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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1_한국 비평계의 거목 김윤식에 대해 (1) 소설비평 비평
특집1_한국 비평계의 거목 김윤식에 대해 (1) 소설비평 비평
  • 최강민 문학평론가
  • 승인 2005.05.31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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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미적 특성이 드러나지 않는다"...'해석'과 '감상'은 있지만 '평가'는 부재

 문학사가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윤식. 그를 읽어내는 작업은 거대한 산맥과의 만남이자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과의 조우이다. 100여권이 넘는 그의 저서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후학들은 헉헉 숨이 차오른다.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하루에 10시간 이상 서재에 틀어박혀 연구하는 열정과 인내력. 그것은 잡스러운 일상에 휩쓸려 텍스트 읽기를 게을리 하는 연구자와 비평가 모두를 채찍질하는 귀감이다.

  그런데 뛰어난 업적을 남긴 김윤식에 대해 평하는 글을 이상하게 찾기 힘들다. 한국문학의 비합리적 관행 중의 하나인 대가에 대해 침묵하기. 그것은 존경하는 대가에 대한 예의이자 후학들의 생존방식으로 통용되어 생전에 활발한 논의를 짓누르는 족쇄로 작용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가를 신비화시킴으로써 우상화하는 전근대적 퇴행이자 맹목적 굴종이다. 건전한 비판이 발 붙일 수 없는 곳에 학문의, 비평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고금의 진리이다. 김윤식의 현장비평을 중심으로 한 나의 글도 문학평론가 이명원에 이어 또 다시 김윤식이라는 문단의 선배이자 스승을 비추는 거울이고자 한다.

  김윤식은 1970년대에 카프연구와 문학사에, 1980년대에 문학사상과 근대문학에, 1990년대에 평전과 현장비평에 치중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근대성 탐구와 소설읽기’로 요약될 수 있다. 김윤식은 1962년에 ≪현대문학≫을 통해 평론으로 등단했지만 그의 작업은 현장비평보다 이미 죽은 작가를 연구하는 충직한 근대문학의 묘지기 역할에 집중되었다. 이러한 그의 작업이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은 1990년대이다. 90년대는 현실 사회주의권의 몰락 속에 거대담론이 위축되고, 근대 이성에 대한 회의가 짙게 피어난 시기였다. 헤겔과 루카치에 영향 받아 역사의 발전을 신봉했던 김윤식에게 그것은 자신의 근간을 뒤흔드는 충격이었다. 김윤식은 근대문학 연구자에서 일반 독자를 상대하는 현장비평가로 변신하여 자신의 문학적 세계관의 파산 여부를 현실 속에서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90년대는 문학평론가 김현이 사망하고 노령화된 대가급 비평가의 현장비평 활동이 다소 주춤거리던 때이기도 했다.

  김윤식은 작가론, 작품론, 신춘문예평, 월평 등의 정력적인 비평 활동을 통해 이 공백기를 메우면서 텍스트 비평의 권위를 확보하는 데에 많은 공헌을 한다. 소설 읽기에 치중한 그의 현장비평은 작가의 내면성과 문학사적 의미를 동시에 밝혀주는 데에 탁월한 성과를 보여준다. 90년대를 풍미했던 문학주의가 협소한 텍스트의 그물에 갇혀 허우적거리는 상황에서 김윤식은 오랜 문학적 경험과 연륜, 그리고 풍부한 독서체험에서 발원하는 문학적 자료들을 활용하여 비평의 지평을 확대한다. 대개 작가론이나 작품론이 대상 텍스트에만 머무르는 경우가 많은데, 김윤식의 소설비평은 독자가 예상하지 못한 다른 작가나 작품을 끌어와 이야기함으로써 논의를 확장시킨다. 이러한 것들은 그의 문학사적 감각이 현장비평과 만나 이룩한 빛나는 성과였다.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감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그의 문체도 매력적이다.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1936~) 올해 고희를 맞은 김윤식 교수는 109권에 이르는 저서를 펴낸 우리 시대의 상징적인 문학연구자이자 비평가다. 문학에서의 근대성 탐색, 작품의 내적 형식으로서의 문학사 연구, 작가들에 대한 풍부한 실증적 탐구와 내면적 대화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일궈냄으로써, 후학들의 공부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를 제공했다. ©

