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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함께 읽고 소통하는 존재…‘호모 콘리디쿠스’
인간은 함께 읽고 소통하는 존재…‘호모 콘리디쿠스’
  • 김재호
  • 승인 2021.09.15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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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교육의 이론과 실천』(한국독서학회 지음 | 박이정 | 810쪽) 출간 이끈 서혁 이화여대 교수

“독서는 강력한 카타르시스, 공감, 치유의 힘을 준다.” 지난 3일 연구실에서 만난 서혁 이화여대 교수(국어교육과)는 독서의 효용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독서를 통해 어렵고 힘든 삶의 낭떠러지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라며 “독서의 힘은 지금까지 수십 년에 걸쳐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 결과 밝혀진 사실들”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서 교수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독서토론 활동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피하고, 자신의 미래 청사진을 새롭게 그려내는 모습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서혁 이화여대 교수는 3년 간 이 책의 집필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는 한국독서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사진=김재호

서 교수는 지난 3년간 37명의 독서 전문가들과 함께 『독서교육의 이론과 실천』을 출간했다. 그는 “책과 독서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대상이자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라며 “책을 읽는다는 건 독자인 나의 경험과 추억, 사유의 시간들을 복원하는 과정일 수도 있고, 새롭게 성찰하고 재구성하는 시간일 수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즉, “지금까지의 자신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 또는 사유의 세상을 경험하고 대화하는 성찰의 시간”이라는 뜻이다.   

아울러, 서 교수는 “독서나 교육의 힘은 서로의 눈동자를 마주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눈과 입과 손짓으로 주고받는 원초적 소통의 힘이 매우 강력하고 기본적”이라며 “인간은 혼자서 읽고 마치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 자아나 타인과의 소통과 관계를 열망하는 ‘함께 읽는 존재’인 ‘호모 콘리디쿠스(Homo Con-readicus)'라고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책과 텍스트, 독자가 장악하고 통제하는 능동성이 본질

3년 간 37명이 협업해 완성, 이론과 실제 사례를 집대성
독서, 활자화 된 텍스트에 맹목적으로 빠져드는 게 아니다

국내에 내로라하는 독서 전문가 37명이 3년 간 협업으로 책을 출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서 교수는 “많은 전문가 선생님들과 함께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집필기준, 전체적인 체계의 통일, 용어나 관점의 공유와 통일 등의 측면에서 어려움이 많았다”라며 “그 과정에서 그야말로 수십 번의 전화와 문자를 통해 연락하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기를 반복하며 드디어 결실을 이루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 한 분의 원고는 늦게 들어와 6개월이나 기다려야 했다. 

『독서교육의 이론과 실천』은 이론과 실제 등 다양한 부분을 다루고 있다. 또한 책의 구성이 교재로서 매우 적합해 보인다. 서 교수는 “이 책은 기초문해력, 독서치료, 진로독서, 장르별 독서지도, 독자의 발달 단계에 따르 독서지도, 학교 안과 밖의 독서지도 프로그램 등 매우 다양한 내용들을 이론과 함께 실제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라며 “국어교육과 관련되는 예비교사, 학교현장의 국어교사, 독서교육 전문가, 사서 교사는 물론 대학원생들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유익한 가장 최근의, 가장 전문적인 이론과 실제를 집대성한 전문 교재라 할 수 있다”라고 답했다. 서 교수는 한국독서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1995년에 창립된 한국독서학회는 『21세기 사회와 독서지도』(박이정, 2003)를 출간한 바 있다. 20여 년이 지나서 『독서교육의 이론과 실천』이 3부 24장으로 출간됐다.

책의 3부 상황별 지도는 독서 치료와 인성 발달, 진로 독서 등을 다룬다. 특히 치료와 인성은 메마른 현대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서 교수는 “청소년들이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창비, 2017)를 읽고 자신과 친구,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긍정적인 자아감을 갖게 되는 사례가 아주 많다”라고 말했다. 그는 “독서는 활자화 된 기호들에 맹목적으로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단서로 새롭게 개인적 또는 집단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사유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라며 “진정한 민주시민 교육의 지향점은 무엇인가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서는 집단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사유의 시간

