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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 교육’의 대명사, 프랑스 대학의 대변신
‘무상 교육’의 대명사, 프랑스 대학의 대변신
  • 구신자
  • 승인 2021.10.11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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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고등교육의 최근 개혁 동향 ② 비 EU지역 유학생에 학비 인상

대학평준화와 관련한 논의를 할때면, 의례히 프랑스 대학을 떠올린다.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프랑스 고등교육'의 현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일까. 프랑스 파리5대학 교육학과에서 DEA학위를 취득하고 주한 프랑스문화원 고등교육진흥담당관을 지낸 구신자 세계문화교육연구소 소장이 최근 『프랑스의 대학과 그랑제콜』을 출간했다. 구 소장이 세 차례에 걸쳐 '프랑스 고등교육의 최근 개혁 동향'에 대해 연재한다. 

파리에 있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대학인 소르본느 대학 전경 모습이다.

프랑스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무상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일찍이 왕정 시대의 라트랑 공의회(1179년)가 천명한 ‘무상 교육’의 원칙에 입각한 것이다.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모든 국민에게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정신이 투영된 것이다.

현재 프랑스 대학 학부 과정의 학비는 1년에 170유로(한화 약 23만 원)로, 우리나라에 비하면 거의 무상 수준이다. 과거 프랑스 대학의 저렴한 학비는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외국인 유학생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는 2018학년도부터 EU지역 학생과 EU지역 이외의 유학생들을 구분하여 학비를 차등 적용하는 초유의 제도를 전격 도입하였다. 우선 2018학년도부터 EU지역과 비 EU지역 유학생에게 적용된 학비(표)를 비교해 보자.

이와 같이 인상된 등록금 액수는 우리나라의 수도권 소재 4년제 대학 학비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비 EU지역 학생에게 부과된 학부 과정의 학비는 2018년 이전에 비하면 무려 16배, 석사 과정 학비는 15.5배나 인상된 것이다. 다만 박사 과정에 대해서는 EU와 비 EU 학생을 차별하지 않고 1년에 380유로(한화 약 51만 원)를 동일하게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박사 과정 학비도 곧 인상될 것이라는 공표가 있었다. 그간 프랑스의 유학생들에게 저렴한 학비는 최고의 매력 포인트였는데, 아쉽게도 이 매력이 영원히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이와 같은 프랑스의 학비 차등 적용 정책은 영국에 비해 늦게 도입되었고, 미국 대학의 엄청난 학비에 비하면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그러나 당연히, 비 EU지역 유학생의 거센 반대와 항의가 일어났다. 이러한 반발에 등록금 인상 도입 첫해인 2018학년도에는 전체 75개 대학 중 7개만이 등록금 차별 정책을 시행하였다.

840여년 ‘무상 교육’ 막을 내리다…‘자국 우선주의’에 동참

헌법에 명시된 무상 교육 정책이 프랑스에서 840여 년이나 지속되어 왔던 만큼, 등록금 인상 문제가 비록 당장은 비 EU지역 유학생에 한정된다 할지라도 이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프랑스의 국립학생노조는 비 EU지역의 외국인에 대한 학비 인상이 시발점이 되어 종국에는 프랑스도 영미 모델처럼 중장기적으로 내국인을 포함한 모든 학생의 등록금을 인상할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학생들의 거센 항의는 물론이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제기된 격렬하고 뜨거운 논쟁 끝에, 2018년 프랑스 국립학생노조는 학비 인상이 헌법의 ‘무상 교육 원칙’에 배치된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마침내 2019년 11월 헌법평의회는 비 EU지역 유학생에 대한 등록금 인상은 위헌이라고 천명하며, ‘등록금 무상 정책’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프랑스 법 절차상 헌법평의회의 결정은 어디까지나 권고 사항에 불과하며, 실제 행정 결정의 최종적인 권한은 국가의 최고 행정법원인 참사원이 쥐고 있다. 결국, 2020년 7월 1일자로 참사원은 외국인에 대한 등록금 차등 적용법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당시 에두아르 필리프(Edouard Philippe) 총리는 “EU 학생의 부모들은 세금을 내기 때문에 무상 교육의 수혜를 입는 것이 당연하지만, 세금을 내지 않은 외국인 학생들에게 무상 교육의 혜택을 주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현재 프랑스에서 학비 인상은 과도기에 있다. 2018년 이전에 이미 프랑스 고등교육 기관에 등록한 학생에 대해서는 한시적으로, 학업을 마칠 때까지 과거와 동일한 학비가 적용될 예정이다. 또한 프랑스의 유학생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아프리카 출신 유학생에 대해서도 잠정적으로 과거와 동일한 학비가 부과될 예정이다. 2021학년도에 전체 75개 대학 중 파리 1·2·3·4 대학 등 수도권 대학을 비롯한 총 33개 대학(약 44%)이 학비 인상을 단행하였다. 결국 참사원의 최종 판결에 따라, 머지않아 나머지 프랑스 대학들도 등록금을 인상할 전망이다.

이로써 프랑스에서 840여 년간 지속되었던 무상 교육 혜택이 적어도 비 EU 외국인 학생에 대해서만큼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는 오늘날 글로벌의 물결이 한창인 가운데 프랑스의 고등교육은 역설적이게도 자국 우선주의 정책의 시류에 동참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구신자 세계문화연구소 소장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불어불문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파리5대학 교육학과에서 DEA학위를 취득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원과 주한 프랑스문화원 고등교육진흥담당관을 지냈다. 최근 『프랑스의 대학과 그랑제콜』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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