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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사 특집: 성과와 한계-사회학
구술사 특집: 성과와 한계-사회학
  • 김귀옥 한성대
  • 승인 2005.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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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자의 목소리 담아...방법론적 고민은 부족

21세기 사회과학계, 구술사방법론이 잠자던 유령을 불러내고 있다. 그 유령은 다름 아닌 ‘기억’이다. 잊혀지고 비틀린 채 무의식 저편에 억눌렸던 기억이 구술사방법론이라는 영매에 의해 새롭게 재현되고 있다. 또한 그 기억은 역사에서 지배계급의 들러리로, 혹은 투명인간으로 존재 자체가 사라진 민중, 즉 빈민, 노동자, 농민, 여성, 지방민, 일본군 위안부, 양심수 및 정치적 피억압자, 피학살자 유가족, 이산가족, 재외동포, 해외이주노동자 등의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다.

지난 1980년대말~1990년대초 소수의 진보적 사회학자들에 의해 ‘민중사회학’이 제창된 바 있다. 계급론과 맑시즘, 사회구성체론, 진보사관 등으로 무장한 민중사회학은 계량과 현학에 빠진 미국 사회학 일변도의 한국의 사회학에 일대 반성의 분위기를 몰고 왔다. 그러나 무엇이 민중사회학인가에 대한 대답은 아직 충분히 무르익지 못했다.

민중사회학을 한국적 맥락 위에 세우기 위해선 민중이 누구인가를 우선 규명해야 하고, 민중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적 도구와 전략을 확보해야 한다. 그 방법론을 바로 ‘구술사’ 방법론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계량 사회과학에서 인격이 사상된 채 숫자로 형해화됐던 사람이 다시 목소리를 갖게 됐고, 지배적 활자에 왜곡되고 질식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다시 들릴 수 있게 됐다.

구술사 방법론은 질적연구방법론의 하나인데, 한국 사회학에서는 크게 보아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그 전통이 수립되지 못했다. 하나는 1940~50년대 미국 사회학자, 탈코트 파슨즈가 수립한 구조기능주의 연구와 계량을 기본으로 한 양적 연구방법론을 한국의 주류사회학이다. 다른 하나는 1980년대~1990년대 초반, 그것에 대한 도전으로 발전됐지만 사람이 없는 거시 구조로 형해화된 맑스주의 사회학이 그것이다.

한국 사회학 부재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양화된 방법론에 대한 대안의 하나를 구술사 방법론에서 찾기에 이르렀다. 최근 문화사와 미시사를 주도하고 있는 포스트모던 사회학 연구 경향에도 영향을 받으며 현재 한국 사회학계의 구술사 연구는 진화론적 단계를 밟고 있기 보다는 다양한 문제의식과 경향이 공존 또는 경쟁하거나 보완되면서 수행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사회학계에서 구술사 연구는 충분히 세대를 나눌 만큼 발전했다고 보긴 어렵다. 다만 질적연구방법론의 참여자관찰법이나 심층면접을 활용한 연구에서부터 최근의 본격적인 구술사 연구로 전개돼 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질적연구방법론을 통해 사회학의 중심 주제인 계급, 지역 변화, 관계망 연구를 시도한 초창기 성과물에서 허석렬의 ‘도시무허가정착지의 고용구조에 관한 일 고찰’(서울대 석사학위논문, 1982)과 조은·조옥라의 ‘도시빈민의 삶과 공간: 사당동 재개발지역 현장연구’(서울대출판부 刊, 1991) 등의 연구는 선구적 지위를 점한다.

또 다른 구술사 연구 영역에는 재외한인에 대한 주제가 있다. 한상복·권태환의 ‘중국 연변의 조선족: 사회의 구조와 변화’와 박명규·김필동 등의 ‘중앙아시아 한인의 의식과 생활’(문학과지성사 刊, 1996), 권태환·박명규·김귀옥 등의 ‘중국 조선족 사회의 변화: 1990년 이후를 중심으로’(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刊, 2003) 등은 문헌자료에 경도돼있던 연구에서 벗어나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한, 역동적인 재외한인사회에 대한 연구성과물로서 축적돼 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새롭게 개척되고 있는 구술사 연구업적은 노동사 연구에서 찾아질 수 있다. 아직은 진행 중으로서 연구 성과는 미미한 편이지만, 머지않아 이 방면의 중요한 연구로 자리잡혀 갈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연구서로는 이종구 등의 ‘1960~1970년대 한국의 산업화와 노동자 정체성’(한울 刊, 2004) ‘1960~1970년대 노동자의 생활세계와 정체성’(한울 刊, 2005) 등을 꼽을 수 있다.

