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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한국 근대과학기술인력의 출현』 김근배 지음| 문학과지성사 刊| 556쪽| 2005
서평_『한국 근대과학기술인력의 출현』 김근배 지음| 문학과지성사 刊| 556쪽| 2005
  • 이성규 인하대
  • 승인 2005.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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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수탈론, 하지만 '노작'

이 책은 대한제국이 성립하는 1876년부터 시작해 1910년의 조선의 식민지화를 거쳐서 일제가 패망하는 1945년까지의 기간을 통해 출현하는 조선인 근대과학기술자를 다루고 있다. 과학기술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저자는 理學과 工學을 주된 주제로 하고 있다. 여기서 과학기술자의 개념에는 대학 및 전문학교 출신의 고등인력은 물론, 각종 양성소나 강습소 출신의 기능 인력도 포함된다.  

저자가 일제시기 조선의 과학기술을 보고자 함에 있어서 특히 조선인 과학기술인력에 대해 집중하기로 한 이유는, 조선반도에서 행해진 거의 모든 과학기술의 성과 및 활동은 한국과학기술사가 될 수는 없는 것으로, 압도적으로 그것은 日帝를 위한 일제에 의한 일제의 과학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조선민족이 수행한 과학기술 활동을, 조선인이 주체가 되어 이룬 과학기술적 성과를 찾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저자는 조선인 과학기술자의 양성은 오로지 조선인의 자주적 역량과 자발적 활동에 의해서 가능했다고 본다.

이 책에 나타나는 네 개의 큰 시기구분은 일제의 대내외정책의 추이를 축으로 하지 않고 조선인 과학기술자 출현의 양상에 초점을 맞추어서 나눠지고 있다. 제1부는 대한제국 시기(1897-1910)로서 제국주의의 물결에 휘둘리면서도 자주적으로 서양의 근대과학기술을 배우려했던 우리 민족의 노력과 실패의 역사를 보여준다. 제2부(1910-1919) 식민지배 초기 일제의 철저한 ‘조선인 하층민화’ 정책 밑에 놓여진 한국과학기술사의 암흑시대에 이어서 제3부(1919-1935)는 3.1운동과 함께 각성한 조선인의 과학계 진출이 막을 올리는 시기를 서술한다. 마지막 제4부(1935-1945)는 일제의 본격적인 대륙침략과 함께 조선반도가 병참기지화하면서 조선인과학기술인력이 크게 증가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 책에 대한 필자의 불만은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우선 조선반도의 유일한 대학으로 군림하는 경성제국대학(1924-1945) 이공학부(1941-1945)의 서술에 있어서 비중과 평가가 과소하다는 것이다. 예로서 저자는 경성제대 이공학부 졸업자 수가 ‘37명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필자는 ‘37명이나 된다’고 보는 것이다. 첫째, 경성제대 이공학부는 4년여라는 짧은 기간을 존속했다는 사실과 둘째, 다음에 학사수준의 조선인 과학기술자가 출현하는 것은 대략 1919년부터 1945년까지의 기간 동안이며 셋째, 일본본토에 유학해 학사학위를 취득한 이공계 조선인의 총수는 2백여명으로서 총 해외유학생 수의 3분의 2이상을 차지하는 숫자라는 세 가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경성제대 이공학부는 식민지과학기술의 전당이었으며, 나아가서 해방 후에 신생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에 이들 경성제대 졸업생들이 지대한 기여를 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두 번째 불만은 저자의 역사관의 표현방식이다. 저자는 식민지시기에 조선의 과학기술근대화의 ‘씨앗’은 뿌려졌다고 간단히 말하면서 그러나 근대화론 대 수탈론의 논쟁에 대해서는 스스로 거리를 두겠다고 했다. 그러나 필자가 볼때 저자는 전체적으로 수탈론에 기울어져 있으며, 이러한 그의 입장과 연관되면서 이 책의 몇 군데에서 저자의 논리의 약점이 나타나고 있다. 제3부의 타이틀 ‘조선인의 과학기술계 진출과 일제의 억제’를 보자. ‘일제의 억제’라는 표현이 여기서 새삼 있을 필요가 있을까. 일제의 억제정책은 36년간 내내 존재한 것이 아닌가. 저자는 끊임없이 일제의 조선반도에 있어서의 과학기술정책을 비판하는 중에서, 일제는 과학을 소홀히 하고 오직 기술을 통해 조선개발을 추진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과학기술과 근대화에 뒤떨어져서 가난했던 조선을 위해서는 역시 산업?경제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기술이 더욱 절실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또한 일본의 과학기술사를 보면 금방 나타나는 대로 일본은 항상 이론적인 과학보다는 실용적인 기술을 중시해왔다. 조선경영에 있어서 ‘기술적 개발’에 초점을 맞춘 일제를 비판하는 것은 어색하게 들린다.

 “(식민지 시절) 조선인이 자기 향상과 민족적 발전을 지향하며 추구하여 나아간 과학기술”을 추구해 찾아냈다고 저자는 주장하면서, 한편으로는 이와 맞지 않는 조선인의 이미지를 말하고 있다. 즉 조선인은 일제시대에도 뿌리 깊은 인문학 숭상의 전통에 빠져있어서, 중하층에 속하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이 과학기술에 흥미를 가졌으며, 그래서 과학기술을 조선인이 하는 큰 동기는, ‘남들이 안 해서’이거나 ‘성격이 내성적이고 얌전해서’였으며, 나아가서는 다른 분야로의 진학에 실패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저자는 논하고 있다. 

비록 일제지배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의 이견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 책을 巨作이라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겠다. 일제 36년간의 과학기술사 ―理學과 工學 중심의―는 아직도 미개척 분야였다. 이 책은 이 분야가 다루어야 할 모든 측면을 포함하는 최초의 본격적인 탐구서의 의미를 지닌다. 저자가 발굴해 낸 새롭고 경이적으로 방대한 일차사료, 사실 및 정보는 이 책의 가치를 절대적인 것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저자가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수많은 도서관에서 자료를 탐색하고 또 그것을 정리하는데 들인 시간은 아마도 천문학적일 것이다. 과학사를 하는 한 인간으로서 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성규 / 인하대  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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