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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명, 그 당시 정치상을 복원하다
묘지명, 그 당시 정치상을 복원하다
  • 권덕영
  • 승인 2021.10.29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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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재당 한인 묘지명 연구: 자료편·역주편』 권덕영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 1363쪽

기존 문헌자료에서 볼 수 없던 역사자료를 모아
엄밀한 판독·해석과 풍부한 주석 구비한 학술서

일찍이 프랑스의 역사가 랑글루아(1863∼1929)와 세뇨보(1854∼1942)는 “사료 없이 역사 없다”라고 하였다. 사료에 근거하지 않은 역사는 허구이고, 빈약한 사료로는 풍성한 역사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말이다. 필자는 사료가 부족한 한국고대사 연구에 입문한 이래 늘 새로운 자료 탐색에 고심하였다. 그 중에서 특별히 주목한 것은 금석문 자료였다. 

금석문은 문헌자료가 극히 제한된 한국고대사 연구에 각별한 가치를 가진다. 그러한 금석문 자료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도 상당수 존재한다. 그 가운데 국내에 남아 전하는 금석문은 일찍부터 연구에 널리 활용되었으나, 국외 금석문은 그렇지 못하였다. 중국이나 일본에 주로 소재하는 국외 금석문은 우리 역사와 관련있는 자료가 상대적으로 적을 뿐더러 내용 또한 다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것들을 종합적으로 정리, 분석해보면 의외로 새롭고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 비교적 소홀했던 국외 금석문 가운데 한국고대사 복원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재당(在唐) 한인들의 묘지명을 종합적으로 연구한 것이다.

 

중국·일본 등 국외 금석문 자료 활용해

‘재당 한인’이란 말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용어이다. 우리 역사를 일별하면 알 수 있듯이, 삼국시대부터 많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사람들이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하여 당나라로 이주하였다. 그들은 장안과 낙양을 비롯한 중국 전역에 흩어져 생활했는데, 당시 중국인들은 고대 한반도 삼국을 삼한(三韓)이라 칭하였다. 그렇다면 고구려, 백제, 신라와 고구려의 후신인 발해에서 당나라에 들어가 삶을 영위하던 사람을 통칭하여 재당 한인이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지난 100여년 동안 중국에서 재당 한인 묘지명이 여럿 발견되었다. 고구려 유민 묘지명 17점, 백제 유민 묘지명 10점, 재당 신라인 묘지명 4점, 발해인 묘지명 1점 등 총 32점이 그것이다. 이들 재당 한인 묘지명은 삼국통일 전후 긴박하게 돌아가던 동아시아 국제정세와 고구려·백제 지배층의 동향, 당나라 이주 후의 활약상과 한인으로서의 정체성 문제, 타국 생활과 당의 이민족 지배정책, 당나라에서의 정치·군사·문화 활동과 역할 등등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 종래 문헌자료에서 확인할 수 없던 소중한 역사 정보들이다.

오늘날 중국의 산업화와 국토개발 과정에서 재당 한인 묘지명의 발견과 발굴이 꾸준히 이어지고, 또 사료가 고갈된 한국고대사 연구에서 한인 묘지명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 따라서 재당 한인 묘지명을 종합적으로 정리, 분석하여 한국고대사 복원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이 절실하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필요성과 목적에 맞게 당나라 묘지명을 전수 조사하여 재당 한인 묘지명을 집대성하였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자료편과 역주편 두 책으로 구성되었다. 자료편에서는 각 묘지명마다 자료 개관, 탁본과 판독문, 참고문헌으로 나누어 자료의 발견과 전승, 판독과 연구 성과를 포괄적으로 정리하였다. 정확한 판독은 금석문 연구의 생명이다. 그래서 자료편에서는 이체자(異體字)를 포함한 글자 하나하나를 엄밀하게 대조하여 판독문을 작성하였다. 아울러 책의 말미에 한인 묘지명에 사용된 이체자를 추출, 분류하여 색인으로 제시하였다.    

다음의 역주편은 자료편에서 판독한 묘지명 원문에 표점을 찍고 띄어쓰기를 한 다음, 현대 우리말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동·서양의 고전과 관련 연구 성과를 광범위하게 수렴하여 2천112개에 달하는 풍부한 주석을 붙였다. 사실 이 연구를 시작할 당초에는 자료편과 역주편에 이어 한인 묘지명을 실제 한국고대사 복원에 활용한 연구편 등의 3부작으로 구상하였다. 그러나 주어진 연구 기간 안에 연구편까지 마무리하기는 물리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했다. 하는 수 없이 이번에는 자료편과 역주편만을 출간하고, 연구편은 후일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쉬움이 남는다.

 

 

권덕영 부산외대 교수·한국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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