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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고등교육의 오해와 진실
프랑스 고등교육의 오해와 진실
  • 구신자
  • 승인 2021.10.04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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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고등교육의 최근 개혁 동향 ①

대학평준화와 관련한 논의를 할때면, 의례히 프랑스 대학을 떠올린다.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프랑스 고등교육'의 현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일까. 프랑스 파리5대학 교육학과에서 DEA학위를 취득하고 주한 프랑스문화원 고등교육진흥담당관을 지낸 구신자 세계문화교육연구소 소장이 최근 『프랑스의 대학과 그랑제콜』을 출간했다. 구 소장이 세 차례에 걸쳐 '프랑스 고등교육의 최근 개혁 동향'에 대해 연재한다. 

에콜폴리테크니크. 파리에 있는 공학계열 최고 수준의 그랑제콜이다. 

흔히 프랑스의 고등교육은 평준화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절반만 참이다. 프랑스의 고등교육 제도는 다수를 위한 평준화된 대학, 그리고 ‘대학 위의 대학’이라 불리는 엘리트 교육제도인 그랑제콜이 견고하게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학’과 ‘그랑제콜’의 본질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핵심적인 차이를 두 가지만 들어 보자. 

엘리트 교육과 평준화된 대학의 이원화 체제

우선, 프랑스에서 대학은 대학입학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baccalauréat)’만 합격하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다. 반면 그랑제콜은 그랑제콜준비반에서 2년 간 준비 기간을 거친 후, 바늘구멍보다 들어가기 힘들다는 선발시험을 통과해야 입학할 수 있다. 둘째, 그랑제콜 학생들은 엘리트 직업교육을 받으며, 졸업 후에도 대학의 졸업생보다 많은 특혜를 누린다. 2016년의 전체 고등교육 졸업생의 기관별 비율은 대학 54%, 그랑제콜 17.5%, 2년제 직업 전문대학 25.4%, 그리고 기타 학교가 3%였다. 그런데 그랑제콜 졸업생들은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강철 같은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고등교육 기회의 불평등

프랑스의 고등교육에서 치열한 논쟁과 날카로운 비판을 야기하고 있는 항구적인 도전 과제가 있다. 바로 대학 박사과정 학생과 그랑제콜 학부모들의 사회적 출신 배경이다. 요컨대, 사회 고위직과 부유층의 자녀들이 노동자 계층의 자녀들보다 훨씬 더 많이 대학의 박사과정, 특히 그랑제콜에 진학함으로써 사회적 불평등이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독립 연구 기관 ‘불평등에 관한 전망(Observatoire des inégalités)’(2017)이 발표한 고등교육 학부모의 직업 분포에 대한 아래 통계를 보자. 

위의 통계에 따르면, 그랑제콜(상경계열 에콜과 엔지니어 에콜)과 그랑제콜준비반 학부모의 직업 중 기업 임원과 전문직에 종사하는 비율이 52.4%로 가장 많았다. 반면 그랑제콜과 그랑제콜준비반의 학부모가 노동자인 비율은 5.6%이다. 이는 부모가 기업 임원과 전문직인 비율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프랑스의 지리 경제학자인 크리스토프 귀위(Christophe Guilluy)는 『프랑스 엘리트 계급의 황혼(Le crépuscule de la France d'en haut)』(2016)에서 오늘날 프랑스의 특권층과 그랑제콜 입학의 상관관계에 대한 불편한 진실에 관해 다음과 같이 고발했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프랑스 특권층의 자녀들은 물 만난 고기와 같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상호 부조는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가) 각자도생의 길을 걸어야 하고, 공화주의적인 능력주의는 흘러간 과거가 되었다. OECD 회원국 중 프랑스만큼 가정 출신 배경이 자녀의 학업 성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나라는 없다.” 

세계대학평가의 낮은 순위

프랑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초강대국이다. 이러한 위상에 걸맞게 학문 분야에서도 63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13명의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한 놀라운 업적을 자랑한다. 그렇다면 세계 고등교육 시장에서 프랑스의 세계대학평가의 위상은 어떠한가.

믿기지 않겠지만 세계적 평가 기관들의 평가 결과, 평가를 실시한 이래 2019년에야 프랑스의 대학 단 한 곳(THE: 파리 과학인문대(Paris Scientifiques Lettres), 41위)이 최초로 50위권 내에 진입했다. QS의 평가에서는 2021년까지 5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린 프랑스의 고등기관이 단 한 곳도 없었다. 2021년과 2022년 QS와 THE의 평가에서 100위 안에 든 프랑스 대학은 3개, 100~250위 안에 든 대학은 2~3개에 그쳤다.

이와 같이 프랑스의 고등교육 기관이 저평가된 제도적 배경과, 프랑스 정부가 고등교육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최근 도입한 특단의 정책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이 연재기사의 3부에서 다루기로 한다.

구신자 세계문화연구소 소장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불어불문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파리5대학 교육학과에서 DEA학위를 취득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원과 주한 프랑스문화원 고등교육진흥담당관을 지냈다. 최근 『프랑스의 대학과 그랑제콜』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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