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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음속 순항미사일과 램제트 엔진
초음속 순항미사일과 램제트 엔진
  • 유만선
  • 승인 2021.10.22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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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만선의 ‘공학자가 본 세상’ ⑧

지난달 9월 15일 충남 안흥에 있는 국방과학연구소 시험장에서는 미사일 한 기가 굉음을 내며 솟구쳐 올랐다. 사후에 공개된 영상을 보면 이 미사일은 발사 얼마 후에 근처에 있는 표적을 빠르게 뚫고 지나갔으며 이를 통해 시험이 성공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날은 한국이 ‘초음속 순항미사일(supersonic cruise missile)’을 보유하게 된 날이었다.

순항미사일은 발사 후 포물선을 그리며 빠른 속도로 목표점에 떨어지는 탄도미사일(ballistic missile)과 구분되며 비교적 일정한 속도로 낮은 고도에서 양력을 받아 비행하다가 목표점을 정밀하게 타격하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는 ‘해성’이라는 대함 순항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데 최고 속도는 마하 0.95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때, ‘마하(Mach)’는 소리의 전파속도 대비 비행체의 속도를 나타낸다. 따라서 초음속 순항미사일이라고 하면, 그 속도가 소리의 전파속도를 초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초음속 순항미사일과 유사한 모델로 알려진 러시아의 P-800 오닉스. 사진=위키피디아

한편, 초음속 상태로 비행하는 물체는 그 전방에 ‘충격파(shock wave)’라 부르는 강한 ‘공기의 끊김’을 만들어 낸다. 이는 물체의 빠른 움직임으로 인해 물체 근처로 퍼지는 공기의 약한 압축파가 중첩되어 그 세기가 매우 커지는 현상이다. 이 때문에 충격파를 지난 공기의 압력은 크게 높아지게 된다.

초음속으로 움직이는 비행체를 꾸준히 앞으로 밀어내기 위해서는 비행체 뒤로 제트가 꾸준히 분사되어야 한다. 이때 주로 쓰이는 엔진을 ‘램제트 엔진(ram-jet engine)’이라 부르는데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단어 ‘ram’은 ‘쑤셔 넣다’, ‘(억지로) 밀어 넣다’는 뜻이다. 단어의 뜻 그대로 램제트 엔진은 전방부에 생기는 충격파를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이를 통해 공기덩어리들이 엔진 속에 효과적으로 압축되어 ‘밀어 넣어지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충격파에 의한 압축효과 덕에 램제트 엔진에는 일반 제트엔진에 포함되는 압축기와 압축기에 동력을 제공하는 터빈이 필요 없다는 점이다. 단지 입구에서 압축되어 들어온 공기에 적정량의 연료를 분사한 뒤, 불을 붙여 충분한 열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연소기만이 필요할 뿐이다.

램제트 엔전은 초기 가속 위해 일반 엔진 필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램제트 엔진이야 말로 초음속으로 빠른 비행을 가능케 하고 심지어 구조도 간단하여 기존 엔진을 쉽게 교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비행체가 정지 상태에서 초음속으로 가속되기까지의 구간에서 램제트 엔진은 쓸모가 없으며, 별도의 엔진이 도와줘야 한다는 점에 있다. 이 때문에 이번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시험발사한 미사일의 경우도 고체로켓 부스터가 램제트 엔진의 후미에 부착되어 발사 초기 미사일을 가속시켰다. 이처럼 램제트 엔진은 초기 가속을 위해 일반 엔진과 함께 쓰여야하기 때문에 더욱 복잡하고, 개발이 어렵다.

또한, 비행체의 형상에 따라 표면에서 발생하는 충격파의 형태가 결정되기 때문에 비행체 및 엔진입구에서의 형상설계를 위해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유체의 흐름은 아직까지 수학적으로 해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라이트 형제 이후로 실험적인 검증은 빼놓을 수 없는데 초음속으로 움직이는 물체 근처에서의 현상연구에는 훨씬 더 많은 자원과 노력이 필요하다.

연소실에서의 높은 연소가스 온도도 극복해야 할 점이다. 연소과정을 통해 열에너지를 머금은 연소 가스는 뒤에 있는 노즐을 지나며 높은 운동에너지를 갖는 제트로 변환되는데 이 때, 높은 온도를 갖는 연소가스로부터의 연소실 보호가 중요한 과제이다. 우리나라의 초음속 순항미사일과 유사한 모습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인도의 ‘브라모스(BrahMos)’의 경우, 연소실 벽면을 뜨거운 연소가스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연소실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 일부를 빼내어 벽면에 분사시키는 기술이 적용되기도 했다.

이번 시험발사에 성공한 초음속 순항미사일은 사거리가 300킬로미터에서 500킬로미터 사이로 추측되고 있으며, 목표물을 빠른 시간에 타격가능하고, 높은 속도로 인한 운동에너지로 목표물에 피해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로켓과 구분되는 공기흡입식 엔진으로서 향후 초음속 민간항공기 등의 개발에도 평화적으로 이용될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여러 공학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오랜 기간 연구개발에 매진하여 한국에 멋진 선물을 안겨준 국방과학연구소와 유관기관의 과학기술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유만선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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