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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동향> 번역과 근대성, 번역의 정치학
<학술동향> 번역과 근대성, 번역의 정치학
  • 김재환 기자
  • 승인 2000.11.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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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으로서의 ‘근대’, 저항의 공간으로서의 ‘텍스트’

 

일본은 70여년 남짓한 메이지 시대를 지나면서 봉건국가에서 거의 완전한 근대국가와 탈바꿈하는데 성공했다. 1853년 페리 제독에 의한 개항이 근대사회의 진입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지만, 서구로 대변되는 ‘근대’에 대한 일본 사회내부의 지향이 없었더라면 그들의 근대는 훨씬 더 늦춰졌을 것이다. 일본의 근대화를 추동시킨 여러 계기중의 하나는 메이지 시대 폭발했던 ‘번역바람’이 꼽힌다. 메이지 유신 전후의 약 3, 40여년 동안 일본은 과학기술, 법률, 정치제도, 문학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의 문헌을 번역했다. ‘번역의 사상’을 집필한 가토 슈이치 리스메이칸대 교수(국제관계학)는 “메이지의 사회와 문화는 기적적 번역작업을 기초로 성립했다”고 분석한다.

한국의 근대, 이중의 번역과정
일본의 근대가 ‘번역’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면, 우리의 근대는 일본의 근대를 매개로 서구를 중역(重譯)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식민지의 경험을 통해 근대화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의 입장을 아무런 전제 없이 수용한다면, 우리에게 근대문화는 바로 ‘번역된 문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중의 번역과정’으로서의 한국의 근대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번역은 단순히 한언어를 다른 언어로 ‘자리바꾸는’(translation) 차원을 넘어선다.
지난달 28일 영미문학연구회 주최로 열린 ‘번역,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심포지엄에서 기조발제를 맡은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영어영문학)는 “우리와 같은 제3세계적 입지에서 번역이 차지하는 담론형성상의 위력은 거의 절대적”이라며, “우리의 경우 근대의 형성은 서구세력으로부터의 식민화와 맺어져 있으며, 식민지배와 탈식민화의 과정에서 번역이라는 계기는 근대적인 문화의 향방을 결정하는 데 본질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번역이 ‘제국’의 문화를 그대로 식민지에 ‘이식’하는 결과를 낳는다 하더라도, 식민지에게 번역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윤 교수는 “제국편에서는 식민화의 필수도구이면서 한편으로 근대화의 요구에 처한 피식민 혹은 주변국에게도 근대성의 확보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요청이다”라고 지적했다. 비서구적 근대화의 길을 추구하지 않는 한 제3세계의 서구문화 번역은 불가피하다.

번역의 정치학 : 일본의 국가주의
메이지 시대 일본의 ‘번역바람’은 아편전쟁이 가져다 준 충격으로 설명된다. 최근 출간된 일본의 대표적인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와 가토 슈이치와의 대담을 엮은 ‘번역과 일본의 근대’(이산 刊)에서 가토 교수는 “일본은 아편전쟁의 결과에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오랫동안 존경해왔던 성인의 나라가 오랑캐한테 그토록 무참히 당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건이었지요. ‘이거 큰일이군’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보’라는 문제가 다급해집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갑작스레 닥쳐온, 미지의 존재로서의 서구가 준 충격 앞에 일본은 ‘서구에 대한 정보’를 다급하게 요청하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洋夷論에서 번역으로의 급격한 선회, 곧 “졌다고 생각하면, 바로 유학가는” 일본인의 극적 변신도 한 몫 한다.
일본의 번역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은, 자신의 문법과 다른 언어체계를 일본어의 체계로 변환하는 과정에 스며있는 정치적 맥락이다. 가령, 영어의 ‘right’는 ‘개인의 인권’을 의미하지만, 일본어에는 단수 복수의 구별이 없기 때문에 집합적 의미인 ‘民權’으로 번역됐다고 한다. 불어의 ‘droit civil’의 경우에도 원래는 재산권등 민법상의 ‘私權’을 말하지만, 일본에서는 ‘민권’으로 번역했다는 것이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이러한 일본어 번역이 개인의 인권을 정착시키지 못하고 ‘전체주의’로 연결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번역상의 문제는 주권자(sovereign)를 국체(國體)로 번역하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국체는 천황을 의미하고 주권자=천황의 관계가 성립함으로써, 원래의 정치적 의미는 완전히 탈각돼 버린다는 것이다. 메이지 시대 번역과정의 배면에는 일본 특유의 ‘국가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번역과정에서 원래의 의미가 ‘굴절’ 혹은 ‘왜곡’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원서’에 대한 신화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기도 하며, 번역 텍스트내에서 제국의 문화에 대한 식민지의 저항을 구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제국의 언어가 투명하게 번역되는 것이 아니라, 두 언어간의 교섭과 이질성을 드러냄으로써 ‘탈식민화의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윤지관 교수는 지구화 시대의 번역은, “번역활동 그 자체가 안고 있는 저항의 공간, 즉 언어간의 교섭 혹은 싸움, 민족문화의 위기와 보존과 저항, 민족어의 적응력과 존속 등 지구화에 맞서는 민족국가의 응전력이 집결될 수 있는 공간”이라 규정한다. 제국의 문화로 일원화하려는 지구화 시대에 차이와 이질성을 전면에 내세워 텍스트를 교란시키는 문화적 저항으로서 번역과정과 번역텍스트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구화시대, 문화적 저항의 거점
이같은 ‘번역의 정치학’은 어쩌면 우리에게 사치스런 주문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번역풍토는 오역과 졸역, 시장에서의 단기적인 성공에만 집착하는 천박한 행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번역은 서구에 대한 충격에서 비롯해 번역과정을 통해 근대국가를 수립하는 과정으로 나아갔지만, 우리는 애초에 번역에 대한 그런 자의식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으로부터 수입돼 오늘날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일본식 학문용어는 이런 저간의 사정을 잘 보여준다. 게다가, ‘번역의 정확성과 충실성’이라는 ‘번역의 근대적 기율’조차도 지켜지지 않는 마당에 ‘번역의 정치학’이란 애시당초 허황한 노릇일 것이다.

<김재환 기자 weibli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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