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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기도가 될 때
그림이 기도가 될 때
  • 이지원
  • 승인 2021.09.02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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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요세파 지음 | 파람북 | 240쪽

수도원에서 띄우는 

빛과 영성의 그림 이야기

 

내면에 드리운 어둠의 장막을 열어젖히는 그림,

마침내 빛의 세계로 이끄는 언어의 매혹과 신비!

“그림 앞에 서면 눈이 환해집니다. 침침했던 눈에서 무엇인가 걷히면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그림은 제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고, 제 몸이 무거워 들어가지 못했던 신비의 세계를 열어줍니다. 생명, 자유, 용서, 사랑, 초월적인 것,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 종교적인 것들을 표현하는 그림들은 가만히 있는 저를 잡아당겨 세웁니다. 우선 화가의 삶이 그 안에 녹아 있고, 더 들어가면 화가 자신마저 넘어 저 먼 어떤 것, 인간의 눈에 희미한 어떤 것 혹은 실재가 우리 앞에 턱 놓이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어설픈 종교체험보다 훨씬 강렬하게 인간을 초월적 실재 앞에 놓아줍니다. 더욱이 형식적인 예배, 틀에 박힌 기복적 기도로는 가까이 가보지도 못할 세계를 열어줍니다.”

 

그림과 그림 너머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수도원에서 온 그림 편지

요세파 수녀는 봉쇄수도원에서 세상과 담을 쌓고 수행과 노동의 삶을 살아간다. 요세파 수녀가 수행하는 시토회는 인간 존재 안의 사막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은거하며 공동생활을 하는 성 베네딕도 규칙을 적용한 수도회로, 엄격한 규칙을 지키며 수행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일과 무관하게 지내는 것은 아니다. 봉쇄수도원을 정주생활을 원칙으로 하지만 수정만 STX 조선소 건립 반대를 위해 봉쇄를 풀고 수정리 주민들과 항의 데모에 나서기도 했다. 사회정의와 영성은 분리될 수 없는데, 수도회가 봉쇄를 풀고 거리에 나선 것은 모든 것을 다 잃은 할머니 안에서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이다. 

요세파 수녀는 또한 시인이기도 하다. 늘 하느님을 생각하고, 세상과 자신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여정을 매일 시로 써 내려간다.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요세파 수녀의 그림 묵상은 우리를 전혀 다른 차원에 놓인 그림의 세계로 초대한다. 그림 속에 깊게 스며든 작가의 영혼을 들여다보며,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더욱더 풍성하게 해준다.

 

순간과 영원, 세속을 넘어선 신비의 세계로의 초대

요세파 수녀에게 그림은 신비의 세계를 열어주는 매개다. 어떤 그림은 눈을 밝게 해주며 침침했던 눈에서 무엇인가 걷어내며 신비의 세계로 초대해준다. 그렇게 말을 걸어오는 그림을 언어로 표현하면서, 글과 형상이 이미지로 압축되는 어느 지점, 그 공동의 땅에서 도달한다. 

지나치게 아름다움만 강조되는 그림에서는 그러한 신비의 세계를 발견하지 못한다. 예쁘고 곱고 고상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만을 계속 찾다 보면 구부러지고 못나고 일그러진 것은 자꾸 배제하게 되며, 장애인, 사회 저변의 불우한 이들, 난민을 배제하면서 외면하게 된다. 요세파 수녀에게 자신을 잡아당겨 세우는 그림은 생명, 자유, 용서, 사랑, 초월적인 것,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 종교적인 것들을 표현하는 그림들이다. 우선 화가의 삶이 그 안에 녹아 있고, 더 들어가면 화가 자신마저 넘어 저 먼 어떤 것, 인간의 눈에 희미한 어떤 것 혹은 실재가 우리 앞에 턱 놓이는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어설픈 종교체험보다 훨씬 강렬하게 인간을 초월적 실재 앞에 놓아준다. 형식적인 예배, 틀에 박힌 기복적 기도로는 가까이 가보지도 못할 세계를 열어준다.

 

요세파 수녀의 그림 이야기는 깊고 묵직하며 우리 안의 잠들었던 감각세포를 깨워준다. 단순한 작품 감상이나 고상한 평을 넘어 맑고 평온한 그림의 세계에 빨려들어가게 해준다. 그렇게 하나의 그림을 통해 삶을 더욱더 깊게 들여다보면서, 살아가야 할 이유와 살아가는 힘을 얻게 해주는 치유의 힘을 선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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