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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 묻혀 있던 마한, 유적·유물로 그 실체가 드러나다
역사 속에 묻혀 있던 마한, 유적·유물로 그 실체가 드러나다
  • 김재호
  • 승인 2021.08.1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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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우리가 몰랐던 마한』 임영진 지음 | 홀리데이북스 | 200쪽

역사문화권정비법에 비로소 반영된 마한
삼국시대가 아닌 오국시대로 바라볼 수 있다

한 평생 고고학을 가르치고 연구해온 임영진 저자가 <광주일보>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책을 펴냈다. 그는 한국고대고고학을 전공하고, 전남대 인류학과 교수로 정년퇴임했다. 마한은 “중앙집권적 통일국가들과 달리 6세기 초까지 소국 중심의 사회 질서를 견지”했다. 마한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도 등장한다. 마한은 진한, 변한과 함께 삼한을 이뤘다. 마한은 고대 사서에도 등장하는 역사적 실체다. 

중국의 삼국 시대에 위(魏) 나라의 역사서 『위략』을 살펴보면 마한의 기원과 지역을 알 수 있다. 기원전 3세기 초 연나라의 침략을 받은 고조선. 고조선은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일부 백성들은 배를 타고 남하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임영진 저자는 황해를 타고 내려오다 태안반도에 막혀 아산만 지역에 정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기원전 3세기 초와 아산만 지역이 마한의 발단이다. 

사료에 따르면, 마한은 경기, 충청, 전라 지역에 54개 소국으로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권력 다툼으로 마한은 마지막에 15국으로 줄어든다. 전북 고창과 전남 일대를 중심으로 남았던 마한 15국은 고분이나 유물 등으로 현재의 우리에게 전해진다. 기자는 어렸을 적 서울시 석촌동 부근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이곳의 석촌동고분군은 서남한의 마한 세력이 다른 세력들과 함께 점차적으로 백제를 이루는 완충지였다고 한다. 돌무지무덤인 적석총과 육조 청자 등은 그러한 흔적이다. 

임영진 저자는 “배제는 서울 강남지역에서 고대국가로 출범한 이후 인근지역 마한 소국부터 통합해 나갔는데 가장 먼 곳에 위치한 광주·전남지역 마한 소국들이 통합됨으로써 마한은 우리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마한은 왜 중요한가? 첫째 마한에 대한 역사문화권 설정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백제, 신라, 가야는 역사문화권으로 구분돼 국토개발계획에 반영됐다. 고구려문화권 역시 2019년 특별법으로 발의된 바 있다. 하지만 700여 개의 유적이 확인된 광주·전남의 마한은 ‘영산강고대문화권’이나 ‘다도해문화권’으로 구별된다. 둘째 우리나라 고대국가를 여전히 ‘삼국시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야와 마한이 포함되면 ‘오국시대’로도 역사를 인식할 수 있다고 임영진 저자는 밝혔다. 이 두 가지는 저자가 설명했다. 이에 더해 기자는 지역감정의 차원에서도 마한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마한이라는 역사적 실체를 밝혀냄으로써 지역차별의 근원이 되는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다행히 지난 6월 10일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역사문화권정비법)」이 시행되면서 마한역사문화권이 포함됐다. 제2조 정의의 마에 따르면, 마한역사문화권은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전남 일대 마한 시대의 유적·유물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이다. 하지만 임영진 저자는 “전북 고창지역과 전남 남해안 지역은 영산강유역과 함께 마지막 마한 사회를 이루고 있었으므로 마한역사문화권에 명시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마한역사문화권의 과제로서 △광주·전남지역 마지막 마한 사회에 대한 학술적 연구 지속 △광주·전남지역 마지막 마한 소국들의 병합시기에 대한 4세기 중엽설의 역사교과서 반영 △정책 개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등이 제시됐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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