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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주목한다]『김교신전집』(노평구 엮음, 부·키刊)
[이책을 주목한다]『김교신전집』(노평구 엮음, 부·키刊)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1.05.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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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30 15:31:22

가난한 예수의 덕목을 모르는 척 외면하며 ‘어마어마한 부의 축적’과 ‘목회 권력 세습’이라는 ‘비기독교적 행태’를 보이는 몇몇 ‘재벌 교회’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지만, 한국의 초기 기독교는 소박한 聖스러움과 겸손한 믿음이라는 종교의 본질을 간직하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기독교는 민심을 달래고 어루만져주는 ‘영혼의 약’일뿐 아니라 민족주의와 항일, 사회사상과 민중교육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류영모, 함석헌이 그러했고, 뒤로 문익환이 그러했듯이 그 당시 기독교는 제 한 몸의 평안만 소중히 여기고 천국행 티켓을 끊기 위해 아둥바둥하며 웬만한 불의에는 눈 하나 깜짝 않는, 그런 이기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신앙의 잣대에서 단 1미리만 벗어나도 이단과 사탄이라는 독단의 칼날을 서슴지 않고 휘두르는 배타적 모습 또한 없었다.

그 행복했던, 마음이 가난한 자들과 천국의 거리가 비교적 가까웠던 시절, 한국기독교에는 마른네해의 짧은 삶을 오롯이 신앙과 사상의 지고한 실천으로 살다간 김교신이 있었다. 한국적 기독교의 두 스승인 함석헌과 김교신이 태어난 1901년은 기독교 사상사에 특별한 해로 기억될 만 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올해, 함석헌의 사상을 재조명하면서 정부에서는 ‘이 달의 문화인물’로 지정하고 심지어 모 방송에서는 ‘성공시대’(!)라는 프로그램에까지 등장시키는 뒤늦은 호들갑에 비해 김교신은 아직까지 세상에 그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하여, 이번에 새로 발간된 ‘김교신 전집’의 의미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김교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무교회주의’는 교회와 성직자로 대표되는 기성 기독교의 조직과 제도를 비판·거부하고 원시 기독교의 순수한 복음신앙과 성서 공부를 강조하는 기독교의 분파로, 김교신은 일본 유학 시절 무교회주의의 주창자 우치무라 간조를 만나면서 신앙을 접했다. 28년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귀국해 교사로 재직하는 한편, ‘성서조선’을 발간해 무교회주의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42년 3월호의 권두호가 반일성향이라는 이유로 구속·수감되고, 잡지가 폐간되기까지 ‘성서조선’은 한국적 기독교를 뿌리내리는 전도지 역할을 충실히 했다.

김교신이 실천하는 신앙인이었다는 사실은, 항상 민중과 함께 한 그의 삶이 말해주고 있다. 감옥에서 나온 뒤인 43년, 흥남질소비료공장에 취업해 노동자들의 복지 증진과 깨우침에 힘쓰다가 45년 광복을 넉 달 앞두고 세상을 뜨기까지, 그의 삶은 엄격한 실천과 검약한 생활로 일관된다.

이미 지난 1975년, 7권짜리 김교신 전집이 출간된 적이 있지만 곧 절판되다시피 했고, 원문의 한자어를 한글화하는 과정에서 오역이 많고 필수적인 자료가 많이 빠져 있던 것을 보완한 이번 복원본은 총 8권으로 기획되었다. 1차로 1권 ‘인생론’, 2권‘신앙론’과 제자와 지인들이 쓴 별권인 ‘김교신을 말한다’까지 발간됐고, ‘성서개요’, ‘일기1’, ‘일기2’, ‘일기3’ 등 나머지는 올해 중 완간될 예정이다.

김교신을 일컬어 ‘그리스도를 만난 한국의 선비’라고들 한다. ‘성서’와 ‘조선’의 결합처럼 김교신에게는 토종신앙에 대한 믿음의 확고했고, 그것은 곧 조선에 맞고 조선 민중에 맞는 기독교를 뿌리내리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함석헌은 김교신을 기리는 글에서 “그는 일생을 이 말 못된 나라의 생명을 참으로 살려 보자 힘쓰고 애쓴 사람의 하나다. 김교신에게서 조선을 빼고는 의미가 없다.”라고 했다. 김교신에게 있어 신앙과 민족은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한국교회의 세속화가 심각한 시점에서 김교신 전집의 발간은 순수하고 철저한 신앙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는 것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한국 교회가 스스로를 짓누르는 거대한 대리석 성전의 무게를 벗을 수 있도록 기독교인들이여, 제발‘김교신 전집’을 읽어볼 일이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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