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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백련 짝퉁이거나 신파조의 뽕짝들
허백련 짝퉁이거나 신파조의 뽕짝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06.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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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한 평론가의 지역미술권력 비판

박영택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지역미술계에 직격탄을 날렸다. 한국미술이론학회가 주최해서 지난 6월 11일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전시권력-1960년대 이후 한국현대미술’에서 박 교수는 “지역을 거점으로 해서 밥그릇을 챙기는 작가집단이 서식”하고 있다며 “미협회원과 대학교수들”이 대표적이라고 성토했다.

박 교수는 광주·전남지역은 엇비슷한 남도산수라는 그림들이 대세를 이루며, “죄다 허백련과 오지호를 염두에 둔 ‘짝퉁’ 같은 작업들”이라고 일갈한다. 대구지역은 사실주의에 가까운 형식에 자연풍경이나 정물을 무척 감성적으로 다루는 것이 특징인데, “신파조의 뽕작 같은 구상화”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부산지역은 “오직 형상미술만으로 작업의 알리바이를 삼으려” 한다고 비판한다.

박 교수는 대구화단에 특히 독설을 뱉었다. 배타적인 아집과 독선으로 상대방을 폄하하고 권력투쟁에 몰두하여 자기 파벌 만들기에 급급한 일부 작가들은 창작활동보다는 혼탁한 화단 정치에 좀더 많은 공력을 쏟아왔고, “보기 좋고 걸기 좋은 장식성에서 비롯된 아름다움과 통속적인 대중성, 신파성이 망라돼 있다”라며 김일해, 이원희, 장리규, 권준, 박일용 등을 거명했다. 지역미술계의 적나라한 권력관계와 유착구조가 어떻게 작품들의 양식과 질을 규정해왔는지 이번 발표문은 잘 보여준다. 아니 그런 듯하다.

다만 박 교수의 지역화단 비판은 작가들의 개별적 차이와 변화의 노력들을 살펴볼 마음의 여유는 갖지 못한 것 같다. 부산시립미술관의 경우, 일부 지역화가들이 기획전에서 자기 작품이 제외되었을 때 기획전시 자체를 무산시키려고 기도하는 경우를 지적하는 부분은 정당하나, 아라리오미술관의 ‘씨킴’(CI kim) 관장이 신예작가들에게 창작지원금과 작업실, 전시회 비용까지 대주는 부분에 대해 기존유통망을 무시하고 있어 “국내 시장과의 갈등”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고, “관장의 컬렉터로서의 자질도 의심된다”는 등으로 보는 것은 그것의 씨킴의 긍정적 존재의의를 삭감시킬 만한 논리를 갖추지 못했다.

한편 이번 학술대회는 발표자들의 구성에서 납득가지 않는 지점이 많았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의 학예연구실장직을 맡고 있는 최은주 씨가 ‘현대미술관’에 대해서 발제를 했고, 대전시립미술관의 이지호 관장이 ‘큐레이터십과 관련한 전시권력’을 다뤘다. 따라서 前者는 ‘현대미술관, 앞으로 잘하겠습니다’는 식의 다짐으로, 후자는 ‘큐레이터의 전문성 확보가 권력논의보다 우선’이라는 등의 기획취지를 무색케하는 결과를 낳았다. 익히 알려진 제도권 미술인력 양성구조의 불합리함에 대한 동어반복적 진술에 머물렀던 것이다. 권력을 키워드로 1960~70년대 미술판을 돌아본 김형숙 서울대 교수의 발제문은 이구열, 이경성 등 화단원로 회고록을 체계적으로 서술하는 데 그쳤으며, 권력개념을 학파의 대결로 지극히 세속화시키지도 못했고, 아니면 偏在하는 담론적 권력으로 섬세히 분석하지도 못했다. “서구미술을 무조건 수입한 게 아니라, 당대의 권력지형이 작품에 반영돼 있다”는 말은 따라서 빈곤하다.

오히려 장동광 서울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의 토론문 한 구절이 큰 울림과 생각의 전환을 던져줬다. “현대미술관이 올해의 작가전, 탄생 몇주년 기념전 등의 전시회로 일관해온 것 등을 볼 때 큐레이터의 비권력적 사고와 역할이 오히려 권력화한 것이 아닌가하는 성찰이 필요하다”는 부분이 그것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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