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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四: 결코 놓칠 수 없는 전시&공연
여름 四: 결코 놓칠 수 없는 전시&공연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5.08.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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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시간의 '니벨룽의 반지', 이번 기회가 아니면...

지난 해 국내 오페라 마니아들을 한숨 짓게 했던 공연수준이 올해는 몰라 보게 달라졌다. 상반기에도 그랬지만, 올 9월부터 관객들을 흥분시킬 공연들이 이어질 예정이다.

우선 모든 시선이 쏠리는 곳은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세종문화회관, 9.24~29)다. 이용숙 오페라 평론가, 정이창 문화평론가가 ‘강추’한다. 독일에서는 이 오페라를 보려고 몰려든 유럽관객들 때문에 3~4년 전부터 예매해야만 티켓을 손에 쥘 수 있다고 한다. 특히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지휘자’라 추앙받는 현대음악의 거장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손으로 아시아에서 초연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지하듯, 이 오페라는 총 4부로 17시간에 달한다. 이용숙 씨는 “예습을 하지 않고 본다면 앉아 있는 자체가 곤혹일 것이다”라고 충고한다. 자막이 나오긴 하지만, 대본의 내용을 잘 따라가야만 오페라의 맛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동안 쪼개어 공연되는데, 하루만 갈 거라면, 장엄하고 음산한 음악이 흐르는 2부 ‘발퀴레’를 추천한다.

국립오페라단이 들고 올 베르디의 ‘나보코’(예술의전당, 10.5~9)를 손꼽아 기다려도 좋을 것이다. 국내에 자주 등장하는 레파토리인 ‘리골라토’나 ‘라트라비아타’에 식상해 있는 이라면, 좀처럼 접하기 어려웠던 ‘나보코’를 권한다. 나보코 역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성악가 레나토 그루손이 함께 온다. 나이가 들어 목소리가 예전같지 않다는 후문이 있지만 말이다. 이 외에 조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쉐니에’(예술의전당, 10.28~31)도 드문 기회며,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11.22~26), 구노의 ‘파우스트’(성남아트센터, 11.24~27)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일우정의 해를 맞아 좋은 작품들이 많이 왔다. 지난 6월 ‘부토 페스티벌’에 이어 일본 전통 가무극 ‘노(能)’(정동극장, 8월 12일)가 우리 곁을 찾아온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7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노’는 가부키와 더불어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극이다. ‘오모테’라는 가면을 쓰고 ‘노 쇼유조쿠’라는 화려한 의상을 입고 느린 음악에 맞춰 절제된 연기와 춤을 보여준다. 무용월간지 ‘몸’의 편집장 최해리 씨는 “올해 주목할만한, 놓치기 아까운 공연”으로 ‘노’를 꼽는다. “일본 전통 문화재급들을 접할 수 있는 드문 기회”라는 것.

안치운 호서대 교수(연극평론)는 하반기에 가장 주목할만한 연극은 극단 신주쿠 양산박의 ‘바람의 아들’(원제 ‘바람의 마타사부로’)이라고 말한다. 재일 한국인 2세 김수진 씨가 이끄는 극단으로, 야외 공터에 텐트를 치고 무대를 세워 ‘텐트극단’이라 불린다. 90년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모았으며, 93년 내한당시 한국연극계에 충격을 던져줬다.

이번 작품은 혼탁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정신병원에 수용된 소년 오리베와 어느날 갑자기 자위대 훈련기를 타고 사라진 애인을 찾아 나선 소녀 에리카의 환상을 다룬 것인데, 주인공들이 헬기를 타고 날아가고, 텐트 뒷막이 찢어지면서 꿈과 현실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는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라고 한다. 밀양과 양평에 이어, 서울(8.11~13), 대구(19~20), 전주(27~28), 아산(30~9.1), 속초(9.6~7)를 순회하며 공연한다. 

