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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제주도학·에스페란토에 탁월했던 과학자 석주명
나비·제주도학·에스페란토에 탁월했던 과학자 석주명
  • 유무수
  • 승인 2021.10.2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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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한국의 르네상스인 석주명』 윤용택 지음 | 궁리 | 332쪽

연구할 시간 확보하려고 땅콩으로 자주 점심 때워
르네상스인이자 한국 최초의 융복합학자 면모 갖춰

일제강점기에 한국인 과학자가 유일하게 영문으로 집필한 책은 1940년에 출간된 『A Synonymic List of Butterflies of Korea』이다. 이는 석주명(1908∼1950)이 영국 왕립 아시아학회로부터 의뢰를 받고 작성한 나비연구서였다. 일본 가고시마 고등농림학교 재학 시절 석주명에게 나비연구를 권했던 스승 오카지마는 이 책 서문에서 “그는 10여 년 동안 수십만 마리의 조선의 나비를 수집하고 관련된 거의 모든 문헌을 조사하면서 이 책을 위한 자료를 모았다… 나는 감히 이 책을 이 분야에서 가장 가치 있는 책으로 추천하는 바이다”라고 썼다.

미국 북일리노이 주립대 교수를 역임한 딸 석윤희(1935∼)의 회상에 의하면 아버지는 매년 나비채집을 위해 산을 돌아다녔다. 여름이 지나면 얼굴이 새카맣게 변해 있었기에 그의 별명은 ‘인도까마귀’였다. 연구 활동으로 새벽 2시 이전에 잠을 잔 적이 없었고 식사시간을 줄이려고 땅콩으로 점심을 때울 때도 많았다. 석주명이 나비 채집을 위해 방문한 지역은 한반도 전체에 걸쳐있었고, 북경, 만주, 몽골, 사할린, 홋카이도, 대만 등까지 이르렀다. 

석주명은 나비연구를 하면서 각 지역마다 독특한 방언이나 문화에도 흥미를 갖게 되었다. 식물분포가 다르면 곤충분포가 달라지고, 자연환경이 달라지면 사회문화도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경성제국대학 생약연구소 연구원으로 제주도에 파견 근무하는 동안에는 제주도의 문화, 전설, 방언 등으로 관심범위가 확대되었다. 곤충학 연구방법을 적용하여 방언을 연구했고, 제주도의 자연, 사회, 역사 등 제주도와 관련하여 총체적인 연구를 하고 그 결과물도 발표함으로써 ‘제주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는 일본유학시절 에스페란토를 배웠다. 에스페란토운동은 세계공통어로 강대국 언어보다 배우기 쉬운 에스페란토를 쓰자는 것이다. 그는 식민지 학생으로서 에스페란토의 취지에 공감했고 교내 에스페란토 연구회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해방 이후에는 조선에스페란토학회 창립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에스페란토 강습회를 여는 등 에스페란토운동을 주도했다.

정부는 1964년 석주명에게 대한민국 정부 건국공로 훈장을 추서했고, 한국과학기술원에서는 그를 ‘명예로운 과학자’로 선정했다. 제주대 교수(철학과)인 윤용택 저자는 “학문적으로 볼 때 그는 우리나라 르네상스인인 동시에 우리 학계 최초의 융복합학자”라고 묘사했다. 국학자 정인보는 석주명이 1949년에 쓴 『한국본위 세계박물관연표』 서문에서 “내가 석 교수를 만난 지도 어느덧 십오륙 년이나 된다… 그의 부지런은 한결이다”라고 썼다. 여러 분야에서 선구적 성취를 일궈낼 수 있는 연구력으로 몰입도가 깊었던 남편의 ‘지금, 여기’가 아내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1948년에 부부는 이혼했다. 남편의 그 한결이 아내 입장에서는 서운했을 것이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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