 김윤식의 비평은 묻고 대답하는 대화 형식이 많다. 이것은 그의 비평이 인간과 세계에 대한 탐구의 방식임을 말해준다. 그는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문제적 개인이고자 했던 것이다. 이때 김윤식이 시종일관 지키는 원칙은 ‘텍스트와 객관적 거리두기’이다. 근대문학을 연구하면서 습성화된 이 거리두기는 현장비평에 임해서도 어김없이 발현된다. 이것은 김윤식이 왜 시가 아닌 소설 비평에 헌신할 수밖에 없었는지 말해주는 단서가 된다. 거리두기는 대상 텍스트에 몰입함으로써 혹시 객관적 지점을 상실할지도, 자신의 이성이 무력화될지도 모른다는 존재의 불안에서 비롯한다. 헤겔은 객관적 거리를 확보한 상태에서 대타의식 속에 자기의식이 생성되고, “이러한 일을 무한히 계속한다면 비로소 자기는 타자(세계)를 자기것으로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헤겔주의자인 김윤식은 소설읽기를 통해 자신을 타자화 된 현실 세상에 내던지고, 이 과정에서 자신을 탐구하여 궁극에는 타자(세계)를 자기 것으로 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그의 현장비평은 치열한 현실보다 내면 세계에 주력한 문학주의 계열의 작품에 더 애정을 쏟는다. 이것은 그의 헤겔적 현실주의가 지닌 한계점을 암시한다. 객관적 거리두기의 오랜 습성이 현실 속으로 들어가는 김윤식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김윤식의 현장비평은 대상 텍스트에 밀착해 미학적 특성을 드러내기보다 통시적 차원에서 작품 내지 작가가 차지하는 문학사적 위치나 구성원리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다 보니 김윤식의 현장비평은 아무래도 신인작가보다 작품이 축적된 원로작가나 중견작가를 분석하는 데에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최인훈, 이청준, 서정인, 조정래, 윤후명, 오정희, 박완서 등이 그러한 예이다. 그렇지만 텍스트의 개별적 미학 특성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비평은 필연적으로 옥석에 대한 평가를 방기하게 한다. 그의 비평이 주례사비평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덕분에 김윤식은 작가와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한다.

  현장비평 활동에서 작가와의 우호적 관계는 때로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 현장비평은 일반 독자에게 이 작품이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지 도와주는 적극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와 충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윤식의 비평은 이러한 임무를 소홀히 한다. 그래서 그의 현장비평은 텍스트에 대한 해석과 감상은 있지만 평가가 부재한 절름발이 현장비평으로 전락한다. 이것은 문학사적 관점에서 시대불문의 절대적 평가를 하려고, 가급적 현장의 평가를 배제하려고 한 연구자의 태도에서 비롯한다. 대표적으로 김윤식은 최인훈의 󰡔화두󰡕를 분석하면서 작가의 입장에서 󰡔화두󰡕가 차지하고 있는 문학적 의미를 부각시킨다. 하지만 이 와중에서 소설보다 에세이로 추락하여 미학적 긴장감을 상실한 󰡔화두󰡕에 대한 가치평가를 생략해버린다. 김연수의 '굳빠이, 이상'을 분석하면서도 그가 주로 이야기했던 것은 '굳빠이, 이상'이 지닌 미학적 특성보다 천재 이상이 이 소설과 맺고 있는 다양한 관련 양상의 층위이다. 이 작품에 대한 가치평가는 역시 실종되어 있다.

  김윤식 현장비평의 아쉬운 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역사전기주의적 방법을 주로 활용하는 그의 비평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보다 저자가 바라보는 단일한 해석이 전면화된다. 한 마디로 김윤식의 목소리 이외에 다른 것들이 들어갈 여지가 별로 없다. 방대한 독서에서 뿜어져 나오는 다양한 인용들은 해석의 풍부함을 제공한다. 하지만 헤겔같은 서구 사상가의 이론이 텍스트 분석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않을 때, 평론을 난해하게 만들고 텍스트를 일정한 틀에 가둔다는 점을 때로 저자는 망각한다. 예를 들어 헤겔의 시선에서 바라본 최명희의 '혼불', 박상륭 문학이 그러하다. 한국문학의 주체성을 강조한 '한국문학사'를 김현과 공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현장비평에서 인용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 서구 텍스트이다. 루카치, 비트겐슈타인, 프라이, 막스 베버, 벤야민, 바흐친, 바타이유,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조이스, 체홉, 괴테 등이 다채롭게 그의 평론에 등장한다. 하지만 이에 비해 동양이나 한국적인 텍스트의 인용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김윤식은 누구보다 텍스트 읽기에 성실한 현장비평가였다. 하지만 이것이 김윤식 현장비평의 신화를 합리화하는 만병통치약일 수 없다. 현장비평은 텍스트에 대한 잠정적 가치평가, 당대 문학장에서 텍스트가 자리하는 문제적 의미, 그리고 텍스트의 올바른 지향점을 제시하는 비평작업이 필수적이다. 김윤식은 작품의 내적 구성원리를 밝혀 작가론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았지만 현장비평이 요구하는 치열한 문제의식과 현실성에 있어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가 논쟁다운 비평 논쟁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의 현장비평이 지닌 뚜렷한 한계를 말해준다. 김윤식이 하지 못한 비평 작업은 고스란히 후배 평론가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윤식의 현장비평으로 인해 한국의 평단이 풍성해질 수 있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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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2005-05-31 13:42:07
너무 저널하게 글을 쓰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