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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교육부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교육부
  • 이덕환
  • 승인 2021.08.30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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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 명예교수 /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논설위원

도무지 코로나19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기대하던 ‘터널의 끝’과 ‘짧고 굵은 방역’은 모든 국민들에게 고통스러운 희망 고문이 되고 말았다. 일부에서 기대하는 9월 말의 ‘위드 코로나’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싶다. 세계 최초로 개발한 첨단 진단 키트로 이룩했던 K-방역을 자신들의 성과로 자랑하던 정부가 역시 첨단 기술로 개발한 백신을 외면해버렸던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코로나19는 작년 1월 20일 인천공항을 통해 처음 유입되었다. 중국으로부터의 바이러스 유입을 적극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어설픈 정치 논리에 밀려나면서 중국에 이은 세계 최악의 감염국으로 전락했던 아픈 기억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다행히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진단 키트와 IT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통계적 성과는 대단하다. 확진자(23만 명, 82위)·발생률(인구 10만 명 당 4천600명, 121위)·사망자(2천215명, 97위)·치명률(9.37%, 117위)·완치율(87.3%, 99위)이 모두 그렇다. 다만 2차 접종 기준의 백신 접종률 22.5%는 세계 평균 24.4%에도 미치지 못하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물론 의료진의 눈물 나는 희생도 있었고, 개인의 자유와 생업을 포기한 자영업자를 포함한 국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도 있었다. 일관성을 잃어버린 사회적 거리두기와 연이은 민생 정책 실패로 국민을 괴롭힌 정치는 K-방역의 주역이 아니라 고약한 걸림돌이었다. 정부가 이제라도 방역을 이념이 아니라 과학에 맡겨야 한다.

절망의 늪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희망과 적극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코로나19가 인류의 종말이라는 패배주의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인류의 역사는 어차피 혼란스러운 문명사적 대전환의 연속이었다.

코로나 이후의 뉴노멀에 대한 과도한 공포와 우려도 경계해야 한다. 앞으로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이 주기적으로 더 자주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은 무의미하다. 인류 역사는 이미 페스트·천연두·황열·독감·뇌염·콜레라와 같은 감염병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코로나19로 가속화될 비대면 기술이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가능성도 무작정 겁낼 이유가 없다.

당장 반값 등록금, 학령인구 절벽, 코로나 블루에 주눅이 들어있는 대학에 대형 폭탄을 투하해버린 교육부의 문제가 휠씬 더 심각하다.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인하대·성신여대·군산대를 포함한 일반대 25개교와 전문대 27개교에 ‘부실대학’의 낙인을 찍어버렸다.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교육부의 평가를 믿을 사람은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제멋대로 늘어나는 고무줄과 같은 ‘정성평가’로 모든 대학을 획일적으로 재단해버리는 교육부의 횡포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

정부가 무작정 밀어붙이고 있는 국가교육위원회도 걱정이다. 초중등 교육을 국가교육위원회와 지자체에 넘겨주고 나면 교육부가 대학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새로 생기는 국가교육위원회도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대학입시에 매달릴 것이다. 교육부가 중고등학교의 교사 임용권까지 틀어쥐겠다는 사학법 개정도 일사천리로 밀어붙이고 있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이념과 관료주의에 빠져버린 교육부가 코로나19보다 더 두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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