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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특집_브로드웨이 뮤지컬과 프랑스 뮤지컬 비교
예술특집_브로드웨이 뮤지컬과 프랑스 뮤지컬 비교
  • 원종원 순천향대
  • 승인 2005.03.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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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그대로 공연된 프랑스 뮤지컬 한 편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세종문화회관에 올려진 ‘노트르담 드 파리(Notre Dame de Paris)’가 그 주인공인데, 영미권 공연물에 익숙한 국내 관객들에게 색다른 유럽무대의 감흥을 전해줄 수 있는 기회였다.

사실 우리에게 이 작품은 ‘노틀담의 꼽추’라는 제목으로 익숙하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작가였던 빅토르 위고가 1831년 발표한 소설이 원작인데, 그의 또 다른 작품인 ‘레 미제라블’과 함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우리나라 대중들에겐 1957년 안소니 퀸과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출연했던 동명 타이틀의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물론 ‘노틀담의 꼽추’는 ‘노트르담 드 파리’의 영어식 번안이다.

1998년 9월 첫선을 뵜던 이 뮤지컬은 프랑스에서 ‘국민 뮤지컬’이라는 칭송을 들을만큼  흥행기록을 세웠던 작품으로 유명하다. 팝 록 뮤지컬 혹은 팝 록 ‘블록버스터’ 뮤지컬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스토리텔링 중심의 영미권 뮤지컬들과는 달리 대중적인 콘서트 형식에 현대적인 조명과 의상, 안무 등이 더해진 게 특징이다.

하지만 ‘노트르담 드 파리’가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첫 프랑스 뮤지컬은 아니다. 1980~90년대 세계 공연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뮤지컬 공연가의 Big 4중 하나로 손꼽혔던 뮤지컬 ‘레 미제라블’도 본래는 프랑스産이다. 작사와 작곡을 맡았던 알랑 부브릴과 끌로드 미쉘 쉔베르는 처음 이 뮤지컬을 제작할 때 영어가 아닌 불어를 사용했다. 초연이 됐던 곳도 다름 아닌 파리였다. 

특이한 건 프랑스에서 시작된 이 작품이 프랑스에서보단 외국에서 더 큰 인기를 누렸다는 점이다. 온전히 프랑스인들만의 감성을 반영한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뮤지컬 ‘레 미제라블’은 1980년 발표됐던 프랑스 원작이 아닌 1986년 영국인 프로듀서인 카메론 매킨토쉬와 연출가 트레버 넌 등이 다시 각색해 내놓았던 영어번안 작품이었던 것이다. 원작의 불어식 표현은 영어권 무대에 어울리는 기승전결 구조로 변화됐으며 (예를 들어 코제트의 노래는 불어 원작과 영어 번안이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바뀌었다), 원형무대 위에서 회전하는 바리케이트와 같은 사실적인 무대가 영국인 무대 디자이너 존 나피어에 의해 첨가됐다. 덕분에 ‘레 미제라블’은 일반인들에게 불어가 아닌 영어뮤지컬로 인식됐다.

 
영어로 바뀐 뮤지컬 ‘레 미제라블’은 1990년대 프랑스로 역수입 되기도 했는데, 전세계에서의 엄청난 성공과 달리 파리에서의 재공연은 별반 신통치 않은 흥행을 기록한 게 이색적이다. 불어권과 영미권의 언어와 감성이 다름에 기인한 미묘한 문화적 차이가 빚어낸 결과였다.

