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표준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각 분과에서 나온 문제제기들은 특히 인접분야 전공자들이 귀기울일만 했다. 1차사업을 진행해오면서 모든 연구자들이 뼈저리게 느꼈던 게 인접학회와의 교류문제였기 때문이다. 우선 문학반부터 보면 국어국문학회와 영어영문학회가 합동으로 2만여개의 용어를 정비했는데, 문학원론 관련 용어는 영문학회가, 한국문학사 관련 용어는 국문학회가 담당했다. 유문선 한신대 교수(국문학)는 언어학/국어학 내에서의 용어통일의 난점을 제기했다. 이를테면 ‘ambuguity’의 경우 의미-화용론의 관점에선 ‘중의(성)’으로, 국어학에서는 ‘애매’로, 음성학에서는 ‘모호성/애매성’으로 번역되고 있는 실정. 유 교수는 인접학회와의 연계작업도 시급함을 강조했는데, 가령 ‘통제’로 번역되는 ‘control’, ‘관심/주의력’으로 번역되는 ‘attention’이 심리학계에서는 다른 용어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학 분야는 학술용어 외에도 인명, 지명, 서명 등 고유명사가 많아 표준화 작업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다행히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지난 2001년부터 ‘한국역사용어 시소러스 개발사업’을 추진해와 이들과 협의를 통해 작업을 진행해나갈 예정이다. 5월말 현재, 총 5천3백35개 용어를 정비·완료한 상태다.
10개 학회가 모인 심리학 분야는 총 3천22개의 용어를 정비했는데, 그러나 정봉교 영남대 교수는 “용어수집은 완료했지만, 심사작업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는 용어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며, ‘한 용어가 여러 맥락에서 여러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의 용어통일이 시급한 과제임을 밝혔다.
물성과학 쪽에서는 수학분야가 1만여개, 물리분야가 9천여개 용어를 정비·완료했다. 물리 분야는 “순 한글 용어에 너무 집착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비판이 이미 제기됐던 터라, 다시 전면적인 조정작업에 들어갔으며, 중복용어 표준화 방법에 대한 의견도 교환한 상태다. 향후 수학 및 화학분야와 논의가 필요한 실정. 총 2만4백66개의 표준화 학술용어 목록작성한 전자 분야도 “인접분야와의 용어통일”을 강조했다. 일례로 ‘agent’를 가정학/아동학에서는 ‘동인/병인/주체’로, 금속재료분야에서는 ‘첨가제’로, 생물학에서는 ‘작용인자/작용물질’로, 심리학에서는 ‘행위주체/작용요인/원인행위자/치료자/내담자’로, 전자/컴퓨터분야에서는 ‘에이전트/대리인’으로 사용해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상태다.
예술계 쪽에서는 미술계만 용어정비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미술 분야는 현재 1만 여개를 정비중인데, 문제는 표준화사업이 주로 영어용어에 국한돼 있다는 점이다. 김혜숙 춘천교대 교수(미술교육)는 “정작 우리미술용어의 영어표기와 동양미술용어의 영어표기 표준화에 대한 연구는 전혀 시도되지 않고 있다”라며, “향후 우리미술 및 동아시아 미술용어에 대한 연구가 실행”되어야 함을 과제로 꼽았다.
생명과학 쪽 수의학 분야에서 이흥식 서울대 교수(수의해부학)는 현 용어제정의 문제점으로 “의학계가 제정한 용어의 일부는 아직 보편화되지 못했고, 관습적으로 써왔던 용어를 갑자기 새로운 용어로 바꿨을 경우 학자들뿐 아니라 환자와 의사 사이에도 혼란이 야기될 수 있”음을 들었다. 또한 수의학계는 되도록 의학계와 공통으로 용어를 사용하지만, 수의학적 특성으로 인해 달리 번역되지 않으면 안되는 용어, 가령 Frog(발굽쐐기), Anal sac(항문낭), Quarter(분방) 같은 용어는 그대로 쓰기로 방침을 확정했다.
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지원받는 학술용어 정비사업은 올 11월에 완결되며, 정비된 용어들은 홈페이지(http://term.kaoas.or.kr)에서 볼수 있다. 학단연은 앞으로 10년을 내다보며 이 사업을 계속해서 진행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