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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차별 문화를 넘어 ‘다종 정치 공동체’로
약자 차별 문화를 넘어 ‘다종 정치 공동체’로
  • 김정규
  • 승인 2021.08.06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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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세상_『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 앨러스데어 코크런 지음 | 박진영, 오창룡 옮김 | 창비 | 164쪽

동물,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 차별 이유는 
‘정상인’이 사회를 지배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 때문

대규모 돼지농장에서는 관리 효율을 높이기 위해 출산유도제나 발정제 같은 호르몬제를 사용하여 암퇘지의 발정과 출산을 같은 날로 조정한다. 양계장에서는 수평아리는 분쇄되거나 가스로 도살되고, 암평아리들만 키운다. 지난 1년 동안 닭과 오리 약 1천4백만 마리가 살처분되거나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돼 죽었다. 

이것이 인간과 동물의 현재 관계이다. ‘인간은 최상위 포식자’라는 도그마를 여전히 신봉하며 동물들을 학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에서 벗어나 덜 폭력적이고 나아가 더 평화로운 방식으로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움직임 또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피터 싱어는 동물들이 쾌락이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지각 있는 존재’라 했고, 톰 리건은 모든 삶의 주체들은 ‘내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하여 동물권에 대한 논의에 불을 지폈다. 동물권은, 동물복지만으로는 불충분하고 더 나아가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는 주체라고 보는 것이다.  

정치이론 관점에서 동물윤리 문제를 연구해온 앨러스데어 코크런 영국 셰필드대 교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최근 펴낸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박진영·오창룡 옮김, 창비, 2021)에서, 우리 사회를 인간만이 사는 게 아니라 여러 생물종들이 함께 사는 ‘다종 정치 공동체’라고 주장하면서, 이제 이 공동체를 어떻게 조직할지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 

160쪽짜리지만 매우 논쟁적인 이 책에서 그는 동물에 대하여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법적 지위 강화다. 동물복지법으로는 부족하니 헌법에 동물복지를 국가와 시민의 의무로 규정하자는 것이다. 또한 동물과 인간의 이익이 충돌할 때 동물의 이해관계를 존중하기 위해 동물에게 법적 인격을 주자고 한다. 동물원에 갇힌 침팬지를 법적으로 대리하여 동물원이 아닌 다른 침팬지 보호구역에서 여생을 보내게 해달라는 인신보호영장을 신청해서, 2016년 법원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아르헨티나 동물권전문변호사협회 사례가 있다.  

둘쩨, 성원권 부여다. 공동체 안에서 비인간동물들의 존재와 이해관계를 인정하고 보장하여 공동의 이익, 즉 공공선을 추구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셋째는, 민주적 대표권 부여다. 이에 대해서는 비인간동물의 이해관계를 정치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동물 전담 의원’ 의석을 일부 할당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동물 유기 여전히 많으나 동물 보호단체 활동도 늘어

동물을 대하는 사회적 태도를 보면 그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다. 장애인, 성소수자, 경제적 취약계층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은 ‘정상인’이 사회를 지배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동물에 대한 학대로 나타나고,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고 있는 인간종 외의 다른 종에 대한 멸시로 이어진다.

한국인 네 명 중 한 명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 여전히 거세, 성대 제거, 단미(꼬리 자르기), 유기 등이 자행되고 있지만, 인식은 점차 개선되고 있다. 동물 보호와 동물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는 개인이나 단체도 많이 늘고 있어 다행이다. 

서울·경기지역 무당굿의 맨 마지막 제차를 ‘뒷전’이라고 한다. 굿을 벌인 목적과는 아무 상관없는 잡귀잡신들을 위한 것이다. 비참한 생애를 살다가 험한 죽음을 맞이한 영혼들을 불러들여 배불리 먹이고 달래주는 절차를 맨 마지막에 배치한 이유는, 세상의 모든 존재의 아픔이 곧 나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과, 힘이 닿는다면 그 아픔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공생적 사고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소가 죽어서 잡귀가 되었다면 굿판의 뒷전에 끼어들어 이렇게 노래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의 코에서 코뚜레가 사라지고/ 우리들의 등짝에서 멍에가 사라지고 / 재갈과 박차는 영원히 녹슬고/ 잔혹한 회초리도 없어지리라.”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김정규
한국대학출판협회 사무국장·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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