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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과 대만 문제…새로운 위상학으로 중국을 바라보기
홍콩과 대만 문제…새로운 위상학으로 중국을 바라보기
  • 장정아
  • 승인 2021.10.14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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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중국과 비(非)중국 그리고 인터차이나: 타이완과 홍콩 다시보기』 백원담・장정아 외 7인 지음 진인진 | 348쪽

최근 한국사회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용어 중 하나는 ‘반중정서’ 또는 ‘혐중정서’일 것이다. 이 용어들은 얼마나 정확한 현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일까. ‘반대’와 ‘혐오’의 차이는 정확히 직시되고 있는 걸까. ‘중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이라는 표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차이가 뭉뚱그려지고 가려지고 왜곡되고 있을까. 그 중국은 어떤 중국이고, 한국인들 속 다양한 인식의 차이는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가. 이 고민은, ‘중국’이라는 대상을 역사적으로나 담론적으로나 끊임없이 복수화(複數化)하며 새로운 위상학 속에서 바라보려는 노력과 이어져야 한다. 『중국과 비중국 그리고 인터차이나』는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서, 중국본토와 대만・홍콩을 여러 각도에서 가로지르며 분석한 책이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중국 쟁점 기획 계열의 제2권인 이 책은 냉전, 계급, 식민성, 국민국가 체제, 우익 포퓰리즘 등 여러 틀로 바라보면서, 복수성의 정치가 구현되는 담론장의 역사적 구성과 탈경계적 재맥락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책에 참여한 한국과 대만・홍콩・영국의 여러 연구자는 인터차이나 더 나아가 인터아시아적 시좌로 접근하며 모순의 중층성을 드러내고 한국사회에 대한 시사점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이 책의 글과 대담은 대부분 계간지 『황해문화』 2016년 가을호 특집과 2019년 여름호에 기획으로 실린 바 있고, 국가안전법(국가보안법) 이후의 홍콩을 다룬 7장은 새로 집필된 글이다. 백원담 교수가 기획한 두 개의 대담은 각각 시의성 있는 시점에 이뤄졌는데, 대만의 천광싱 교수는 제3세계적 국제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아시아 사상 기획을 토론하고자 2016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대담을 했고, 홍콩의 민주인권전선(2021년 8월 정부 압력으로 해산) 부대표 웡익모는 2019년 홍콩에서 범죄인 송환법 반대투쟁이 폭발했을 때 한국을 방문하여 대담에 응했다.  

이 책의 1장・5장・6장・9장은 홍콩의 2014년 우산혁명(우산운동)과 2019년 송환법 반대운동을 다루면서 운동 자체에 대한 분석을 넘어서 여러 질문을 던진다. 군중의 자발성, 폭력과 비폭력, 지도부 없는 운동의 힘과 한계, 정당정치와 대표성의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며, 특히 ‘민주’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여러 글을 관통하고 있다. 

우산혁명과 송환법 반대운동이 묻는 민주주의

샹뱌오는 홍콩 민주화의 ‘외향성’이라는 흥미로운 표현을 제시한다. 이는 홍콩 민주화가 홍콩사회 내부의 역량에 의해 추진되었다기보다 중국 본토와의 차별성 그리고 ‘국제도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는 뜻이다. 이 ‘외향성’ 특징은 ‘민주’라는 이름으로 벌어진 운동이 홍콩사회 내부의 모순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해결하기보다 외부에 대한 요구를 중심으로 형성되게 만들었다. 샹바오는 이런 문제점을 1989년 중국 본토의 천안문사건과도 연결지으면서, 각 사회 내부의 문제들이 형식적 ‘민주’에 대한 요구로 환원되면서 제대로 천착되지 못했고 이후 사상적 공백이 생겨났다고 지적한다. 

장정아도 홍콩에서 민주라는 가치가 식민시기 사실상 제대로 형성된 적이 없다고 짚으면서, 거대한 ‘민주’의 실험장이었던 우산운동 점령과정을 이렇게 분석한다: “홍콩인들은 자신을 중국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핵심이라며 자랑스러워하던, 그리고 반환 후 빼앗겼다며 그토록 갈망하는 민주가 무엇인지 사실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대규모 운동 후 남겨진 질문은 홍콩뿐 아니라 한국사회에서도 유효하다. 

