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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보니 이제야 비로소 사랑이 보인다
늙어보니 이제야 비로소 사랑이 보인다
  • 유무수
  • 승인 2021.10.15 0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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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내가 늙어버린 여름』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지음 | 양영란 옮김 | 김영사 | 224쪽

성공을 갈망하던 젊은 날은 이해하지 못한 진실
늙고 병들어가니 용서하며 넉넉함·초월성 솟아나

  
저자는 여교수로서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늙음’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면서 겪은 신체적·심리적 변화에 대한 자기성찰을 문학적인 필치로 담담하고 섬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저자는 이혼한 어머니를 따라서 미국으로 건너갔고 프랑스 문학과 여성문학 등을 강의했으며 MIT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해 문학에 재능이 있는 학생에게 수여할 정도로 인정받는 학자였다. 성공을 향해 돌진하는 열정으로 나름 잘 나가는 중에는 느끼지 못했던 의미가 ‘늙음’의 상황에서 선명하게 부각됐다.

요가수업을 받을 때 신체가 예전보다 확실히 유연하지 못하다는 것을 느꼈고,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해주는 사람이 늘어날 때 고마움을 느껴야 하는지 모욕을 느껴야 하는지 헷갈렸다. 많이 사용해서 닳았기 때문에 치아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백내장 수술 권고를 받았을 때 ‘늙음’을 실감했다.

은퇴한 직후부터 저자는 젊은 사람들에게 별 볼 일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체험을 했다. 어렸을 때 영화관과 맥도널드에 데리고 다닐 때는 고민을 얘기하며 대화가 잘 됐던 조카들이 청년기로 성장할 때 고모는 시대에 뒤떨어진 존재로 전락했다. 그들에게는 이성, 동성의 친구, 스마트폰, 좋아하는 음악이 있고, 고모가 떠드는 페미니스트적인 분석이나 사회비판, 문학이야기는 지루한 소음이 되었다. 타자기로 박사논문을 완성했던 저자에게 보안을 위해 ‘0&1xxpLw45++z’같은 요상한 비밀번호를 계발해야 하는 디지털문화는 위축감을 느끼게 했다.

저자의 부모처럼 저자도 이혼했다. 도저히 조화될 수 없기에 이혼한 남편을 파리에서 만났다. 풍성한 숱을 자랑하며 활기찼던 남자가 탈모로 정수리의 하얀 두피가 드러난 늙고 나약한 남자로 변해 있었다. 저자는 40년 전의 애정에 더해 인간에 대한 연민까지 더해진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 저자는 엄마에게 반항적이었다. 첫 번째에 이어 두 번째 남편에게도 순종적인 여성의 모습을 저자는 거부했다. 죽음을 상상하게 하는 늙음에 이르러 세상을 떠난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가 살아있었을 때 자신에게 베푼 사랑을 조금이라도 돌려주지 못했던 과거를 뼈아프게 반성하며 저자는 큰 슬픔을 느꼈다. 다섯 살 때 엄마와 이혼한 아빠, 자식들에게 무뚝뚝했던 아버지가 전화를 해서 기르던 반려견 한 마리가 죽었다고 통곡한 적이 있었다. 저자는 우는 아버지를 원망했다. 그러나 자신이 늙은이가 되고 키우던 고양이 한 마리의 심장이 잘못되어 안락사를 요청했을 때 격렬한 슬픔을 느꼈고, 비로소 아버지의 눈물을 이해했다.

젊었을 때 답답했던 부모, 상종할 수 없던 남편을 늙어가면서 모두 용납하는 방향으로 스토리가 재구성됐다. 사랑이 깊어졌다. 그런 늙음에는 젊은 패기로 나아갈 때 결핍됐던 넉넉함과 초월성이 봄날의 새싹처럼 솟아났다고 할 수 있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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