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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폴란드도 유럽연합 탈퇴?··· 유럽연합과 동유럽의 줄다리기
[글로컬 오디세이] 폴란드도 유럽연합 탈퇴?··· 유럽연합과 동유럽의 줄다리기
  • 김봉철
  • 승인 2021.10.28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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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에 이어 폴렉시트까지... 유럽연합 위기를 바라본 국제학자의 시선
글로컬 오디세이_한국외대 EU연구소 김봉철 소장
지난 10일(현지시간)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왕궁 앞에서 유럽연합(EU)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AFP

2021년 완전히 실현된 ‘브렉시트’(Brexit) 이후,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으로부터의 탈퇴 이야기가 나타나고 있다. 나아가 수십 년 동안 점차 견고하게 발전해온 EU의 틀이 무너지는 것인가라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번에는 폴란드가 EU 탈퇴에 관한 논의의 주인공이 되었다.

폴란드 총리인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Mateusz Morawiecki)는 집권 연정으로 폴란드 법관에 대한 선출제도를 새롭게 도입했는데, 이 제도는 사법적 독립성을 훼손하고 법원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강화한다는 이유로 EU와 많은 국제법적 기구로부터 비판받았다. 유럽사법재판소(European Court of Justice)는 이 폴란드의 법관 선출제도가 EU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했고,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다. 지난 7일 폴란드 최고재판소는 특정 사법 문제에 관해 국내법보다 EU법이 우선한다는 EU법 우위의 원칙을 거부하면서, EU 조약의 일부 조항들이 폴란드 헌법과 양립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폴란드 정부가 빠르게 수용한 최고재판소의 이 판결로 바르샤바와 브뤼셀은 충돌 위기에 놓였다.

폴란드 총리는 최근 자국의 사법부 변화에 따라 임명된 법관의 정당성에 대해 EU법을 근거로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EU 집행위원회는 이번 판결이 EU법이 회원국의 헌법을 포함한 국내법보다 우선한다는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평가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EU 집행위원장은 폴란드 법원의 이러한 판단에 우려를 표하며 EU법을 집행하기 위해서 모든 권한을 사용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27개의 강력한 EU 체제에서 한 회원국의 지도자가 자국의 헌법재판소에서 전체 EU 조약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회원국법에 대한 EU법의 우위성에 관한 일부 회원국 법원의 도전적 판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독일 법원은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 ECB)의 어느 프로그램이 독일법에 저촉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독일 법원의 판단과 이번 폴란드 최고법원의 판결은 우선 독일 법원의 판단은 법원 스스로 논의해 내린 결정이지만 폴란드 사건은 정부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또한 EU법 전문가들은 독일의 사례가 ECB의 어느 특정 프로그램에 국한된 것임에 반해, 폴란드 최고재판소는 EU 체계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점이 크게 다른 점이라고 평가했다.

폴란드 최고재판소는 현재 여당인 ‘법과 정의당’에 동조하는 법관들이 지배하고 있으며 일부는 전직 당원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폴란드의 법관선출제도가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법관들을 처벌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폴란드 법원의 판결은 EU와 회원국인 폴란드 사이의 오랜 충돌에서 도출된 것이며, 폴란드가 EU 회원국의 지위를 상실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도 있다. 또한, 폴란드 스스로 탈퇴 방향을 선택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의견도 있으며, 심지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폴란드로 대표하는 중동부 유럽 국가들의 EU 탈퇴에 불이 붙을 것이라는 예상까지도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폴란드가 EU 회원국의 지위를 잃거나 스스로 내려놓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예상한다. EU 조약은 회원국의 투표권 정지를 허용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다른 모든 회원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과거 폴란드 정부가 자국에서 법적 낙태를 사실상 금지하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판결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문제가 되는 이번 폴란드 최고재판소의 판결은 공시되기 전까지는 효력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여전히 해결 방법을 찾을 시간도 있다.

사실 이와 같은 폴란드와 EU 사이의 줄다리기에는 EU에서 아직 승인하지 않은 폴란드에 대한 570억 유로 규모의 COVID-19 회복지원이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협상은 아직 진행 중이며 EU 집행위원회는 이와 같은 법적 문제가 계획 승인을 지연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 판결이 회복지원자금에 대한 폴란드의 강경전술인지 아니면 위험한 도박인지는 추이를 관찰해야 할 것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미 폴란드 법원이 EU법의 우위성을 거부한다면 새로운 법적 조치를 취하고 자금지원도 연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많은 폴란드 시민은 최근의 상황에 대한 폴란드 정부의 태도를 비난하며 EU에 대한 신뢰와 회원국 유지를 지지했다.

폴란드가 강하게 EU를 탈퇴하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현실이 된 영국의 탈퇴와 폴란드의 탈퇴 가능성은 많은 차이를 보인다. 영국의 탈퇴는 역사적, 정서적, 제도적 차이에서 오는 문제점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국의 독자적인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한 것이며, 외부에서 영국의 경제력과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이 탈퇴를 선언할 정도라고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번 사례가 폴란드 국내 정치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이 유럽의 한복판에 위치한 국가가 전통적으로 영국과는 다르게 여러 가지 면에서 EU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도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한다. 다만 이와 같은 사례가 향후에 헝가리와 같은 중동부 유럽국가들에 줄 영향은 충분히 있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김봉철 한국외국어대 EU연구소 소장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에서 법학 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대 국제학부 교수로 EU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한-영 FTA와 한-EU FTA의 법적 비교와 전망」(2020), 「골든비자(Golden Visa)제도 관련 포르투갈 이민법의 동향」(202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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