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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부터 퀴리까지…그들은 왜 그토록 아팠을까
세종부터 퀴리까지…그들은 왜 그토록 아팠을까
  • 김재호
  • 승인 2021.11.02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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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가 보여주는 고통과 예술의 승화

위대한 학자나 예술가는 잔병치레를 많이 했다는 속설이 있다. 예를 들어, 세종은 허리가 많이 아팠고 니체는 광기에 휩싸였다. 그런데 속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말 그랬는지 궁금하다.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를 쓴 이지환 건국대 전문의는 서문에서 “의학은 한 편의 추리”라고 강조했다. 환자의 통증을 토대로 병명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은 정말 탐정과 같은 날카로움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전문의는 “모든 의사는 홈스의 후배”라고까지 표현했다. 

이 책은 역사 속 인물들이 앓았던 증상을 통해 과연 어떤 질병을 앓고 있었는지 알아본다. 근거는 남아 있는 기록뿐이다. 각 인물들이 겪은 고통과 고통에서 피어난 작품을 보면 자연스레 숙연해진다. 책은 세종(1397∼1450), 가우디(1852∼1926), 도스토옙스키(1821∼1881), 모차르트(1756∼1791), 로트레크(1864∼1901), 니체(1844∼1900), 모네(1840∼1926), 프리다(1907∼1954), 퀴리(1867∼1934), 말리(1945∼1981)를 다뤘다. 이들 중 5명의 이야기를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를 토대로 증상-추리를 소개한다. 

 

세종의 허리

세종은 강직성 척추염을 앓았을 가능성이 많다. 사진=위키백과

증상: 세종은 위대한 업적을 많이 남겼는데, 비록 운동에 대해선만 소극적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의 통증은 50여 차례 나온다. 눈병은 12번, 허리 통증 6번, 방광염 증상 5번, 무릎 통증 3번, 목마른 증상 2번, 살빠지는 증상 1번 언급된다. 무릎과 허리 통증은 20대 초반에 발생했다. 허리 통증은 30대에 심해졌고, 눈 통증은 40대부터 나빠졌다. 

추리: 세종이 만약 허리디스크였다면 자고 일어날 때 허리가 아프다는 등 일반적인 증상이 기록돼 있을 것이다. 또한 세종의 눈은 좋았다가 안 좋았다가 했다. 이러한 증상이 가리키는 병은 바로 ‘강직성 척추염’이다. 세종의 허리가 얼마나 아팠는지 “허리와 등이 굳고 꼿꼿하여 굽혀다 폈다 하기가 어렵다”라고 했다. 바로 강직성 척추염 환자들이 호소하는 통증이다. 또한 이 병으로 발생하는 합병증이 바로 포도막염이다. 세종의 증상과 흡사하다. 

 

 가우디는 소아기 특발성 관절염일 앓았을 것이다. 사진=부키

 

가우디의 뼈

증상: 가우디는 6살 때부터 뼈가 아팠다. 관절염 때문이다. 그래서 가우디는 종종 둘째 형의 업히거나 나귀를 타고 학교에 갔다. 가우디는 관절염을 극복하기 위해 발이 푹신한 신발을 신고 채식을 했다. 관절염으로 인해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어 홀로 자신과 자연을 탐구했다. 가족도 없던 가우디는 평생 혼자 살아야 했다.

추리: 관절염의 종류만 해도 100가지가 넘는다. 가우디의 관절염은 어렸을 적 생겼으므로 60대 이상에서 발병하는 퇴행성 관절염은 아니다. 가우디는 매일 산 펠리 네리 교회로 산책을 다녔다. 특히 그는 딱딱한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가우디가 보인 생활 습관을 보면 심장, 중추 신경계, 피하 조직을 침범하는 류머티즘열 관절염은 아니다. 가우디는 양발에서만 통증을 느꼈다. 그렇다면 소아기 특발성 관절염일 가능성이 높다. 

 

도스토옙스키는 내측 측두엽이나 뇌섬염에 흥분 세포군이 있었을 것이다. 사진=부키

 

도스토옙스키의 발작

증상: 그리스 정교 신자였던 도스토옙스키는 왜 도박에 중독됐을까? 그는 간질 발작을 자주 일으켰다. 그것도 중요한 순간에 말이다. 첫 결혼식 피로연이나 대중 강연에서 간질 발작이 나타났다. 자신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도스토옙스키는 소설 9편에 간질 환자를 등장시켰다. 특히 그는 발작을 하기 전 황홀하면서도 충만한 기분을 느꼈다.  

추리: 간질은 흥분 신경 세포군 때문에 나타난다. 도스토옙스키는 간질 발작 후 실어증과 우울증이 나타났다. 그래서 그의 흥분 세포군은 의사들이 추정하듯 뇌의 내측 측두엽이나 뇌섬염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뇌섬염 배전위를 자극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과 도스토옙스키의 증상이 비슷하다. 간질은 조선시대 ‘지랄병’이라고 불렸고, 서양에서도 럼주 중독자라는 오해를 받았다. 도스토옙스키가 죽은 후 18년이 지나서야 간질 발작에 대한 논의가 본격 시작된다. 

 

니체는 뇌종양 때문에 두통과 불면증이 심했을 것이다. 사진=부키
 

 

니체의 두통

증상: 니체의 아버지는 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사망했다. 니체 역시 평생 두통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한 번 두통이 시작되면 나흘은 갔다. 이 가운데에서도 니체의 창작열은 불타올랐다. 1888년에만 4권을 집필해낸다. 그러나 그 다음해인 1889년, 니체는 광장에서 쓰러지는 등 정신적 몰락을 겪는다. 결국, 니체는 정신 병원에 입원한다. 

추리: 2000년대 이후부터 니체의 정신병적 증상을 다룬 논문들이 발표된다. 그중 일부는 니체가 뇌종양 때문에 정신 질환을 앓았다고 추정한다. 니체의 증상과 부합하는 설명이다. 조금씩 자라는 뇌종양은 니체의 두통과 불면증이 심해지는 상황과 결부된다. 또한 니체는 어렸을 때부터 어지럼증을 호소했는데, 뇌종양이 눈을 움직이는 신경을 누르면서 나타나는 증상(복시), 어지럼증과 연결된다. 특히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전두엽이 손상돼 니체가 광인이 됐을 거라고 추측된다.

 

퀴리는 라듐의 알파선과 X선 때문에 아프고 죽게 됐다. 사진=부키

 

퀴리의 피

증상: 퀴리는 방사선을 내는 라듐을 36년 동안이나 만지며 살았다. 환풍도 잘 안되는 실험실에서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해낸 것이다. 특히 퀴리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다친 군인들을 X선 촬영해 진단했다. 방사능과 X선은 퀴리의 몸을 망쳤다. 퀴리의 손끝은 까맣게 물들어 갈라져고 눈은 백내장에 걸렸으며 말년에는 귀도 잘 안들였다. 결국 퀴리는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추리: 라듐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가장 큰 알파선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손끝이 갈라지고 백내장에 걸린 건 알파선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알파선은 몸속 깊숙이 도달하지는 못하지만 외부에 노출된 곳은 심하게 공격한다. 또한 X선은 몸의 장기 속 DNA까지 쉽게 도달한다. 퀴리의 난청과 백혈병은 X선 노출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X선은 세포 안 DNA까지 파고들어 마리를 죽게 만들었다. 하지만 X선이 언제나 죽음을 불러오는 건 아니다. 확률적이라는 뜻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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