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20:30 (금)
기괴한 논문이 왜 과학저널에 실리나?
기괴한 논문이 왜 과학저널에 실리나?
  • 김재호
  • 승인 2021.10.11 09: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상식적인 논문게재 사건 분석
논문투고 시스템 해킹이 원인

지질학 연구에 등장한 에어로빅과 스포츠 상해보험?

지질학과 스포츠연구를 융합한다? 말도 안 되는 이상하고 기괴한 논문들이 과학저널에 게재되고 있다. 특히 거대 출판기업 스프링거 네이처와 엘스비어가 관리하는 저널에 이상한 논문이 등장해 철회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29일 미국의 고등교육 전문지 <더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이하 ‘크로니클’)은 「비상식적인 논문들의 수상한 게재(The Mysterious Case of the Nonsense Papers)」라는 소식을 전했다. 

기괴한 논문들의 예. 지난 8월 17일에 게재된 한 논문은 지질학과 댄스 교습을 함께 다루고 있다. 빨간 사각형은 스포츠 관련 용어인 ‘댄스 교습’이다. 이미지=『아라비안 지구과학』 캡처

괴상한 논문들이 저명 저널에 실리는 이유는 첫째, 누군가 일부러 해킹하기 때문이다.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논문출판 문화를 조롱하기 위한 장난 격이다. 둘째, 무책임한 객원 편집자들이 출판 편집과정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객원 편집자들은 급여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해킹 대상이 되기도 한다. 셋째, 논문출판에 대한 압박 때문에 생기는 비뚤어진 동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논문을 출판하기 위해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않는다. 한 전문가는 “과연 정말 누군가 이 저널을 읽긴 하나요?”라며 ‘그들만의 리그’인 연구·출판 문화를 꼬집었다.    

특히 논문투고가 대부분 온라인으로 진행돼 해킹 문제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암호를 허술하게 관리해 발생하는 단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논문투고 시스템은 전자보안을 더욱 강화하는 추세다. 온라인 제출의 일반적인 단계는 원고 준비-등록 및 로그인-원고 정보 입력-시스템 업로드-추가 정보 입력-논문 검토 및 제출로 이뤄진다.  

스프링거 네이처에서 발행하는 수천 개의 저널 중 하나인 『아라비안 지구과학』 저널에 이상한 논문이 최근 게재됐다. 이 논문은 댄스교습에 대한 활발한 토론을 펼치기 전에 지하수 침투 관련 고도의 기술적 부분을 논한다. 댄스교습과 지하수 침투 기술을 다루는 내용이 혼합됐다. 예를 들어, 댄서들에게 워밍업 하며 엉덩이를 조여달라고 촉구하기 전에 주기율표에 있는 희토류 원소들에 대해 설명한다. 논문에는 표, 그래프, 인용, 하이퍼링크가 있다. 논문은 매우 과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비상식적이다. 총 412건에 달하는 기괴한 논문들이 이 저널에 게재돼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거대 출판기업 스프링거 네이처·엘스비어 우려 표명
논문출판에 대한 압박과 객원 편집자들 이슈가 존재

스프링거는 확인된 기괴한 논문들에 “편집상 우려된다”라고 명기했다. 이 논문들은 철회된 듯 보이지만 여전히 온라인에서 이용 가능하다. 또 다른 거대 출판기업 엘스비어 역시 자사 저널 중 한 저널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까다로운 논문출판 기준에 못 미치는 400개 논문들에 편집상 우려가 된다고 밝힌 것이다.  