그런데 국내 독서교육은 시험에 매몰돼 있는 경향이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높은 국어 점수를 받기 위해서만 독서 하는 것이다. 서 교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하나의 교육 제도이자 평가도구로서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학생들의 읽기 능력과 독서 경험들을 평가하는 객관적 도구로서 자리잡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 교수는 “수능시험이 제한적이고 부분적인 텍스트 읽기에 매몰되고, 서열을 매기기 위해 지엽적인 문제를 위한 문제의 출제를 지향하거나, 전문 분야의 세부적인 배경지식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학생들이 단지 얼마나 많은 텍스트를 읽고 이해했는가를 평가하고자 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독서나 읽기 능력과는 거리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학습자들의 발달 단계에서 이해력과 사고력, 적용력을 총체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길어지고 있는 가운데, 출판 시장도 위축돼 있고, 남녀노소 텍스트보단 동영상이 인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지난 장점은 무엇일까? 서 교수는 “이른바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존의 인쇄 텍스트에서 벗어나서 이른바 복합양식 텍스트의 주류라 불리는 디지털 텍스트가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잡고 있다”라며 “흔히 디지털 원주민 세대라 불리는 이른바 MZ세대에 속하는 청소년들은 궁금한 사항이 있을 때 네이버나 구글을 검색하는 대신에 유튜브를 검색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인쇄 텍스트와 동영상 텍스트의 가장 큰 차이는 ‘사유의 시간 차’라고 생각한다”라며 “인쇄 책은 독자들이 스스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독서의 시간과 공간, 방법을 선택하면서 여유를 가지고 충분히 사유할 수 있는 특성을 갖추고 있다”라고 답했다. 반면 동영상은 압축적이고 가시적이며 순식간에 장면의 이용을 연속해 나간다. 서 교수는 “이 과정에서 보는이(시청자)는 영상이 제공하는 방향에 따라 수동적으로 이끌려 가면서 거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라며 “물론 동영상을 보면서 스스로 중단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책의 가치는 사유의 시간 차이에 있는 셈이다. 전자책(e-book)도 책의 질감을 따라잡기 어렵다. 서 교수는 “전자책은 텍스트에 대한 독자의 장악력과 통제력이 제한적이다. 한 권의 책을 두 손으로 쥐고 넘기고 느끼는 인쇄 책과, 고정된 자세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피시 또는 컴퓨터를 통해서 제한된 화면의 장면 전환의 연속으로 읽어나가야 하는 전자책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인쇄 책의 특징과 질감을 재현할 수 있는 전자책의 기기와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지기 이전까지는 책의 가치가 상당 기간 존속된다는 게 서 교수의 믿음이다. 
 

동영상·전자책과 인쇄 책의 차이는 사유 위한 시간

코로나19로 인해 학회 활동이나 독서교육 연구나 학생들 교육에 어려운 점은 없을까? 서 교수는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우리 사회에 퍼져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2020학년도 입학한 학생들의 경우 약 2년간의 지속적인 코로나 환경에서 학습을 해 오면서 강의실의 대면 수업을 기대하는 학생들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는 것 같다”라며 “독서와 교육의 본질이 과거-현재-미래의 대화이고 그것을 함께 공유하는 과정인데,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직접 소통하는 게 불가능한 현실이 가장 아쉬운 지점이다”라고 말했다. 

요즘엔 교수들도 교육, 연구, 봉사로 인해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 교수사회에 추천할 만한 책은 무엇일까? 서 교수는 『읽는다는 것의 미래』(임완철 지음, 지식노마드, 2019)를 소개했다. 서 교수는 “이 책에서 인상적인 내용은 현재의 인쇄 책들은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와 함께 향후 ‘생각하는 책’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점”이라며 “한 권 한 권 인쇄되어 완결된 파편화된 책이 아니라, 거대한 네트워크를 통해서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 ‘거대한 하나’와 연결된 책의 시대가 이미 다가오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서 교수는 “이 책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은 책의 끝 부분에서 제시하고 있는 ‘생각하는 책의 새로운 이름, 파르마콘(pharmakon)’”이라며 “파르마콘은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서 글은 ‘망각의 치유’이며 ‘약’과 ‘독약’(또는 질병)의 이중성을 갖는 것이라 설명한다”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미래의 책과 관련하여 파르마콘의 관점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고민과 사유의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에 헌신하고 계시는 교수님들과 전문가 선생님들께 추천한다”라고 강조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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