현재까지 한국 사회학계의 구술사 연구는 한반도 분단과 전쟁이라는 주제로 빛을 발하고 있다. 정치사, 외교사, 전투사 연구에 치우쳐, 사람이 보이지 않던 한국전쟁연구에 구술사방법론은 서서히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김귀옥의 ‘월남민의 생활경험과 정체성: 밑으로부터의 월남민 연구’(서울대출판부 刊, 1999)나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돌베개 刊, 2000), 표인주·염미경의 ‘전쟁과 사람들: 아래로부터의 한국전쟁연구’(한울 刊, 2003) 등이 생산됐다. 같은 주제의 성과물들이 더 발전된 형태로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젠더를 주제로한 연구는 여성학 분야로 분류되므로 이번 글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이러한 연구성과물에 힘입어 대학 내 사회학과 강의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부차시되거나 별로 언급되지 않던 ‘질적연구방법론’ 강의가 등장하고 있다. 실증주의적 학문관에 입각해 있는 역사학이나 여러 사회과학 부문 등에서 구술사 연구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사회학이 구술사 연구 성과를 적극 수용한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학 내의 구술사 연구 안팎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김귀옥의 ‘지역 조사와 구술사 방법론’(‘한국사회과학’ 22권 2호)을 참고하기 바라며 몇 가지 문제를 짚어보도록 한다.

우선 연구 환경에 있어서 구술사 연구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이 절대 부족하다. 현재 구술사 연구는 학계를 넘어서서 사회적으로도 다양한 주문을 낳고 있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구술사 연구자를 얼마나 키워냈는가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사회학계에서는 계량 사회조사방법론에 관한 이론과 실습은 많았지만, 구술사 방법론에 관한 것은 거의 부재했다. 구술사 연구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학문적 훈련을 받지 않은 연구는 수행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쁠 수 있다.

또한 연구자와 구술자의 평등한 관계 설정과 연구자의 윤리의 문제는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윤리의 문제는 연구자와 구술자의 불균형적인 권력 관계에서 발생한다. 오랫동안 우여곡절을 겪어온 미국 학계에서는 최근 구술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연구는 발붙일 수 없도록 했다. 조만간 한국에도 그런 형식이 도입될 것으로 생각하는데, 형식적 동의의 절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연구자의 양심일 것이다.

구술사 연구는 학문 내적으로도 여러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첫째, 그 방법은 ‘말’을 매개로 하는데 말과 사물, 말과 의식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구술자의 기억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술의 맥락에 연구자가 같이 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뢰의 관계와 함께 현장 조사가 필수적이며, 일회적인 연구를 극복해야 한다.

둘째, 구술사 연구의 장점의 하나는 타당성의 확보에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구술에 대한 연구자의 해석이 얼마나 정확한가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나는 한명의 구술자의 증언에 의존하기 보다는 비슷한 상황에 처한 여러 구술자의 진술들을 수집해 일정한 범위 내에서 유형화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셋째, 구술사 연구는 자체적으로 완벽하기 어렵다. 직접적인 문헌자료가 없더라도 주변 언저리 자료들을 확인해서라도 조사 결과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구술사 연구와 함께 문헌연구나 양적연구방법론과 병행될 때 보다 탄탄해지게 된다.

나 같은 연구자는 기존의 실증주의 학문에 체계화시킨 연구방법론을 넘어서지 못했다. 기억의 재현과 팩트 중간에서 아직은 배회하고 있다. 현재 학문의 추세가 기억의 재현을 택하더라도 잃어버린 사실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재현과 사실은 학문적 긴장이며 구술사 연구의 미덕이기 때문이다.

김귀옥 / 한성대·사회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정착촌 월남인의 생활경험과 정체성:속초'아바이마을'과 김제'용지농원'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이산가족, '반공전사'도 '빨갱이'도 아닌...', '북한 여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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