아닐까요? 사회사의 오류는 자신들의 방법만이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는 유일한 통로라고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이 : 저는 아직까지 카아의 ‘역사란 무엇인가’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봅니다. 카아의 주장은 역사가가 취해야 할 최선의 태도는 史實에 충실한 것이지만, 기록과 함께 왜곡이 발생하고, 사료를 해석하는 과정에 주관이 개입함으로써 발생하는, 실재와 인식의 괴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인과관계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왜 일어났느냐’라는 문제를 두고 한 세기 동안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없었어요. 이 사실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저는 그것이 ‘역사가란 인과관계를 만들어내는 존재’라는 사실을 실증한 것이라고 봅니다. 푸코식으로 말하자면, 인과관계란 ‘역사가의 오류’에 다름 아닌 셈이지요. 그런데 인과관계를 포기하면 역사연구의 추동력이 상실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실증적인 탐사가 불가능하죠. 물론 설명이 아닌 묘사를 통해 과거의 재현을 풍요롭게 하는 것도 대안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것을 너무 등한히 해왔거든요. 게다가 묘사를 도입하면 문학성이라는 전리품을 덤으로 얻게되는 이점도 있어요. 독자까지 확보할 수 있구요. 사실 역사에 인과관계가 있느냐 없느냐는 결론이 없는 문제입니다. 다만 ‘객관성’과 마찬가지로 ‘인과관계’를 포기하면 역사연구가 불가능하다는 점만은 확신합니다.

한국사와 새로운 역사학

 

조 : 헤이든 화이트의 말대로 역사학자도 소설가와 다름없는 작업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역사가의 작업에도 문학적 비유는 빠질 수 없으니까요. 심지어 헤이든 화이트는 역사와 문학은 경계가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역사란 인과성이 아니라, 역사가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얘기죠. 사실 역사의 인과관계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로선 파악이 불가능합니다. 이후세대의 역사가가 인과관계를 구성하는 것이지요. 유념할 사실은 헤이든 화이트의 진술이 역사에도 문학성이 들어있다는 것이지, 역사와 문학이 같다는 진술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역사와 문학의 차이는 사라질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역사가는 사료가 말해주는 것만을 말하는 존재입니다. 가공의 인물을 내세워 허구를 말해선 안되지요. 이러한 점에서 역사가는 사실의 족쇄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사회 : 새로운 역사학이 한국사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조 : 궁극적으로 신문화사의 방법론을 배워서 사용할 영역은 한국사입니다. 그런데 한국사 연구자들은 새로운 방법론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합니다. 식민지 경험과 분단, 전쟁 같은 ‘무거운’ 체험의 영향 때문인지 지금까지의 한국사는 온통 거시사 일색이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젊은 연구자들의 새로운 작업들은 충분히 주목할 만합니다. 김진송의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나 변영주의 다큐영화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역사서들입니다. 몇몇 소장학자들을 중심으로 미시사를 수용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습니다. 고무적인 현상이죠.

이 : 한국사회는 전근대와 근대, 탈근대가 공존하는 사회입니다. 위기와 고난으로 점철된 시간대를 통과해 오면서 우리세대의 역사가들은 자연스럽게 무겁고 견고한 근대성에 집착했습니다. 제한된 연구인력을 가지고 뭔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대단했죠. 역사가는 자기가 태어나고 자라난 시대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법입니다. 사회사와 미시사의 갈등이 한국에서는 세대간의 갈등으로 표출되는 것도 어찌보면 세대간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진행, 정리 : 이세영 기자 syle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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