마임을 보고 싶다면, 이번에 기대를 충족시킬만한 작품 몇 편이 있다. 무용평론가 김남수 씨는 러시아 극단 리체데이의 ‘리체데이’(의정부 예술의전당, 8월 13일)는 “정말 안보면 후회할 작품”이라며 추천한다. 일전에 춘천마임축제에서 리체데이는 러시아 마임수준을 한눈에 드러낸 바가 있는데, 신체의 매력과 정교한 몸짓 언어 그리고 유머는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국내 극단으로는 호모루덴스 컴퍼니의 ‘해설이 있는 마임’이 있다. 마임이란 무엇인지 그 몸짓 언어의 재미를 보여주는 친절한 무대가 될 것이다. 이 외에 캐나다 Miss Take의 광대극은 마임이스트 미스 테이크 1인이 펼쳐가는 공연으로, 그녀는 저글링, 마술, 코미디 등 다양하게 관객을 사로잡는다고 알려져 있다.

애호가들을 즐겁게 만들 클래식 공연들도 줄을 잇고 있다. 정이창 씨는 그중 베를린 필하모닉(예술의 전당, 11.7~8)의 연주를 추천한다. 전설적인 거장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1984년 내한한 이후, 21년 만에 성사된 무대다. 볼만한 협연도 줄을 잇고 있다.

장한나가 베를린 필하모닉 신포니에타와 함께 대전문화예술의 전당(8.16), 대구시민회관 대강당(8.17), 예술의 전당(8.18), 세종문화회관(8.20)에서, 정경화가 예술의 전당(9.9)에서 서울바로크 합주단과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의 밤’을, 그리고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이반 피셔와 함께 성남아트센터(10.17), 예술의전당(10.18)에서 화려한 무대를 펼칠 것이다.

수많은 영화제 가운데, 이번에 중앙시네마에서 한달 간 열리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거장 노먼 맥라렌의 작가전(8.1~9.1)을 추천한다. 1, 2부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그의 대표작인 ‘이웃’, ‘발레 아다지오’, ‘의자 이야기’ 등이 상영된다. 촌철살인의 풍자와 깊이 있는 통찰력, 그리고 새로운 애니메이션의 표현양식 등 맥라렌의 전모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추천하고 싶은 전시회>

미술과 사진 전시회 쪽은 올 여름과 하반기 풍성한 밥상은 아니지만 놓치면 아까운, 꼭 봐야 할 전시가 몇 개 있다.

사진평론가 신수진 씨는 ‘세바스티앙 살가도 전’(서울갤러리, 7.7~9.3)을 “아직 못봤다면 꼭 한번 가볼만한 전시회”로 꼽는다. 국내 전시는 처음으로 1977~2001년까지의 작품 1백73점이나 선뵈는 대형전이다. ‘라틴 아메리카’, ‘노동자들’, ‘이민, 난민, 망명자’, ‘기아, 의료’ 등 네 가지 주제로 이어지는데, 그의 다큐 사진들은 끔찍한 장면들을 포착하면서도 극히 미학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이기명 경상대 교수(사진학)가 기대하는 전시는 11월에 오는 랄프 깁슨(선화랑, 11.3~30)의 사진전이다. 70년대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사진의 경향을 보여주는 미국의 사진가지만, 역시 국내에선 처음 접할 수 있는 기회다. 깁슨은 대상 인식에서부터 인화, 나아가 사진집 에디팅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심리성과 조형성을 활용한다. 그의 대표작인 ‘몽유병(Somnambulist)’, ‘데자-뷔(Deja-Vu)’, ‘바다의 날들(Days At Sea)’, ‘4분할(Quadrants)’ 등은 일관성 있게 무의식에서 출발한 형태 및 인지 심리학에 근거를 두고 있다.

미술쪽에서는 해방 60주년을 맞이해 열리는 ‘한국미술 100년간의 발자취’전(국립현대미술관, 8.13~10.23)을 미술평론가 강수미 씨가 적극 추천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이래 최대규모로 작품 1천여점이 동원된다. 민중미술이든 추상미술이든 한국의 현대미술을 한번에 꿰어 정리해볼 수 있는 기회다. 최근 발굴된 최지원의 목판화  ‘걸인과  꽃’(1939년 작)도 처음 공개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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