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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共生의 나라
문화비평: 共生의 나라
  • 이병창 동아대
  • 승인 2005.03.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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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어떤 애비가 있었다. 그의 아이가 중학교 이년생일 때, 학교 화장실에서 상급  학생들에 둘러싸여 얻어맞고 왔다. 달려가 보니, 맞아 뒤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가 학교 가기 두렵다 하여 아비인 그에게 대책을 호소했다. 알아보니 아이를 때린 학생들은 그의 아이가 상급생에게 버릇없는 것 같아서 가르쳐 주려고 때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학생들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잘했다. 앞으로도 버릇없는 아이는 패도록 해라. 그리고 그는 돌아와서 그의 아이에게 말했다. 이 나라에선 선배한테 버릇없는 것이 가장 나쁜 죄다. 그러니 앞으론 조심하도록 해라. 그리고 이 나라는 그런 나라이니까 넌 차라리 매집을 두둑이 기르는 게 낫겠다. 그러니 아이야,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얻어맞으려무나. 그러자 아이는 그를 다시 쳐다보지 않았다. 그리고 간단히 자퇴서를 써서 학교에 제출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는 그 철모르는 아이가 두려워졌다.

글쎄, 그 아이는 폭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짐작이나 했을까. 생각해 보라. 어릴 때부터 이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얻어맞았는지를. 그들은 집에선 매를 맞으며 억울함을 잊었다. 학교에선 선생들의 그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오히려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커서 군에 가서 졸병 때 당한 폭력을 고참으로 고스란히 돌려주면서, 萬有 폭력의 엄정함을 배웠다. 그리고 사회에 나가자, ‘중정’이라는 야릇한 이름으로 떠도는 고문의 소문은 차라리 그들을 에로틱한 환상에 사로잡히게 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 했던가. 그럼 몽둥이 끝에서 인정이 생겨난다는 말도 이해하리라. 오랜 고통 끝에 마침내 폭력을 이해하게 되자, 이제 어른과 선배가 나타나면 무언가 마음이 편해졌다. 든든한 울타리가 생긴 듯했다. 그리고 폭력이 몸에 더 익숙해지자, 후배와 아이가 나타나면 챙겨주고 싶어 안달하게 되었다. 폭력이 완전히 몸에 배게 되자 이제 동기와 형제간의 공평함과 끈덕끈덕한 우정이 생겨났다. 그리하여 이 나라 사람들은 선후배, 기수, 짬밥을 기준으로 하여 이 사회를 질서정연하게 묶어 놓았다. 바로 이것이 전 세계에 자랑스러운 혈연, 지연과 동문 그리고 동업자의 나라가 아닌가. 이 공생의 나라, 거기서 교수들은 짬밥 순서로 연구비를 나누어 먹었고, 검찰은 후배가 올라서면 스스로 물러날 줄 알았고, 재판관은 전관예우에 한 치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자들과 선생들은 손끝 한마디의 금 정도는 관대하게 받아 챙겨 주었다.

이게 그냥 만들어 졌는지 아는가. 아니다. 그거야말로 이건 폭력의 매끝으로 이루어진 질서다. 그렇다고 폭력에 눈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폭력은 그저 맹목이었다. 그러나 폭력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이런 질서정연한 공생의 나라를 만들어냈다. 이해가 안된다 하는가. 그럼 상어의 공격을 받아 물고기들이 둥그런 원을 그리며 뭉친다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인간의 조상이 생쥐고 생쥐의 조상은 물고기다. 그래서 저 물고기의 습성이 인간에게까지 전해온 것이다. 다만 인간이 이들 물고기와 차이가 있다면, 인간은 자기를 공격하는 상어를 사랑해서 마음 속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질서정연한 공생의 질서를 깨트리는 것이 버릇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선후배와 기수와 짬밥의 질서를 깨트리는 것이며 마땅히 폭력에 의해 제거되어야 하는 가장 심각한 국보법적 범죄이다. 내 말이 틀렸다 하는가. 그럼 지금이라도 당신이 속한 그 집단의 짬밥이나 기수나 선후배 질서를 깨보라. 그럼 당장 어떤 대가를 치를지 알게 될 것이다. 아마 당신의 선배나 어른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한테 그런 거는 괜찮다. 우리 형님에게 까지 그런 거는 참을 수 없다. 이런 말을 듣는다면 틀림없다. 당신이 속한 집단은 가장 질서정연한 공생사회에 속한다. 자 그럼 이번엔 당신이 속한 집단의 술자리에 가 보라. 그리고 폭탄주를 돌리면서, 우리가 남이가 라고 외쳐 보라. 그 가슴 속 깊은 속에서 울려나오는 그 진한 고독과 고통이 담긴, 그러나 동시에 환희와 애정이 담긴 섹슈얼한 목소리로 합창이 울려 퍼질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

옛날 옛적에 못난 애비가 있었다. 그러기에 그는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야, 이 나라에선....그러나 아이는 애비를 다시 쳐다보지 않았다.

이병창 / 동아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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