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8:40 (토)
[짧은글 깊은생각]68-술먹는 캠퍼스
[짧은글 깊은생각]68-술먹는 캠퍼스
  • 교수신문
  • 승인 2001.06.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06-13 14:46:16
김주숙/ 한신대·사회복지학과

회갑을 지낸 소위 ‘노교수’에 속하지만 나는 학교생활에서 거의 모든 일에 학생들과 보조를 맞춘다. 우선 세 시간 연속강의 시에 아직은 의자에 앉는 일이 없고, 리포트가 시원찮은 학생들은 여전히 심하게 꾸짖는다. 학생들과 어울려 식사할 때는 소주 한잔은 기울일 줄 알고, 식사 후에는 노래방에 들러 한 곡 뽑는 대열에서 빠지지 않는다. 수학여행 때는 나이트클럽에 들러 여행 온 많은 학생들의 광적인 흔들기에 신나게 어울리기도 한다. 출퇴근 때 지하철을 타며 수원역-학교 간 학생버스를 이용함은 물론이다.
내가 학생들과 같이 하지 못하고 또 이해하기 힘든 일이 두어가지 있다. 첫째는 학생들이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소주병이나 맥주병을 따는 일이다. 캠퍼스 잔디밭이 놀이공간이 될 수도 있고 관광지 화 될 수도 있다. 야외 혼인 예식장이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특별한 행사시에 가든파티 장소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학생들이 둘러앉아 술병을 따는 장소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늦은 시간 캠퍼스 잔디밭에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학생들에게는 일종의 낭만으로 여겨지는 것일까? 가난한 호주머니를 위한 술값 절약의 자구책일까? 앉을 자리와 설 자리를 배우지 못한 소아병일까? 탓하는 이가 없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저녁 어스름에 술병을 앞에 놓고 앉아있는 저들은 아마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흥미로운 놀이를 하고 있음에 틀림없지만 옆을 지나치는 교수를 흘금흘금 쳐다보는 그들도 떳떳치 않음은 분명하다. 캠퍼스를 성역화하자거나 학문의 전당 운운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삶의 영역에서 결정적인 구획 한 두 가지는 필요한 것 같다. 깊게는 인륜의 차원, 혹 가볍게는 잡담을 해서는 안 되는 시간과 공간의 구획 등이다. 캠퍼스 음주행태는 후자에 가깝겠으나 그 여파는 실로 큰 것 같다. 빈 공간이면 아무데서나 음식을 팔고 먹어 전 국토가 식당화하는 우리들의 저급문화의 본보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피곤한 날에는 학교 연구실에서 잠을 자는 일이 가끔 있었는데 그럴 때는 포도주 정도는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연구실에 술을 두지 않고 꿀물로 대치한다. 캠퍼스 잔디밭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학생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생각과 같은 선상에서 그러하다.
캠퍼스 안 생활 영역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또 다른 한 가지는 학생들의 인사법이다. 잘 아는 교수에게는 마치 초등학교 학생들처럼 소리치며 인사한다. 잘 모르는 교수들에게는 무신경을 넘어 살벌한 표정을 지으며 지나친다. 직원선생님들에게는 아예 관심도 없다는 태도들이다. 공동체내의 인간관계가 곧 자신의 이해관계로 된다는 초보 의식이 없음이다. 지하철 안에서 학생들의 끝도 없는 잡담과 괴성도 비슷한 현상이다. 대학 캠퍼스 안에서조차 사색공간과 음주공간의 혼동이 일어나고, 품위와 공동체 의식이 깃든 행동과 표정이 사라지는 것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자괴스럽다.
밤늦은 시간 퇴근하며 이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캠퍼스에 있는 은행나무에 부딪칠 뻔한 일도 있다. 왜 이렇게 나약한 교수가 되었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