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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여성들은 왜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나
이주여성들은 왜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나
  • 김수아
  • 승인 2021.09.01 0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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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틀어보기_『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지음 | 오월의봄 | 172쪽

물리적·상징적 폭력을 경험하고 귀환하는 이주여성
출산 강요받고 아이 없다면 체류 자격 박탈 당해

이 책은 본문 168쪽 정도의 두껍지 않은 책이다. 남아 있는 더 많은 이야기의 무게를 생각하면 너무 얇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비자발적 귀환 이주여성들은 대체로 한국 사회에서 물리적, 상징적 폭력을 경험한 후 귀환한 경우로, 한두 문장으로 요약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 복합적인 권력 관계가 작동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제도 그 자체에 있다. 결혼이주여성들은 우리 사회에 와서 혼인 상태를 유지하고 자녀를 낳는 것을 사실상 강요받는다. 비자발적 귀환의 가장 큰 사유인 이혼을 살펴보면 이혼을 하게 될 경우, 아이가 없다면 상대방의 귀책 사유를 증명하지 못하는 한 체류 자격을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가정 폭력을 경험하면서 생존을 위한 선택으로 이혼을 결심하지만, 한국인 남편의 가정 폭력을 증명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아이가 있다면 혼자 양육하는 어려움을 감당하기 어려워 귀환을 ‘선택’하게 된다. 

이 책에는 귀환 이주여성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제도적 한계에 온몸으로 부딪히고 있는 이 모든 과정에서 활동가들이 필연적으로 만나는 소진됨과 당사자들이 경험하는 어려움이 기록되어 있다. 저자들은 귀환 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의 문제야말로 제도적 사각지대라고 단언하며, 이주나 귀환이 모두 진정한 의미의 선택이 될 수 있으려면 필요한 한국 내의 제도적 지원, 초국가적 지원과 연대가 필요한 영역 등을 세심하게 짚어나간다. 

제도적 사각지대 놓인 귀환 이주여성

귀환 이주여성들의 갖가지 사연 속에서 우리 사회가 오로지 이주 여성들을 아이를 낳는 도구로만 대해 왔다는 것이 드러난다. 1990년대까지 미디어 모니터링 도구에는 여성을 출산 도구로만 묘사하는지에 대한 평가 항목이 있었다가, 한국 사회의 성평등 수준이 향상되면서 해당 지표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하여 평가 항목이 삭제됐다. 확실히 국내 미디어 재현에서 여성을 출산 도구로만 표현하는 것은 거의 사라졌다. 성평등 수준이 향상된 것도 일정 정도는 맞다. 다만 이것은, 돌봄이 제3세계 여성에게 이전되어 온 것, ‘지구화의 하인’으로 제3세계 여성을 착취하는 구조 속에 감추어져 우리가 어떤 여성들은 여전히 그렇게 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미디어에서는 누락된 결과이기도 하다. 

그 어떤 여성 의제(議題)도, 계급과 인종, 성적 지향과 성적 정체성, 장애 등과 함께 논의되지 않는다면 놓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의 비자발적 귀환 여성들의 사례가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주 송출국과 유입국의 경제가 여성의 이주에 기대어 지탱되는 전지구화 과정 속에서,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위협과 불안에 직면하는 문제(39쪽)”가 바로 이 책이 보여주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다. 

비록 사례수가 얼마 없긴 하지만 긍정적인 귀환 사례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가족 모두가 함께 다시 이주여성의 모국으로 돌아간 소마 씨의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여전히 국적법으로 인한 한계가 남아 있지만, 안정적 귀환이 이루어진 데에는 이주여성의 모국과 문화를 존중해온 것과, “남편을 따라 사는 여성”이라는 가부장제적 인식 구조를 벗어난 선택이 가능했던 가족 내 배경이 영향을 미쳤다. 더 많은 사례가 생기려면 가족 개별적 특성에 의한 것이 아닌 국가적 지원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 역시 강조된다. 안정적 양육이 불가능하고 어린이의 정체성과 안정감이 훼손되는 귀환 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의 문제는 제도적 조치들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귀환 이주여성들은 사연의 당사자로 이 책에 자리하고 있지만, 활동가들의 기록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좀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을 것이다. 이주 여성이 귀환하게 되었을 때, 여성과 자녀의 그 이후의 삶을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책임(164쪽)을 이야기하는 이 책의 다음 발걸음이 필요한 것은 이 이야기가 계속 들려져야 한다는 것과, 그래서 우리가 어느 정도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를 계속 질문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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