또 다른 괴상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중국 항토 고원에 내린 비와 함께 스포츠 상해 보험을 다룬다? 해수면 높이와 에어로빅 교육을 같이 다룬다? 생태학적 위험 평가를 논한 후에 배드민턴과 테니스의 유사성을 밝힌다? 공식적인 지구과학 저널인데도 수영 관련 5개 논문과 농구 관련 7개 논문이 실렸다. 여기엔 셀든 윌리암슨 교수에 의해 편집된 논문들이 포함됐다. 논문들은 특별호로 발간됐다. 셀든 윌리암슨은 캐나다 온타리오공과대 전기·컴퓨터·소프트웨어공학 교수다. 그는 캐나다에서 교통과 전기에너지 저장 관련 시스템 연구 분야에서 의장을 맡고 있다. 윌리암슨 교수는 이메일 계정이 해킹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책임 있는 편집자로 자신의 이름이 올라운 논문들로 인해 상당히 당혹스럽다고 밝혔다. 

이런 기괴하고 이상한 논문이 게재되는 한 가지 이유는 장난 때문이다. 몇 년 전에도 수많은 전문용어들이 난무하는 과학저널을 조롱하기 위해 비상식적인 논문들이 투고된 적이 있다. 이 논문들은 출판된 과학논문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토론하는 웹사이트 ‘펍피어(PubPeer)’에 의해서 적발됐다.  

 

이메일 해킹해 전문가 집단 조롱

사우디아라비아 킹사우드대에서 지질학을 가르치는 압둘라 알 아미르 교수는 『아라비안 지구과학』 저널 창립자이지 책임편집자이다. 그는 저널에 실리는 모든 논문을 확인하고 어떤 논문을 승인하거나 승인하지 말아야 할지 결정한다. 매월 두 개호가 발행된다. 그런데 9월 한 달동안에만 276편의 논문이 실렸다. 알 아미르 교수는 매일 약 10개의 논문을 읽었다는 계산이 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는 “저널을 해킹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믿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알 아미르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승인된 논문들을 알지 못한다.  

스프링거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객원 편집자 이슈와도 연결된다. 특히 무급 객원 편집자는 해킹의 대상이 되기 싶다. 『아라비안 지구과학』에선 3개의 발간물, 『퍼스널 & 유비쿼터스 컴퓨팅』는 1개의 발간물에서 객원 편집이 문제가 돼 조사가 진행 중이다. 원래 논문출판은 본질적으로 신뢰에 기반한다. 하지만 기괴한 내용, 동료 심사, 가짜 신분을 이용해 논문출판이 위협 당하고 있다. 전통적인 논문출판에 대한 전복 시도는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까지 이용돼 문제점을 적발해내기가 더욱 어렵다.

<크로니클>에서 보도한 화면 캡처. 그림을 보면 지질학을 상징하는 지구 내부 위에서 사람들이 스포츠를 하고 있다. 이 두 분야는 전혀 융합될 수 없음에도 말이다. 이미지=<크로니클> 캡처. 

<크로니클>은 한 가지 단서로 중국 기관과 중국의 연구 관행을 지목했다. 중국의 대학들은 SCI급 저명 저널에 논문이 게재되면 포상을 한다. 중국 교육부 및 과학기술부가 이런 연구관행을 제지하려고 해도 어떤 경우엔 현금을 보너스로 지급한다. 특히 박사과정생들은 졸업하기 전 논문출판이 졸업 요건이 돼 상당한 압박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논문을 게재하려는 비뚤어진 욕망이 자라난다. 

스프링거의 또 다른 저널 『퍼스널 & 유비쿼터스 컴퓨팅』에서도 이상한 24개 논문이 발견됐다. 지난 5월에는 『현대심리학』에서 특집호의 일부였던 12개 이상의 논문이 철회됐다. 편집 과정과 동료 심사에서 발생한 문제 때문이다. 몇몇 논문들은 저널 주제와 전혀 상관이 없는 듯했다. 아울러, 내용상 오류와 방법론적 문제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과연 출판된 논문이 진실에 가까운가 라는 의문이 든다. 논문이 저널에 게재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연구진실성을 보장할 수 없다. 다만, 끊임 없이 불거지는 과학적 진실과 검증 사이의 줄다리기는 과학 자체의 본성에서 비롯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