대만(왼쪽)과 홍콩의 깃발. 이미지=위키피디아

샹뱌오의 글을 옮긴 박석진이 지적하듯, “‘민주주의의 미완’이 문제일가, 아니면 ‘민주주의’를 핵심이자 강령처럼 설정한 인식 자체가 문제인 걸까. 1989년 중국의 사회운동이 실패한 것은 단지 진압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회운동이 장기적 사회변화의 역량으로 전화되지 못했기 때문이고 심지어 그런 경험을 의미있는 사상적 자원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샹바오의 문제의식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한국에선 수많은 운동을 통해 어떤 사회변화 역량이 형성되었고 이를 어떤 사상적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가.” 이렇듯 홍콩과 대만에 대한 이 책의 분석은 한반도나 다른 아시아 사회에서 정치 민주화운동이 설사 정권교체에 성공했더라도 대중의 정치사회적 요구를 새로운 정치사회의 모델로 전화하는 사상동력과 사상전선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성찰을 제공한다. 

 

사상적 자원으로 만들지 못한 중국의 사회운동

계급과 자본주의 그리고 우익 포퓰리즘 문제를 논하는 천신싱과 옌하이룽・베리 사우트먼의 글은 최근 세계적으로 흥기하는 우익 포퓰리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해준다. 2장은 대만의 정책과 민족주의가 내포한 인종주의와 계급문제를 지적하고 있고, 3장은 홍콩의 뿌리깊은 빈부격차가 자본 독점과 계급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홍콩과 중국대륙의 대립구도로 치환되어 중국에 대한 반감이 강화되어 온 문제점을 짚으면서, 홍콩을 지키려는 움직임 중 강경파가 우익 포퓰리즘 양상을 띠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회문제가 다른 문제로 치환되며 뒤틀린 분노와 원한을 야기하는 과정에 대한 이해를 통해 우리는 우익 포퓰리즘을 계몽주의적으로 비판하기보다 그것이 무엇의 징후인지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4장은 일국양제라는 실험적 제도가 냉전과 국민국가 체제를 과연 넘어서는 상상을 발휘하고 있는지 묻고 있는 글로서, 일국양제가 사실상 거의 무너져가는 2021년 현재 시점에서 이 질문은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백지운은 탈냉전시대에 새로운 형식으로 지속되는 냉전적 논리와 감각에 중국이 어떻게 냉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대응하느냐라는 문제에서 양안문제와 홍콩 문제는 현대 중국이 직면한 중대한 사상적 과제라고 지적한다. “일국양제 구상은 식민과 냉전의 역사를 통해 국민국가 체제가 공고해진 동아시아에서 진정한 의미의 탈냉전 창을 열기 위한 의미심장한 실험이었다. 동아시아에서 탈냉전은 국민국가 프레임을 파괴하는 국가 형태에 대한 창조적 모색 없이는 실현될 수 없으며, 그것은 다시 식민과 냉전의 유산에 대한 진지한 사유 없이는 진행될 수 없다.” 이처럼 미지의 국가형태에 대한 실험적 모색으로서 의미를 가지는 일국양제 제도는, 분단국가로서 끝없이 반복되는 적대구도에서 벗어나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하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는 것이다. 

 

식민과 냉전의 유산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필요하다

이 책의 여러 글에서는 대만과 홍콩에 대해 중국 요인을 넘어서서 바라보고 설명할 필요성을 계속 강조한다. 대만에서 중국 요인에 비해 미국 요인이 은폐되고 자연화되는 문제를 지적하는 천신싱의 문제의식은 한반도의 사드 배치와 남중국해 갈등국면에도 유효하다. “타이완의 사회운동은 민중과 관련이 없다. 나는 이 운동이 반영하는 핵심 문제가 1980년대 이후 지식이 부단히 유럽과 미국을 향해 심화되었던 결과물이었다는 데 있다고 본다”는 천신싱의 지적은 홍콩 민주의 ‘외향성’에 대한 샹뱌오의 지적과 연결된다. 이 책 제목 속의 ‘중국과 비중국’은 역사와 담론 속에서 중국을 복수화한다는 함의를 가지는 동시에, 중국 요인을 넘어서는 시좌로 새로이 바라보자는 함의 또한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천광싱과 백원담의 대담에서는 대만과 홍콩 문제를 비민족주의적이고 아시아 권역적 견지에서 재맥락화할 것을 요구하면서, 양안삼지(중국대륙・대만・홍콩)에 대해 민족국가 틀 속에서 단절된 역사서술이 아닌 새로운 역사서술을 제안한다. 또한 장정아는 아시아에서 ‘민주’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당연시하고 자연화할 때 괄호쳐지는 문제들에 주목할 것을 요구하였다. 

