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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직 단임제·순환제, 무엇이 문제인가
보직 단임제·순환제, 무엇이 문제인가
  • 김봉억 기자
  • 승인 2005.04.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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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功行賞’식 임명이 문제…권한 주고 책임물어야

대는 장단기 발전계획을 세우면서 행정시스템 개선사항 가운데 하나로 ‘보직 단임제’ 폐지를 몇차례 추진했다. 평가를 통해 큰 과오가 없으면 보직을 계속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업무 연속성과 전문성은 물론이고 책임행정 구현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곧장 반대에 부딪혔다. 대학본부가 인사권을 장악하고 총장 측근들만 내세워 장기집권화 하려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였다. ‘장기집권’에 대한 폐해를 지적하며 전횡을 휘두를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결국, 단임제 폐지나 유연화 계획은 삭제됐고, 임기제의 탄력적 운영을 인사방침으로 삼고 있다.

단임제, 대학경쟁력 ‘걸림돌’ 지적

대학개혁의 요구가 높은 가운데 대학운영 시스템의 근간이 되는 ‘보직제도’가 대학의 경쟁력을 가로 막고 있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1~2년씩 단임제로 돌아가면서 맡는 ‘보직 순환제’의 개선이 대학사회 내부개혁의 주요 과제로 꼽히고 있다.

 

보직 단임제는 군사독재 후유증의 한 단면이다. 지난 1987년 대학사회가 먼저 대통령 단임제를 요구하면서 대학내부에서도 민주화 요구가 거셌고, 보직교수의 단임화 경향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보직의 ‘단임제’ 경향이 고착화되면서 나타난 ‘보직 순환제’는 행정부담을 교수들끼리 나눠갖고, 대학행정에 참여기회를 확대해 ‘권력분산’ 효과를 가져오며, 권위주의 청산에 일조한다는 장점이 부각돼 대부분 대학에서 보편적으로 시행해 오고 있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대안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그러나 대학구조개혁에 대한 요구에 맞춰 대학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에 단임제에 따른 보직 순환제도는 그 폐해도 큰 것이 사실이다. 대학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에 그 구조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 악순환 구조가 되풀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전문성․업무 연속성 저하…리더십 부재도 문제

●무엇이 문제인가=보직의 단임제에 따른 ‘보직 순환제도’는 행정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전문성도 없이 맡는 게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행정능력을 검증하기도 힘들다. ‘오너’가 있는 사학재단의 경우 ‘장수’하는 보직자들이 꽤 있지만 ‘예스맨’이 많고, 총장직선제가 시행되고 있는 대학에서는 ‘논공행상’에 따른 인선이 많아 ‘전문성’을 인정받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업무 연속성도 떨어져 장기적인 발전계획을 실행해 나가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충남의 한 대학관계자는 “처장이 바뀌면 정책의 연속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적응기간만 최소 3~6개월이 걸리고, 업적을 위해 ‘깜짝쇼’를 연출하는 경우도 종종있다”고 전했다.

 

또한 리더십의 부재가 낳는 병폐도 크다는 지적이 많았다. 책임만 주고 권한이 없으니 ‘보신주의’가 만연할 수 밖에 없고 리더십 자체가 생길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예로 학장은 학과별로, 순번제로 돌아가는 ‘명예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소신행정이 어렵고 보신주의에 머무는 경향이 짙다.  

보직은 “나도 한번 해보자” 경력 아니다

한편, 보직을 ‘봉사’하는 자리로 여기기 보다 ‘영예’의 자리로 보는 시각이 “나도 한번 해보자”는 식의 접근을 만들고 있다. 보직을 하나의 ‘권력’으로 인식해 경력쌓기로 보는 면도 존재한다. 보직을 통해 대외적인 이미지를 높이려는 인식이 여전히 많다는 것. 보직을 맡아야 대학구성원으로서 인정을 받았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인데, 평교수로 정년퇴임을 맞는 것보다 그래도 00대 학장의 ‘경력’을 쌓는 것이 명예롭게 퇴직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김석진 경북대 교수(경영학과)는 “사람을 뽑을 때 ‘미래’를 보고 뽑아야 하는데 ‘과거’만 보고 뽑는다”면서 “미래를 위해 계획되고 비전있는 사람인가를 봐야 한다”라며 ‘인재관’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과거만 보니까 경력쌓기에 여념이 없고 경력관리와 실적내는 데만 급급하다는 진단이다.

