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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멘티의 유쾌한 반란 
흙수저 멘티의 유쾌한 반란 
  • 한준기
  • 승인 2021.08.18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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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_ 팬데믹시대에 N포 세대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생각해보다

 

한준기 솔브릿지 국제경영대학 교수

아마 오래전부터 우리 청년들에게는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 때 ‘헬조선’이라는 말이 광풍처럼 유행어가 되었다가 이어 ‘3포세대’라는 신조어가 출현했다. 그런데 하도 포기해야 할 것들이 계속 생기다 보니 이제는 아예 ‘N포 세대’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바이러스의 팬데믹은 그렇게 휘청거리는 ‘그로키’ 상태의 청년들을 쓰러뜨리는 무자비한 결정타 한방이 되어버렸다. 이런 우울한 뉴스가 가슴 답답함을 더해줄 때, 일찌감치 ‘테스’형님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한, 한 흙 수저 청년의 스토리는 필자에게는 마치 뜨거운 여름의 한 잔의 시원한 사이다 같은 청량함을 선물해 주고 있다.  

팬데믹시대, 청년의 희망은 무너지는가?

영철은 필자의 애제자 가운데 한 명이다. 7년 전 대학생을 위한 정부의 한 멘토링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멘토와 멘티의 관계로 만났다. 그는 1년간의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은 질문과 메모를 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멘티였다. 멘토링이 끝난 후에도 이따금씩 안부를 전해왔고 무엇보다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조언을 계속 구하곤 했다. 학창시절 공부를 그렇게 잘했던 친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삼수를 한 후에 대학진학을 포기하자, 라는 결심까지 했던 과거도 있다. 또래 청년들이 좋은 ‘스펙’쌓고 다양한 취업관련 프로그램을 열심히 수강할 때, 오히려 아프리카 오지를 비롯해 여기저기를 배낭 메고 여행 다니는 배가본드 같은 삶은 살았다.

영철은 지방에서 상경한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소시민이다. 지극히 평범히 보였고 특출 난 구석은 그리 보이지 않았다. 다만, 다른 것은 모르겠으나 다소 방랑자 같은 삶을 거치는 과정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identity)만은 분명히 찾아낸 것 같다. 멘토링을 마친 후에는 자신의 진로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쩌면 더 확고해지지 않았을까? 국내 대기업만을 최고의 선택으로 생각하는 절대다수의 동 세대의 청년과 달리, 그는 졸업 후 불확실한 해외로 과감히 눈을 돌렸다. 그것도 다수의 젊은이들에게는 그다지 인기 없는 국가로. 거기에서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해외인턴십의 기회에 일단 도전했다. 외적으로 화려한 스펙으로 무장한 수도권출신의 취업준비생들과 싸워야 하는 ‘레드오션’을 피한 것이다. 여행하면서, 방황하면서 터득한 적응력과 생존본능은 분명히 그에게 큰 자산이 되었을 것이다. 

‘더블 인 세븐(Double in seven)’

인턴십을 마친 후에 그는 정규직원으로 당당히 선발되었다. 자신만의 커리어를 만들기 위한 디딤돌을 놓은 것이다. 특유의 적극성과 성실함으로 역량을 차근차근 쌓아 나갔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도전. 이번에는 공기업이 아닌 굴지의 글로벌기업으로의 이직에 성공했다. 보통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들어가게 되면 생기는 매너리즘 같은 것은 그의 인생메뉴에는 없는 모양이다. 낯 선 외국에서의 향수병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열정적으로 일하면서 바로 얼마전에는 모두가 선망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인 S그룹의 한 해외 지사로 이직했다. 동일한 기업의 두 개의 지사에서 동시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 행복한 경험을 한 후, 이 불경기에 40%의 연봉인상과 함께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의 길에 나서게 되었다.   