홍콩은 이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애국자로서의 자기증명을 하는 주체만이 ‘안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국가안전법의 시대가 되었다. 일국양제라는 실험적 제도 속에서 주어졌던 많은 공간은 닫히고 있다. 민주와 인권・자유・법치라는 가치의 식민성에 대한 성찰과 근본적 재고가 홍콩에서 시작되던 찰나 도입된 국가안전법으로 전방위적 압박이 강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상상은 다시 단순해지고 있다. ‘민주’의 의미에 대한 엄밀하고 장기적인 토론보다는, 작은 형식적 ‘민주’라도 지켜내자고 국제적으로 호소하는 것이 더 절박하고 시급해졌다. 홍콩인들이 해온 그리고 앞으로 해나갈 노력의 의미는 단순히 ‘자유와 민주’를 지키는 것도, 단순한 ‘반중’만도 아닌,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며 넘어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매순간 급박해지는 현실 속에서 많은 홍콩인들은 단순하되 강력한 ‘반중’과 ‘자유・민주’ 구호에 의탁하고 있다.   

 

홍콩이 당면한 과제는 단순한 반중 넘어서는 것

일국양제는 차이의 공존을 실험하는 ‘인류 역사상의 중요한 혁신’이 될 수도 있었으나, 현실에선 당위적 체제화 논리 외에 사상적-이념적 지향을 제기해내지 못했던 중국은 이제 차이와의 공존이 아닌 동화를 명시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미국 중심의 보편적 기준을 상대화하며 ‘다른 모델’을 만들어내겠다던 중국은 스스로 ‘또다른 보편’임을 내세우려 한다. 그 길은 누군가에겐 기존 보편을 상대화하는 대안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홍콩과 대만의 많은 이들에겐 고통스러운 억압으로 다가오고 있다. 중국이 만들어내는 길의 보편성과 특수성은 아시아인들에게, 그리고 세계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홍콩인들과 대만인들은 그 또다른 ‘보편성’을 변화시키는 차이를 계속 만들어내며 국민국가 경계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모든 ‘차이’와 ‘외부’를 동질화하고 내부화하려는 중국의 시도 속에서 ‘외부’는 어떻게 계속 만들어질 것인가.

2019년부터 홍콩에서 시위가 계속되고 2020년 국가안전법이 도입되면서 대만과 홍콩은 어느 때보다 민간은 가까워졌고 정부 간은 멀어지고 있다. 사실 대만과 홍콩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독특성을 가지며 계속 변해 왔고, 중국본토와 대만과 홍콩은 법 외부의 애매한 공간을 서로 허용하며 다양한 교류를 해왔다. 이런 공간도 이제 다 닫히고 있다. 대만과 홍콩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하며 아시아 지형에 영향을 미칠지 계속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운명공동체라는 말도 나올 만큼 새로운 연결선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이 책에서 제기되는 많은 문제들은 앞으로도 계속 던져져야 한다. 인터차이나, 인터아시아라는 시좌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 또한 필자들 스스로 계속 물어야 할 것이다. 국내에는 이 책의 필자들 외에도 홍콩과 대만을 연구하는 여러 훌륭한 학자가 계시지만, 이 책은 일단 주로 황해문화 기획에 실렸던 글과 대담을 중심으로 편집하면서 모든 연구자의 글을 싣지는 못했다. 이 책은 일차적 발걸음의 의미를 가지며, 향후 많은 분들과 함께 넓혀나갈 수 있길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국내 책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양안관계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책으로 『양안에서 통일과 평화를 생각하다』(박명규・백지운 엮음), 대만의 역사와 정체성을 다룬 책으로 『대만의 역사와 정체성을 찾아서』(황준걸), 『대만을 보는 눈』(최원식・백영서 엮음), 『대만, 거대한 역사를 품은 작은 행복의 나라』(최창근), 『갈등의 정체성』(왕푸창) 등이 있다. 홍콩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책으로 『리멤버 홍콩』(전명윤), 『홍콩산책』(류영하), 『홍콩의 정치와 민주주의』(구라다 도루・장위민) 등이 있고, 홍콩 활동가 조슈아 웡의 책도 두 권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중국본토와 홍콩에서 시민권과 불평등을 비롯한 여러 문제로 분투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홍명교), 『중국 딜레마』(박민희), 『민간중국』(조문영 엮음), 『도시로 읽는 현대중국』(박철현 엮음), 『아이폰을 위해 죽다』(제니 챈・마크 셀던・푼 응아이), 『노동으로 보는 중국』(정규식), 『중국 신노동자의 형성』(려도), 『중국 신노동자의 미래』(려도) 등의 책에서 볼 수 있다. 

 

 

장정아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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