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9:35 (금)
정신의학
정신의학
  • 이지원
  • 승인 2021.09.16 09: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에밀 크레펠린 지음 | 홍성광, 황종민 옮김 | 아카넷 | 774쪽

프로이트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에밀 크레펠린의 역작 국내 최초 번역

 

 

독일 정신의학자 에밀 크레펠린(Emil Kraepelin, l856~l926)은 근대 정신의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신경병리학과 실험심리학을 공부하였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로 일하였던 크레펠린은 정신질환의 주요 원인이 생물학적 및 유전학적 이상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주장했으며, 신체 질환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증상, 병리 소견, 경과, 예후 등과 같이 객관적으로 관찰되는 특징에 따라 기록하고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이른바 기술정신의학 분야를 개척하였다. 그는 형태가 전혀 다르고 다른 질병 경과를 밟는 몇 가지 정신병 유형이 있고, 이들 질병 사례를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분류하고, 관찰함으로써 정신 질병의 특성을 알아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1883년 크레펠린은 처음으로 의대생과 의사를 위한 정신의학 교과서이자 질병 분류를 다룬 『정신의학 개론』을 출간하였고, 이는 ?정신의학. 의대생과 의사를 위한 교과서로 증보되어, 9판(1927)까지 개정판이 발간되었다. 에스토니아의 타르투 대학교와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는 동안 이 책을 수정하고 개정판을 발행하면서 분류 체계를 계속 다듬어나갔다. 1899년에 발행된 6차 개정판에서 그는 정신병을 크게 두 가지 영역으로 분류하였다. 하나는 외인성으로 치료가 가능한 조울정신병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인성으로 치료가 불가능하고 결국 치매로 진행되는 조발성 치매였는데, 후자는 나중에 블로일러(Eugen Bleuler)가 정신분열병(schizophrenia)으로 명명하였다.

이번에 번역 출간된 책은 1909년에 발간된 8판이다. 9차 개정판은 그의 사망 1년 뒤에 발간되었다. 이후 크레펠린의 이 책은 유럽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신의학 교과서로 인정받아 왔다. 크레펠린은 정신질환의 진단에 사용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분류 체계를 처음으로 제시하면서 20세기 초반 정신의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현대 정신의학ㆍ정신장애 분류 체계의 토대가 되었다.

한편 한국의 정신의학 교육에서 크레펠린은 언급만 될 뿐 실제 그의 저작을 읽어 본 사람들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국내에는 크레펠린의 저서가 원문이든 영역본이든 단 한 권도 번역된 적이 없다. 비록 그의 저서가 일반 대중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국내 독자들에게 비교적 익숙한 같은 독어권 학자이면서 크레펠린과 대척점에서 심리 치료를 고집한 프로이트의 저작이 전집까지 발간된 것에 비하면 너무 심한 학문적 불균형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기초학문을 발전시키고 미래의 지식을 창출하기 위하여 고전에서부터 그 답을 찾아나가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며 또한 유익한 일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번역서의 출간은 매우 의미가 깊다. 정신의학의 고전을 심도 있게 탐구하는 과정을 통하여 정신의학의 방법론을 규명하고, 정신현상의 파악과 접근 방식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2014년 야스퍼스의 정신병리학 번역서 출간에 이어 정신의학 분야에서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크레펠린의 정신의학 교과서가 번역 발간되는 것은 우리나라 정신의학계에 있어 크게 기뻐할 일이라 할 수 있다. 크레펠린이 오랜 세월 동안 여러 판을 거듭하면서 공들여 집필한 이 책을 통하여 정신과 의사뿐만 아니라 정신의학 영역에서 일하는 심리학 전공자, 그리고 정신의학에 관심이 있는 의대생들이 정신의학의 임상, 연구, 교육 분야의 유용한 통찰력을 얻고, 난해한 인간의 정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