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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영재 유득공 재조명 시작된다
흐름: 영재 유득공 재조명 시작된다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5.07.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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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번역, 한시 발굴공개...淸과 학술교류에 주도적

▲지난 2월 발굴공개된 '삼한시기' ©
근래 조선후기 실학자들에 대한 조명이 활발해지는 가운데, 그간 박지원이나 박제가, 이덕무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던 영재 유득공(1748~1807)에 대한 연구가 한둘씩 이어져, 재조명 되고 있다.

가장 최근의 연구물은 지난 5월 출간된 김윤조 계명대 교수(한문학)가 번역한 유득공의 산문집 ‘누가 알아주랴’(태학사 刊)다. 유득공 하면 그동안 시조와 역사학(발해사) 쪽 연구가 주를 이뤄왔기에, 산문번역은 그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는 ‘영재집’에 실린 작품들과 ‘고운당필기’의 일부가 뽑혀 실렸다.

가령, 한 시대의 이름난 해금의 명인 유우춘의 예술가적 기질을 잘 살려낸 것이 ‘유우춘’이라는 글이다. 유우춘을 만나게 된 과정과 그를 만나서 겪은 일들을 세세히 서술하고 있는 이 글 말미에서 유득공은 우춘의 말, “기술이 더욱 높아갈수록 세상 사람들이 더욱 알아주지 못한다”라고 한 것을 두고, 이것이 “어찌 해금에서만 그칠 것인가”라고 덧붙임으로써 그 당시 자신의 심정을 살짝 드러내고 있다. “초목의 꽃, 공작새의 깃, 저녁 하늘의 노을,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 이렇게 네 가지의 빛깔로 꽃을 설명하고 있는 글 ‘꽃’ 또한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비유를 듦으로써 ‘김군이 그린 꽃 화첩’의 미학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박제가가 꼽았던 유득공의 세 가지 재능은 박학하고 시에 뛰어나며, 나라의 전고에 밝다는 것이었다. ‘고운당필기’는 지리와 명물을 주로 다룬 것인데, 여기에 실린 ‘우리나라의 벼루’, ‘수레사용’, ‘광대’, ‘호랑이 사냥’, ‘짚’, ‘인삼’, ‘담배’, ‘귀마개’, ‘북어’ 등의 글은 유득공의 박학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런 박식함에 대해 당시 연암은 “침잠하는 기상이 적어 단지 책을 빌려 박식을 뽐내기만을 좋아할 뿐이다”라고 비판한 바도 있지만 말이다. 역시 지리, 명물을 밝히고 있는 ‘사군지’의 서문도 이 책에서 처음 소개되는데, 유득공의 실학에 대한 이해를 한층 돕는다. 

‘서른 두폭의 꽃그림에 붙인다’, ‘금곡의 백화암에 붙인 상량문’, ‘시의 색채’, ‘발해고의 서문’, ‘악사 유우춘’ 등 유득공의 산문에 주목한  또 다른 이가 안대회 명지대 교수(한문비평)다. ‘유득공 소품선’(현대시학 2004년 7월호)에서 안 교수는 그의 산문에 대해 “탁월한 묘사력에 힘입어 아름답고 신선한 산문을 개척했다”라며 평을 덧붙이고 있다. ‘금곡의 백화암에 붙인 상량문’에서는 “글의 뒷부분에 과장되고 희화화된 표현을 통해 실용성보다는 문예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는 점”을, ‘악사 유우춘’에 대해서는 “최고의 음악가의 내면에 숨어있는 고독감과 소외감이 독자의 심금에 잔잔한 여운을 남기”고 있음을 평한다. 

이와 더불어 유득공에 대한 특집이 계간 ‘문헌과 해석’(2004년 겨울호)에서 이뤄진 바 있다. ‘유득공의 생애와 교유, 연보’(김영진), ‘유득공의 사서루와 추사’(박철상), ‘유득공의 두 번째 중국여행’(김문식), ‘유득공의 ‘삼한시기’’(김윤조)가 그것. 유득공에 대한 일차자료가 없던 터에 유득공의 연보나 저작을 재정리 한 것이나, 특히 그의 초기 한시작품이 모두 모인 ‘삼한시기’를 발굴·공개한 것은 앞으로 유득공 연구에 큰 진전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된다.

유득공 연구가 활발히 이뤄질 수 없는 이유는 무엇보다 발굴자료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김윤조 교수는 “그의 산문은 자료부족 뿐 아니라, ‘실용적’이라는 글의 성격 때문에 연구가 미미하다”라고 덧붙인다. 시조 쪽에서는 그동안 연구가 많이 진척돼왔던 반면, 역사학계에서는 지난 2000년 송기호 서울대 교수(한국고대사)가 번역한 ‘발해고’가 출간된 이래 연구의 별다른 진전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학계에서는 朝淸 학술교류사에서 차지하는 유득공의 위상과 역할, 금석학, 풍속, 어학, 고증학 등으로 연구가 확장되어야 함이 지적되고 있다. 아직은 자료발굴이 시급한 과제로 꼽히고 있지만, 조선 후기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미친 그의 사상과 미학에 대한 좀더 심층적인 성격규명이 기대된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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