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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법정에서 따뜻한 인간성을 고뇌하다
차가운 법정에서 따뜻한 인간성을 고뇌하다
  • 유무수
  • 승인 2021.09.03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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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잊을 수 없는 증인』 윤재윤 지음 | 나무생각 | 276쪽

욕심은 70%만 구하고 30%는 비울 때
자유와 기쁨, 창조와 예술, 영성이 나온다

법정 밖의 일반인은 흔히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소문을 듣곤 한다. 수임료가 고액인 로펌의 전관예우 변호사를 활용하거나 합의금을 여유롭게 제공할 수 있다면 집행유예 또는 무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징역을 살게 되었고 가장이 감옥에 들어가면서 남은 가족의 생계는 더욱 어려워지고 결국 가정이 파탄 나는 경우가 있다. 법정이 구현하고자 하는 정의는 돈을 주무르는 부자와 법을 주무르는 권력자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보인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30여 년의 법관 생활에서 윤재윤 저자가 품었던 질문이다. 다양한 유형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재판의 현장 속에서 저자는 세 가지로 답을 정리했다. 첫째, 인간에게는 누구나 선한 면과 악한 면을 동시에 지닌 이중성이 있다. 둘째, 인간은 그 양면성 사이에서 매우 약한 존재다. 셋째, 인간은 신성을 좇으며 자기향상의 방향으로 노력할 수 있으며, 그런 노력이 없으면 삶은 무의미·쾌락·자기폐쇄 방향으로 흘러간다.  

저자 윤재윤은 “제도적 불완전함과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법적 사실과 진실이 차이가 나는 것”은 피할 수 없으며, 이는 “법과 재판 제도의 한계”라고 말한다. 미국에서 O.J. 심슨의 재판도 억울한 피고인을 보호하기 위한 증거법 규정의 허점을 드러냈다. 범행현장에서 그가 도주하는 장면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될 정도였으나 결정적인 증거들이 증거 법칙상 배제되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승소한 변호사는 짭짤한 수임료를 챙겼지만 피해자의 유족은 깊은 한이 맺혔다. 저자가 맡은 형사재판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고 사망자의 아버지는 분노와 절망에 사무쳤다. 판사는 법 규정에 의거하여 내키지 않는 판결을 할 수밖에 없었고 마음이 무거웠다. 

온갖 사기 범죄로 10여 회가 넘는 범죄 경력자가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핑계를 대며 거짓말로 일관했기에 검사는 짜증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갑자기 재판이 중단되었다. 사기꾼이 구치소 수용실에서 용변을 보다가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저자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유유일진실(唯有一眞實: 오직 진실만이 나의 유일한 것)’이라는 글에서 깊은 공감을 느끼는 배경이 되었다. 

중산층 가정이며 명문대에 다니던 대학생이 부모를 살해한 사건은 인격을 존중하는 사랑의 중요성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피고에게 약간의 돈만 주면 합의될 사건에서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던 빌딩 소유주가 있었다. 그는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재판은 종결되었다. 빌딩 소유주가 가끔이라도 미리 죽음을 생각하면서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성찰했다면 약간의 배려를 베풀 수 있었을 것이다. 모두 신성을 좇는 방향과 거리가 멀었다. 신성을 좇는다면 거짓과 야박한 이기주의 또는 폭력으로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고 법정까지 가게 되는 갈등은 대폭 줄어든다. 저자는 욕심은 70%만 구하고, 30%는 비우기를 선택하자고 제안한다. 여유의 여백에 싱그러운 자유와 기쁨이 깃든다. 30% 비움의 여유에서 창조와 예술이 나올 수 있다. 

차가운 정의를 넘어 따뜻한 의, 인간의 존엄성, 외적 성공이 아니라 속사람의 성장, 그리고 영성을 중시하는 법관의 고뇌와 성찰을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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