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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사태와 박사학위 권의의 추락’
‘김건희 사태와 박사학위 권의의 추락’
  • 교수신문
  • 승인 2021.10.0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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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수노동조합 '교수논평'(2021년 10월 5일)
"학문과 학위의 권위는 학자들이 학문적, 지적 활동에 대해 스스로 정직함과 책임감을 보여줄 때 지켜진다"

“박사학위논문의 검증시효가 지났다.” 
이것은 전 검찰총장이자 국민의힘 당 대통령 예비후보 윤석열의 배우자 김건희가 2008년에 제출했던 국민대 박사학위논문에 대한 예비조사에 착수했던 국민대가 조사 후에 발표했던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대통령 예비후보의 검증을 그 배우자에 대한 검증으로 확대하는 것은, 일종의 연좌제로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대통령 배우자가 전적으로 사적인 지위인 것은 아니기에, 장차 대통령 배우자가 될 수도 있는 사람에 대해 적어도 사생활이 아닌 공적 활동에서 심각한 부정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한 검증은 시민들의 올바른 정치적 선택을 돕기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박사학위 논문 부정 의혹을 받고 있는 김건희 씨의 논문 표지.    사진=국민대

이런 맥락에서 배우자가 제출한, 공적이면서 동시에 학문적 권위가 있는 박사학위논문의 정당성을 검증하는 것은 결코 사적이거나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이라는 시효를 내세워 박사학위 논문 검증을 회피하려고 한 국민대의 태도는, 학문의 권위에 의지하여 활동하는 학자로서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5년이 지나면 박사 자격의 시효도 끝난다는 얘기인가? 그래서 박사 자격의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검증을 요구해야 할 박사들이 검증을 포기하겠다고 한 발언 뒤에는 모종의 정치적, 정략적 판단이 작동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2019년 법무부 장관 후보자 검증 국면을 돌아보면, 서울대는 1989년에 작성한 후보자의 석사학위논문까지 본조사를 실시하였고, 이후 미국 버클리대에서 문제가 없다고 했던 박사학위논문에 대해서까지 예비조사를 하기도 했다. 물론 장관 후보자 검증과 대통령 예비후보의 배우자 검증은 서로 다른 문제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박사학위논문의 검증은 누구의 것이냐가 아니라 그 논문이 과연 박사학위를 수여할 자격을 갖추었느냐를 따진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따라서 국민대가 이러한 검증을 회피하고자 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더 심각한 정치적, 정략적 판단의 개입을 암시한다. 특히 미온적 태도를 보인 국민대 교수회의 회장 홍성걸이 과거에 윤석열이 소속된 보수정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인물이라는 사실은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해주기에 충분하다.

어느 사회에서나 박사학위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상징적 가치를 부여받아왔는데, 이것은 박사학위논문이 특정 학문영역에서 박사로서의 지적 자격을 보증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사학위논문의 심사 절차는 엄격하게 이루어지는데, 일반적으로 지도교수를 포함하여 해당 학문영역의 학자 5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그래서 심사위원의 자격도 기본적으로 박사학위자로 제한된다. 이러한 엄격한 절차를 거치는 만큼 심사위원들은 학위논문의 정당성과 자격에 대한 공동의 보증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학위논문과 학위의 자격, 그리고 이에 대한 심사 및 평가의 책임에는 시효가 없다. 박사학위 논문과 박사학위의 자격은 온전히 학문의 관점에서만 평가되어야 한다. ‘박사’라는 호칭이 지적 권위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담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격과 권위를 훼손하는 표절 등 연구부정행위가 밝혀지면 언제라도 그 학위는 취소되어야 한다.

사실 많은 정치인들이 박사학위를 취득하려고 애써왔던 것도, 결국은 자신의 지적 능력이나 전문성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음으로써 대중으로부터 더 큰 정치적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했기 때문이며, 또한 예술계나 연예계의 인사들이 어떻게 해서든 석사학위나 박사학위를 취득하고자 해온 것도 학위의 권위를 통해 대중들로부터 인정받고 나아가 더 나은 지위 상승의 기회를 얻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석사나 박사로 불리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그 권위도 점차 의심받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대학들이 늘어나고 또 이들이 학위 장사에 나서 학위가 남발되기 시작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것은 지적, 학문적 목적이 아닌 다른 이익이나 권력의 추구를 위해 학위가 이용되기 시작했음을 말하는 것인데, 이에 따라 학위의 위조, 학위논문 표절이나 대리작성 등 학위의 부정 수여가 늘어나기 시작 했고, 이것은 결국 2007년 신정아 학력위조 발각 사태로 큰 사회문제로 불거졌다. 신정아는 위조한 박사학위를 이용하여 2005년에 동국대 교수로 임용되었는데, 이후 기본적인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권력층과의 연줄을 배경으로 2007년에 광주비엔날레 감독으로까지 발탁된 일이 주변의 의혹을 키워 결국 박사학위 사칭이 발각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위조나 사칭을 통해 박사학위의 권위를 지위 상승에 부당하게 이용하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큰 경종을 울렸다. 하지만 대학들이 암암리에 학위 장사에 나서고 여기에 일부 교수들이 동조하면서 박사학위의 권위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양상들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표절을 비롯한 연구윤리 위반 문제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서 한국연구재단의 연구비 지원이 확대되고 연구비 수주 경쟁 과정에서 연구실적에 대한 평가가 강조되면서, 부정한 방법으로 연구실적을 부풀리려는 경향들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국연구재단이 연구윤리를 강조하기 시작했고 학계에서도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연구부정행위와 연구윤리 위반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박사들과 교수들이 스스로 학문과 학위의 권위를 지키고자 성찰하고 노력한 결과였다. 

학문과 학위의 권위는 궁극적으로 학자들이 학문적, 지적 활동에 대해 스스로 정직함과 책임감을 보여줄 때 지켜진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김건희의 박사학위논문에 대해 국민대가 검증을 회피한 사태는 학자와 학문에 대한 사회적 권위와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린 행위이다. 학문을 정치와 권력의 노예로 만들어버린 일부 학자들과 대학 관계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을 외쳐온 학자들의 목소리가 대중들의 웃음거리가 될까 두렵다. 

이 글은 전국교수노동조합(위원장 박정원)이 2021년 10월 5일 발표한 '교수논평'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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