정작 프랑스 사람들이 선택한 그들의 ‘국민 뮤지컬’은 ‘레 미제라블’이 아닌 ‘노트르담 드 파리’였다. ‘레 미제라블’에 선보였던 스펙타클한 극적 구조를 따르면서도 이리저리 꼬여있는 사랑 이야기도 담고 있어 프랑스 관객들에겐 ‘입맛에 꼭 들어맞는’ 작품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첫눈에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집시 미녀 에스메랄다를 둘러싸고 성당의 부주교인 프롤로, 군 장교인 페뷔스와 그의 약혼녀 플뢰르-드-리스 그리고 노트르담의 종치기인 꼽추 콰지모도에 이르기까지 각자 쏟아내는 자신들의 이야기와 사랑의 고백들은 시구를 표현하기 좋은 불어와 절묘한 조화를 이뤄 환상적인 무대를 만들어 냈다. 게다가 작곡을 맡았던 리샤르 꼬씨엉뜨와 작사가 뤽 플라몽던은 모두 뮤지컬을 만들기 전부터 이미 대중음악계에서 인정받던 흥행 제작자들이었기에 프랑스인의 독특한 대중적 코드를 읽어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무대 디자인은 형이상학적인 매력으로도 유명하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식의 대형 특수효과가 가미된 사실적 무대가 아니라, 프랑스 특유의 예술적 감각과 미술적인 축약이 돋보이는 독특한 예술세계를 창조해냈다. 등장인물의 의상도 과거의 것에 국한되기보다 현대성과 역사성이 절묘하게 교차되는 형식을 띠고 있으며, 이는 또한 형이상학적인 무대와 함께 관객으로 하여금 원작 소설속의 배경을 과거 파리의 노틀담 성당이 아닌 현재의 이야기로 무리 없이 끌어들이는데 일조한다. 안무도 빼놓을 수 없는데, 아크로바트에서 현대무용, 모던 발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와 성격의 무용이 버무려져 무대의 완성도를 높였다. 2000년대 초반 영국 런던의 도미니언 극장에서 영어로 번안돼 장기상영되기도 했는데, 당시 웨스트엔드에서는 뉴 아크로바틱 뮤지컬이라는 부제가 붙었을 정도로 새로운 안무에 대한 평가가 높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뮤지컬의 가장 큰 매력은 대중적인 선율의 아름다운 음악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두세 번만 반복해 듣다보면 입가에서 떠나지 않는 멜로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그만큼 인상적이면서도 쉽고 감미롭다는 방증이다. 세명의 남자가 에스메랄다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부르는 노래 ‘벨(Belle)’은 44주 동안 프랑스 대중음악 차트 1위를 차지했었으며, 음반 판매고도 싱글을 포함 1천만장 이상이 팔려나간 진기록을 수립했다. 단순 계산을 하더라도 수천억에 달하는 엄청난 매출액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굴뚝 없는 미래 산업’이라 불리는 문화 산업의 위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1990년대 후반 이후 등장하는 프랑스 뮤지컬들의 新부흥기에 결정적인 초석 역할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대규모 흥행은 프랑스 공연계에 규모의 경제를 통한 공연 산업의 성장을 가능케 했으며, 이후 등장하는 대중적 성격의 팝 록 뮤지컬들, 예를 들자면 ‘십계’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대형 스펙타클 뮤지컬의 탄생을 가져왔다. 이들 프랑스 뮤지컬들은 영미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예술적 감각을 적절히 부가해 유럽시장을 중심으로 빠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영미권 뮤지컬들이 사실적 묘사와 새로운 실험성의 과감한 도입에 의존한다면, 불어권 뮤지컬들은 미술적 완성도와 압축미 그리고 시적인 표현과 섬세한 묘사에 유리한 언어적 장점을 십분 살린 무대를 꾸미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라이브 무대를 기본으로 하는 영미권과 달리 소위 MR이라 불리는 녹음된 반주 혹은 앙상블까지 녹음한 음원을 활용하는 것도 프랑스 뮤지컬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요즘 세계 뮤지컬 극장가에서는 유명 원작을 무대용으로 각색해 인기를 얻는 경우가 많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회전문 현상’이라 칭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원래 회전문 현상이란 규제기관과 피규제기관 사이에 직접적인 인적 교류가 가져오는 폐해를 지적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같은 원작을 다양한 형태의 문화상품으로 변화해 활용하는 것은 ‘원 소스 멀티 유즈 현상’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같은 원작이 여러 형태의 문화 콘텐츠로 변형돼 소비됨으로써 문화상품의 부가가치를 극대화시킨다는 의미이다.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성공은 세계 뮤지컬 시장에서는 변방이라 여겨졌던 프랑스 공연계가 이뤄낸 것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창작극의 활성화를 통해 문화산업의 육성을 꿈꾸는 우리 입장에서는 적극적인 벤치마킹의 사례로서도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한류열풍이 거센 요즘, 우리 문화산업의 원 소스 멀티 유즈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해 볼 일이다.

원종원 / 순천향대 뮤지컬평론가

필자는 방송정책, 문화연구, 영상학 쪽에서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뮤지컬 티켓, 없으면 훔쳐라’가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MTV와 방송문화’, '방송문화와 글로컬라이제이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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