“단임제 버리고 장기적 수행 분위기 만들자”

●대안은=“획일적 규제에 따른 단임제를 폐지하자”며 장기적인 보직 수행이 가능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가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주기적 성과측정을 통해 큰 과오가 없으면 계속 보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맡겨 놓고 결과를 평가하자는 얘기다. 무엇보다 권한을 주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한결같은 목소리다. 지난해 까지 2년동안 대학본부 보직을 맡았던 한 교수는 “아래로 권한을 줘야 책임도 생기고 장기적 평가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밝혔다.

 

조무제 경상대 총장은 20여년간 연구소장을 맡으며 뚜렷한 연구업적을 남긴 사례다. 조 총장은 지난 1984년 유전공학연구소장을 시작으로 중간에 대학원장과 자연대 학장을 맡기도 했지만 연구소장직을 계속 겸했다. 조 총장은 “한 연구소를 철학을 갖고 장기적으로 끌고 가는게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 목표를 정해서 할 수 있고 성과를 낼 수 있다”면서 “연구소장을 맡으면서 큰 업적이 될만한 연구는 길게 보장해줬다”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002년 10월, 교육부는 “보직수행에 대한 전문성 제고”차원에서 국립대 부총장, 대학원장, 학장의 2년 임기 제한을 폐지하는 교육공무원법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다가 대학자율성 확보 없이 임기제한만 풀어 놓을 경우 ‘장기집권’ 등의 우려가 제기되면서 개정되지 못한 전례가 있었다. 이같은 경우는 대학의 민주적인 지배구조와 의사결정구조의 개선없이 ‘내부개혁’만 강조할 경우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논공행상’식의 보직임명이 바뀌지 않으면 임기를 늘려도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용하 부산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보직의 장기적인 수행이 가능하려면 보직 직무에 맞는 전문가 임명이 우선 보장되야 한다”라고 밝히고 설득력 있는 보직임명부터 제대로 해야 장기적인 보직수행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총장직선제를 실시하고 있는 대학의 한 교수는 “보직 단임제와 순환제는 총장직선제와 맞물려 있다”면서 “총장직선제가 바뀌면 새로운 인사시스템 구축 가능성은 더 높아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 아닌 외부 전문가 영입 필요

일부 보직의 경우 꼭 교수가 아니더라도 외부 전문가 영입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교학부총장을 지낸 바 있는 한 교수는 “교수는 보직을 수행하더라도 평교수로 다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업무처리과정에서 소속 학과나 대학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기가 힘들 때도 많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외부 전문가 영입이 쉽지 않은 이유는 “교수사회의 폐쇄성과 교수들의 정서적인 거부감이 첫째 요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생존경쟁이 치열해지고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가 책임을 맡는 것도 시도해 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밝힌 한 교수는 외부 전문가 영입의 전제조건으로 분권화와 독립채산제 등을 제시했다. “독립 채산제 등 책임경영을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이 안된 상황에서는 개인 능력을 검증받고 외부 영입을 통해 성과로 책임을 묻기가 힘들다”라고 진단했다.

 

한편, 인사업무의 시스템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남명수 인하대 교수(경영학부)는 ‘행정전담교수제’ 등 인재를 길러내는 방식의 시스템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남 교수는 “대학내의 인재를 키워나가야 한다”면서 “대학행정에 참여하고 자 하는 교수는 각 부처 위원회 등에 참여하면서 노하우를 쌓을 필요도 있다”라고 말했다. 남 교수는 “시행착오가 너무도 많은데 대학행정은 실험장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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