연봉이 샐러리맨의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없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커리어를 말할 때 우리는 몸값을 빼놓을 수는 없다. 금번의 스카우트로 인해 영철은 낯선 땅에서 남들은 두려워했던 불확실의 여정을 시작한지 7년이 되는 해에 몸값이 2배 이상 오르는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평범한 샐러리맨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더블 인 세븐(double in seven)’을 이루어 낸 것이다. 이제 그의 나의 삼십 대 초반이다. 이 청년이 힘들어하는 이 시대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나는 나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발견했고 거기에 맞는 길을 가고 있기에 이 친구는 “저는 내일에 대해 그렇게 두려움이 없습니다.”라고 담담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명품’이 ‘짝퉁’되는 서글픈 세상의 한 복판에서 

팬데믹은 맷집 약한 청년들에게 먼저 직격탄을 날리고 있지만 모두가 이 재앙 앞에서는 우울한 것은 마찬가지다. 비공식적으로 ‘청년백수 400만 명 시대’에 우리는 이미 진입했고, 고용 없는 저성장에 뚜렷한 출구도 보이지 않는데, 이 바이러스는 고용시장의 판도까지도 급속히 엎어버리고 있다. 대다수의 대기업들은 공채제도를 폐지하고 있다. 기업이 이제 웬만하면 신입을 채용하지 않고 경력사원을 선호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근속기간만 쌓여 있다고 자동적으로 장밋빛 미래가 기다리는 게 결코 아니다. 4차산업 혁명에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다 하는 이 지각변동에서는 자신의 확실한 ‘원-투 펀치’가 없다면 ‘낙마’의 위험은 훨씬 커질 것이다. 개인별 커리어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 심화되고 있다. 기업 간에는 바야흐로 제 2의 인재전쟁의 서막이 열렸다.   

영철의 짧은 이야기에서 우리는 적잖은 시사점을 찾아 낼 수가 있다. 콘텐츠, 네트워킹, 협상과 스토리텔링이라는 키워드이다. 더 늦기 전에 자신의 칼라를 찾고 몸에 가장 잘 맞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영철은 절대다수의 청년들과 달리 자신을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쏟았다. 온, 오프라인에서 만든 친구와 지인들이 그를 돕기 시작했다. 연봉협상의 과정에서도 그는 혼자 고민하지 않고 또 필자를 괴롭혔고 여기저기를 뒤져가며 공부했고, 최적의 스토리를 만들어 상대편 테이블을 설득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과정 속에서 그는 필자의 지인 중 한명인 실력 있는 글로벌 커리어 코치이자 협상전문가와 인연을 맺으면서 이후의 계속되는 도전을 도울 수 있는 새로운 멘토 한 명을 더 얻는 행운을 누렸다. 

이 총체적 위기 속에서 N포세대 청년을 위해 정부나 기업이 해야 할 몫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 변화를 위해서는 이제는 청년 및 그들의 직접적 이해관계당사자들이 해주어야 할 역할도 있다. 이들의 전략과 행동의 전환이 없다면 팬데믹의 재앙이 끝나더라도 어쩌면 우울감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영철과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결코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잘 하는 것, 좋아하는 것,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찾은 것 그리고 부모와 교육자와 기성세대가 이를 응원해주는 것은 꼭 필요하다. 주변의 기성세대가 대기업지원과 공시족이 대세인 분위기로 이들을 세뇌시키면 해법은 요원할 것이다. 가장 ‘나’다운 길을 갈 때 단순해질 수가 있다. 단순해지면 어리석지 않게 되고 흔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어느 것 하나 만만찮지만, 청년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외국기업이, ‘히든 챔피언’이, 스타트업이, 해외취업이, 그리고 창업이 훨씬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태생이 하나밖에 없는 명품인데 굳이 애쓰며 다수의 ‘짝퉁’ 같은 인생을 선택할 필요가 있을까?

한준기
솔브릿지 국제경영대학 교수

한국외대에서 경영학으로 박사를 했다. 개인의 자기계발 및 변화관리, 커리어 전략 코칭 분야의 전문가다. 솔브릿지 국제경영대학 경력개발센터장과 에임즈 인터내셔널코리아 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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